사람들이 윤회 업 해탈을 두고

이건 종교적인 이야기 아니냐고 묻지요.

그 물음 자체는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물음입니다.

윤회라 함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이 마음이

어떤 집착을 품고 있는가를 묻는 말입니다.

같은 분노로 오늘을 살면

내일도 같은 삶을 반복합니다.

그것이 윤회입니다.

업이라 함은

누가 벌을 주는 것도 아니고

상을 내리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길을 만들 뿐입니다.

도망칠 수 없는 인과일 뿐이지요.

해탈이라 함은

어디로 도망가는 일이 아닙니다.

묶고 있던 손을 스스로 푸는 일입니다.

쥐지 않으면

놓을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종교입니까, 철학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불교는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보라고 말합니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집착이 옅어지며

집착이 옅어지면

고통도 함께 옅어집니다.

그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쉽게 말하면, 불교는 철학입니다.

다만 책상 위의 철학이 아니라

살아보면서 검증하라고 하는 철학이지요.

믿지 않아도 되고

섬기지 않아도 되며

의심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스스로 보고, 느끼고, 확인하라는 것.

그래서 불교는 말합니다.

내 말도 붙잡지 말고 고통이 줄어드는지 스스로 살펴보라.

그 점에서 불교는 종교의 옷을 입고 있지만

뿌리는 분명히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