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가 비용대비 효율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운영비를 늘려서라도 굳이 고체로켓을 달아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역시 군사적 목적에 미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부류였기 때문에 ICBM 제작에 필요한 고체로켓 추력이 얼마인지 조사해 본 적이 있다.
ICBM에는 고체로켓과 액체로켓이 있고 각 단의 추력, 발사각도, 탄두 및 발사중량 등에 따라 사거리 계산이 크게 달라지므로
1단 추력만 갖고 단순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사거리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
IRBM급인 예리코2 를 개량한 샤빗이나 ICBM급인 피스키퍼를 발사체로 전환한 미노타우러스4 등의 추력을 볼 때
각국의 소형 고체연료 발사체(베가, M-V, 엡실론, 미노타우러스4 등) 정도면 ICBM급 능력이 나온다고 판단된다.
즉 1단 추력 2~300t급 이상의 고체로켓이라면 준수한 탄두중량과 사거리를 갖춘 ICBM으로 봐도 좋다는 뜻.
(지구를 한바퀴 돌릴 생각이 아니라면 사거리를 더 늘릴 필요는 없다. 실제 군사 강국들의 ICBM 사거리도 1~2만km 이내임)
M-V : 1단 추력 3780kN, 2단 추력 1245kN, 3단 추력 294kN (LEO 페이로드 1.8t)
미노타우러스4 : 1단 추력 2200kN, 2단 추력 1365kN, 3단 추력 329kN, 4단 추력 32.2kN (LEO 페이로드 1.7t)
베가 : 1단 추력 3040kN, 2단 추력 1200kN, 3단 추력 213kN (LEO 페이로드 1.5t)
엡실론 : 1단 추력 2271kN, 2단 추력 371.5kN, 3단 추력 99.8kN (LEO 페이로드 1.2t)
그러나 알다시피 한국은 한미 미사일지침의 제약으로 이런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다.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은 사거리(800km)로 제한을 받고, 고체연료 발사체는 총추력(100만 파운드=453.6t)으로 제한을 받는데 <출처>
총추력 100만 파운드면 추력 7~8t 로켓이 60초 간 연소하는 정도로, 나로호 2단의 킥모터가 딱 이 수준이다.
물론 KSR-2의 1단처럼 연소시간을 9초로 줄이면 추력을 23t 이상으로 늘릴 수 있으니 (23t*9초 + 10t*20초 = 407t = 90만 파운드)
초반에 연료를 빠르게 소진시키는 탄도미사일 특성 상 현무2 추력은 최대 30t 까지 생각해 볼 순 있겠다.
실제 "현무Ⅱ 4기를 묶으면 추력 100톤의 H-2A보다 강하다"는 식의 비교도 나온 적이 있다. <출처>
하지만 발사체는 어느 정도의 연소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므로 나로호 2단(추력 7t) 정도가 현실적 한계로 보인다.
최근 한미 미사일협정 개정으로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이 800km로 늘어났지만
우주 발사체용 고체로켓은 협상 대상이 아니어서 기존 제한(총추력 100만 파운드)이 그대로 유지된다.
발사체와 관련된 문제는 외교 당국끼리 추후 협의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출처>
한국형 발사체에서 고체로켓 개발은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므로 미국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다.
항우연도 고체로켓 개발이 군사용으로 오해받을 경우 국제협력에 지장을 초래하므로
KSLV-2 부터는 1~3단에 모두 액체연료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출처>
그러나 시제품 제작과 시험발사가 금지될 뿐 그 이상의 추력도 연구, 개발은 가능하고
고체로켓의 구조가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출처> 개발이 제한된다고 해서 만들 능력이 없다고 단정지을 순 없다.
실제 일본의 사례를 봐도 어느정도 기초 기술을 갖춘 이후로는 비교적 쉽게 추력을 증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도 카파로켓을 개발할 때까진 기술 부족으로 숱한 실패를 겪었지만, 이후로 딱히 추력 문제로 고생한 적이 없음. <출처> 추력을 120t으로 대폭 늘린 Mu-1 이후 한동안 로켓 대형화가 주춤했던 건 1966년에 결정된 직경 1.4m 제한 때문이지 기술력 문제가 아니었고 <출처> 이는 1989년 직경 제한이 풀리자마자 제작된 추력 400t급의 Mu-5 (M-V) 로켓으로 증명된다)
5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고체로켓을 개발한 일본이 이미 70년대에 추력 120t을 넘는 단계로 들어섰는데
미국 기술을 베이스로 70년대부터 고체로켓을 개발한 한국이 소형 발사체 수준의 추력을 못내서 고생할 거라 보긴 어렵다.
탄도미사일 개발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확도(CEP)를 높이는 것이므로 실제론 이것이 난관이 될 가능성이 큼.
흔히 언론에서 '로켓에 위성을 실으면 발사체, 탄두를 실으면 탄도미사일'이라는 말을 하는데
발사체와 탄도미사일에 요구되는 핵심기술은 차이가 꽤 크다. <출처>
90년대 제작된 PSLV 1단에 이미 추력 500t급 고체로켓을 탑재했던 인도가
탄도미사일은 이제 막 사거리 5000km급(아그니 5호) 개발에 성공한 것만 봐도 난이도 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한국은 오랫동안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핵심기술은 익힌 것으로 판단되고
그동안 갖지 못했던 대기권 재돌입 기술도 이제 연구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
(사거리가 600km를 넘어가면 리엔트리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이걸 막으려고 미국은 사거리 550km 안을 고집했었음)
개발자들이 한국의 고체로켓 기술력에 대해 '굉장히 우수하다'고 자부하는 것은 이런 조건을 다 감안해서 하는 얘기라고 봐야 한다.
남은 과제는 장거리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인데, 이는 실제 미사일을 제작해 발사 시험을 해야만 획득 가능하다.
고체연료 발사체를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봤자 ICBM을 만들지도, 테스트하지도 못할 거라면 아무 소용이 없고
개발과 개량, 실전 배치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M-V가 곧바로 탄도미사일로 전용될 수 있다고 말하면 억울해 함.
흔히 사람들이 로켓을 말할 때 추력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주발사체는 안전성과 경제성이 핵심이고, 탄도미사일은 정확성과 즉응성이 핵심이다.
고체연료 발사체에 대한 아쉬움은 KSR-3로 빌빌대던 시절에나 하던 이야기일 뿐
지금 시점에선 개발해 봤자 기술적 실리도, 경제적 실리도 그다지 얻을 수 없을 거라는 게 내 결론이다.
즉 ICBM이 갖고 싶다면 탄도미사일 제한을 푸는데 집중해야지 굳이 고체연료 발사체를 가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 참고
MTCR이 사거리 300㎞, 탄두 500㎏이라는 엄격한 제한을 거는 이유는
탄두 중량 500㎏은 저급한 수준의 핵을 탄두에 장착했을 때의 최소무게이고,
사거리 300㎞는 핵무기로 다른 국가를 공격할 때 그 피해가 자국에 미치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이 제한을 받는 국가는 사실상 핵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출처>
캬 개념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