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 기말과제로 쓴 글 적당히 다듬어서 올림.
우주배경복사 관측 데이터.
우주의 나이는 138억년이라고 한다[1]. 비교적 우주의 나이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릴 적 읽은 책에서는 우주의 나이를 대략 150억 년으로 추산했고, 그보다 오래된 자료에서는 수십억 년에서 200억년으로 서술한 경우도 있었다footnote">[2]. 최근 들어 우주의 나이를 정확하게 추산하게 된 이유는 관측기술의 발달에 따라 보다 정확한 관측자료를 가지고 추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시대에 이루어진 우주의 나이 추론들은 모두 같은 이론에 기반하여 세워진 것이다. 바로 빅뱅이론Big Bang Theory라고도 불리는 팽창 우주론이다.
팽창 우주론은 우주가 어느 한 점에서 시작하여 팽창했다는 이론으로, 1927년 조르주 르메트르의 원시 원자 가설(Hypothesis of the Primeval Atom)으로 시작하여, 윌리엄 허셜의 우주 팽창 발견을 통해 빅뱅 이론으로 이어지고, 우주가 정적이었다는 정상상태우주론과 대립하다가 1963년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에 따라 정론이 되었다. 이후 팽창 우주론은 빅뱅 이후 급팽창이 발생하였다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발전과정을 거친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통해 얻어진 이론으로 1989년 COBE, 2001년 WMAP, 2009년 플랑크 우주 망원경을 통해 우주배경복사를 점차 정밀하게 측정하며 우주의 나이를 추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이론이 그랬듯이, 이 팽창 우주론이 정론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기존의 많은 학자들이 정적인, 혹은 균일한 우주를 믿었으며, 팽창 우주론은 진지한 주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긴 논쟁과 관측 끝에서야 정설로 인정받았다. 이 글은 그 과정을 살펴보고, 초기 팽창 우주론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어떠한 과학관에 보다 더 부합하였는지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 고전적-상대론적 우주론: 정적인 우주.
<프린키피아>.
과학혁명의 문을 열며 뉴턴이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 즉 <프린키피아>에서 혜성의 주기를 설명해 온 이래, 과학계에서는 많은 논쟁이 뒤따랐다.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출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신학자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는 유한한 우주와 무한한 우주 모두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에 따르면 존속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그는 뉴턴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주가 유한하다면, 그곳은 고요하고 정적인 무대가 아니라 모든 별이 한데 뭉개지면서 처참한 종말을 맞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반대로 무한할 경우 “임의의 물체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잡아당기는 힘도 무한할 것이므로, 이 경우에도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3]. 뉴턴은 이러한 의문 제시에 우주는 ‘무한하면서 균일’하며, “신의 기적이 일어나야 할 것”이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4].
뉴턴/아인슈타인 우주의 문제점. 정적이고 유한한 우주에서는 결국 중력에 의해 모든 것이 한 점으로 모인다.
이러한 문제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서도 해결되지 못했다. 1919년 아서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측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을 검증하였고, 이어서 1920년대에 아인슈타인은 정적이고 균일한 우주를 가정하여 자신의 중력 이론을 우주에 적용시켰다. 그런데, 계산 결과 그는 자신의 일반 상대론이 유한하며 정적인 우주를 허용하지 않음을 깨달았다[5]. 그는 새로운 항, 즉 우주상수를 도입하여 이를 수정하였다. 물리학자 드 시터(de Sitter)는 “물질과 에너지가 없이 편평한 우주”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마찬가지로 정적인 우주를 전제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물리학자 프리드먼(Fridmann)은 1922년 팽창하는 우주를 이론적으로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으나, 1925년 사망하여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같은 해, 드 지터의 우주가 정적임이 틀렸으며, 사실은 팽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왔다. 프리드먼의 이론과는 독립적으로 은하의 적색편이까지 고려한 주장을 한 사람이 바로 팽창 우주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조르주 르메트르이다.
- 조르주 르메트르와 원시 원자 가설
![Georges Lemaître and the "Big Bang" [aka "hypothesis of the primeval atom"]](/media?src=https://philosophy.hi7.co/philosophy/philosophy-5716f1c36beed.jpg&board=universe&pid=96148)
조르주 르메트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조르주 르메트르는 벨기에 출신의 천문학자이다. 그는 1919년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1923년 천주교 신부가 되었고, 같은 해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박사과정으로 입학하였다. 그는 앞에서 언급했던 아서 에딩턴에게서 우주론과 천문학을 전공하였고, 이후 하버드 대학교 천문대를 거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5년, 르메트르는 드 시터의 우주론이 좌표계를 잘못 설정하는 오류 때문임을 지적하였고, 드 시터의 우주는 사실 “텅 빈 공간이지만 팽창”함을 보였다. 이후 1927년 그는 벨기에에서 후속 연구로 우주가 팽창한다는 것을 통해 외부 은하의 적색편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음을 다룬 논문 “일정한 질량을 갖지만 팽창하는 균등한 우주를 통한 우리 은하 밖의 성운들의 시선 속도의 설명”을 출간하였다.[6]해당 논문에서 그는 은하들의 속도와 거리 사이의 비례관계를 확인하고, 에드윈 허블과도 교류하며 자신의 이론을 가다듬었다. 대부분의 우주론을 다룬 서적들에서 잘못 설명한 것과 달리, 이 논문은 대폭발 이론이 아니었다. 논문에서는 우주의 팽창이 아인슈타인의 우주에 기반해 정적인 상태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7].
1930년대에 르메트르는 우주의 기원 개념에 양자역학을 접목하였고, 비로소 우주의 시간적 시작을 암시했다. 그는 양자론적 과정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몇 개 혹은 단 하나의 양자 안으로 집중될 것”이며, “시간과 공간 또한 양자화될 것[8]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르메트르는 현재의 빅뱅이론과는 다르게, 방사성 붕괴와 같이 ‘차가운’ 폭발을 생각하고 있었다.
- 대폭발이론과 정상상태우주론, 그리고 르메트르
이러한 팽창 우주론은 비슷한
시기 에드윈 허블이 천체관측을 통하여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르게 멀어지고, 이는 거리에 비례한다는
동일한 내용을 발표한 뒤에야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관측 결과로 말미암아 우주가 팽창함이 확실해지자, 기존의 과학자들 또한 정적인 우주론을 버리고 마침내 팽창 우주론을 받아들였다.
이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1931년에 아인슈타인은 윌슨산천문대를 방문하여 허블과 역사적인 대면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도입했던 우주상수가 일생에서 가장 커다란 실수였음을 고백했다.”[9]
그러나 과학자들은 팽창 우주론을 받아들였으나, 대폭발이론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시간의 시작’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고, 대폭발이론을 받아들이기에는 허점이 많았다. 허블은 팽창이 한 점에서 시작하였다고 가정하여 우주의 나이를 약 18억년 정도로 예측하였고, 이는 당시에 알려진 지구의 나이보다도 어린 결과였다. 이러한 모순은 나중에 보다 정밀한 측정으로 해결되었으나, 우주가 한 점에서 생겨나지 않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주류에 가까웠었다. 이러한 주장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주장이 바로 정상상태우주론이다.
대폭발 이론과 정상우주론의 차이점.
정상상태우주론은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기존의 공간에 물질이 생겨나며 결과적으로 무한히 팽창하며 일정한 밀도를 가진다는 이론이다. 프레드 호일(Fred Hoyle)은 정상상태우주론을 지지한 대표적인 학자로, 그는 빈 공간에서 물질(=에너지)가 계속 생성되어 결과적으로 우주의 밀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주장하였다. 우주에서 원소의 생성 과정을 항성 내부의 핵융합반응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추론해냈고, 이를 그의 우주론의 근거로 삼았다. 이는 에너지보존법칙을 위배하는 이론이었으나, 호일을 비롯한 정상상태우주론 지지자들은 양자역학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전쟁의 영향을 받은 르메트르가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1940년대에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미국 학계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1948년, 조지 가모브(George Gamow)는 대폭발이론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가모브는 알파-베타-감마 논문에서 르메트르의 모델을 도입하여 우주의 원소들이 우주 초창기의 고열로 인한 핵합성으로 생성되었다고 주장하였고, 우주의 수소-헬륨 비율을 추정해냈다+.
호일과 가모브는 서로 간의 의견을 두고 여러 논쟁을 벌였다. 1949년, 프레드 호일은 대폭발 이론을 비판하며 대폭발 이론을 ‘빅뱅’에서 일어났다고 일컬었고, 이로 인해 대폭발 이론은 빅뱅이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대폭발 이론의 비판에 가모브는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하지 못하였고, 결국 가모브는 호일의 핵 합성 이론을 수긍하였다.[11]
아이러니한 점은, 호일은 르메트르와 학술적인 교류를 지속하였으나 가모브는 그렇지 않았다는것이다. 1950년대 들어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론이 종교적으로 사용된 것에 대하여 상심하였고, 동시에 가모브가 그런 종교적인 오용을 조롱했기 때문에 더더욱 멀어졌다. 르메트르는 자신의 우주론에 입자물리학적 설명이 더욱 필요함을 느꼈지만 가모브와 협력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우주배경복사의 발견 전 까지는 정상상태우주론이 더욱 지지를 받았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들어 대폭발 이론, 즉 빅뱅 우주론을 지지하는 여러 근거들이 나오게 된다. 오래된 천체인 퀘이사가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드물다는 점, 우주의 헬륨 양이 정상상태우주론의 예측보다 많다는 점은 호일의 정상상태우주론에 대한 의심을 일으켰다.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였다. 정상상태우주론은 우주배경복사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965년 마이크로파 복사가 확인되고, 이것이 빅뱅에 의해 발생한 우주배경복사임이 확인되며 호일의 정상상태우주론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이 발견은 르메트르의 사망 불과 얼마 전에야 발견되었고, 가모브 또한 발견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사실 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는 1941년 처음 관측되었으나[12] 이것이 우주배경복사였음을 확인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 우주상수의 재도입과 현대 우주론
현대의 우주 모형.
기존의 모든 우주 이론과 마찬가지로, 빅뱅 이론의 문제점은 관측 결과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관측 결과로는 우주는 특정한 방향성이 없이 거의 균일하고 시공간의 굴곡이 없이 평펑했으나, 빅뱅이론만으로는 이 관측 결과를 설명하기 어려웠다.[13] 1930년대 제기된 르메트르의 최종 모형은 급속한 팽창이 이루어졌다가 느려진 뒤, 다시 팽창이 가속되는 우주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를 도입했고, 아인슈타인이 우주상수를 폐기한 이유와 같은 이유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그의 사망 이후, 우주상수는 다시 발견되어 현대 우주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된다.
앨런 구스(Alan Harvey Guth)는, 이를 설명할 방법으로 우주가 초기에 아주 빠르게 팽창하였다는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1980년에 발표하였다. 르메트르의 경우와는 달리, 앨런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천문학/물리학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의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사용하다가 폐기한 우주상수, 그리고 암흑에너지에 대한 견해를 포함하고 있었으나, 예상 외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물리학자들은 구스의 이론이 미시적 구조가 거시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과 대통일이론의 단초를 마련한 데에 관하여 높이 평가하였고, 천문학자들의 경우 다소 조심스러웠으나, 이 인플레이션 우주론을 뒷받침하는 증거인 COBE 우주망원경의 발사로 마이크로파우주배경복사의 미세 요동을 관측하며 오늘날의 정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 Planck Collaboration. "Planck 2018 results. VI. Cosmological parameters” Astronomy & Astrophysics. 641: A6. (arXiv:1807.06209), 2018, p15, Table 2의 Age [Gyr]
[2] Michael D. Lemonick and J. Madeleine Nash, “UNRAVELING UNIVERSE”, 『TIME』 Magazine Vol. 145 No. 9, Mar. 06, 1995, p1. archive: http://content.time.com/time/subscriber/article/0,33009,982619-1,00.html
[3] 미치오 카쿠, 박병철 역, 『평행우주』, 김영사, 2006, p54
[4] Isaac Newton, “Original letter from Isaac Newton to Richard Bentley, dated 11 February 1692/3”, The Newton Project, http://www.newtonproject.ox.ac.uk/view/texts/normalized/THEM00256
[5] James T. Cushing, 송진웅 역,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 북스힐, 2004, p353
[6] 존 파렐, 진선미 역,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 양문, 2009, p87~90 참조.
[7] 존 파렐, p91
[8] 존 파렐, p109
[9] 미치오 카쿠, p95
+ Alpher, R.
A.; Bethe, H.; Gamow, G. "The Origin of Chemical Elements". Physical
Review. 73 (7), 1 April 1948, p803–804
[11] 미치오 카쿠, p99-118, 122-125 참조.
[12] McKellar, A, "Molecular Lines from the Lowest States of Diatomic Molecules Composed of Atoms Probably Present in Interstellar Space". Publications of the Domînion Astrophysical Observatory. Vancouver, B.C., Canada. 7 (6), 1941, p251–272.
[13] David Tong, “David Tong: Lectures on Cosmology”, University of Cambridge, 2019, p64-67 참조. http://www.damtp.cam.ac.uk/user/tong/cosmo.html
[14] Helge Kragh, “Hubble Law or Hubble-Lemaître Law? The IAU Resolution”, 2018, arXiv:1809.02557,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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