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의 청와대가 문현동 금 도굴에 관련 되었다는 24가지 이유 -

1. 여성담당비서관 신필균과 서울경찰청 차장 김기영

2002년 3월 2일. 부산 문현동 1219-1번지에 직경 60센치미터로 지하16미터 깊이의 암반층을 뚫고 수직구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4월 5일 배신이 일어났고, 4월 28일경 현장 땅 약 300평 (수직구가 위치한 땅)이 광주에 살고 있던 여자 기공사 김홍랑에게 팔렸다. 김홍랑이 그 댓가로 지분 5/100를 챙겼다. 다음날 5월 28일 현장에서는 돼지대가리와 수박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서울에서 무속인 등이 내려가서 치른 굿판이다.


이 자리에 현직 청와대 여성 담당비서관인 신필균이 참석했다. 이 여자를 경호하고 내려간 경찰 고위 간부가 있었는데 경남 김해 출신으로 현직 서울경찰청 차장이었던 해병대출신 김기영 치안감이 그다. 김기영은 경찰에서의 노무현이가 가장 총애하는 심복이었다고 다들 말했다. 이상의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당시에 청와대가 직접적으로 도굴단과 연결되었음을 나타내는 증거인 것이다.


2. 청와대 신문고


현장에서 도굴이 진행되자 나는 대통령 노무현이 ‘도굴단’과 연결된 줄은 꿈에도 모르고 어쨌든 청와대에 매달렸다. 대통령이 되기 전 나와의 세 번 만난 인연을(부산 ‘문현동 어뢰공장 건’으로) 바탕으로 그에게 알리기 위해 전력을 투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실천한 방법 중에서 인터넷에 접속하여 청와대 민원실인 “청와대신문고”에 금도굴에 관한 내용을 소상히 적어 세 차례나(비공개) 올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끝내 아무런 회신도 없었고 묵묵무답이었다. 왜 아무런 응답을 해주지 않았는가? 여기에 대한 해답은 세월이 흐르고 나니 자연히 나타났다. 청와대가 다시 말해 대통령이 ‘금 도굴’에 직접 가담되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었겠나?


세계 역사상 절대권력자가 ‘범죄단’과 접목되어 범죄를 저지른 일이 있었던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수치고 치부가 바로 당시 대통령 노무현 패거리들의 범죄 ‘문현동 금도굴’ 사건이다.


3. 경찰청 특수부에서 올린 결재를 싹뚝 자른 문재인


당시의 국정원에 간부가 나타났다.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경찰청 특수부와 연결이 되었다. (특수 4계) 팀장을 제외한 팀원이 모두 8명이라 기억된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밤 8시경부터 내 쪽에 사람들이 6-7명 집결하여 8층인가 특수부로 올라갔다. (거제의 김종점, 동생 정관제, 산청 정재호, 통영 최철문, 부산 관제 친구 박인규, 진주 김성식, 남양주 구리 김경연)


나는 근처에서 대기를 하였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밤인데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미팅”이 끝났다. 특수 4계 팀원들이 침체된 대한민국에 경제를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들떠 굉장히 흥분 되었다고 전해 들었다. 다음날 오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결재가 올라갈 것이고 결재만 떨어지면 도굴단은 추풍낙엽처럼 일망타진 될 것이라 하였다.


다음날 오전 11시경 이런 기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인 문재인이 가위로 싹둑 잘라버린것이다. 그때의 허탈감을 어찌 말이나 글로써 표현할 수 있겠나. ----


4. 일제 피해자 진상 규명위원회 사무국장 최봉태 변호사


‘일제피해진상규명위원회’란 국가단체가 신문로에 있었다. 위원장은 차관급이고 주로 검사가 맡았다. 노무현 때 만들어 졌고 초대 사무국장이 최봉태라는 대구 출신 변호사였다.


나는 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한 동안 아침마다 출근을 하다시피 문현동 ‘지하어뢰공장’을 들이 밀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는데, 최봉태가 내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서 부하 직원2-3명을 문현동 현장에 출장을 보냈다. 이 사실을 ‘일제피해자보상연합회’라는 민간단체 회장 김인성 (40년생) 씨가 직접 말해주었다.


부하 직원들이 돌아와 보고 하기를 그곳 지하에 일제가 숨겨놓은 어뢰 공장이 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복명 했다. 이리하여 최봉태는 결재라인인 청와대 문재인에게 결재를 올렸다. 문현동 지하를 조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OK싸인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는 것이다. 두 번씩이나 비토당한 최봉태가 울분을 삭이지 못해 책상을 치면서 불평을 하는 모습을 김인성 회장이 다 봤다. 이리하여 눈치 빠른 김인성 회장이 거금 삼천만원을 투자하여 지하땅굴을 전문적으로 찾는 “나노테크 ENG”라는 회사에 의뢰를 했다.


문현동 현장 뒤편 산위에 전문가들이 동원되어 바둑판 같이 땅을 쪼개는 선을 긋고 지하를 탐사한 결과가 “문현동 지하 유골탐사보고서”다. 그 보고서에 보면, 내가 주장하는 산 밑의 깊은 지하에 큰 공간(지하어뢰공장)이 숨어있다는 진실이 나타난 것이다. 지하어뢰공장이 정말 존재하고 있다면 “금도굴”을 했다는 말도 무게가 실릴 것이고, 유골 1,000여구도 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런데도 모른 체 한다면 그건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만약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이 바로 “금도굴”이 들통 날까 노심초사하는 범죄단과 한패이다.


5. 농림부장관 박홍수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농림부장관을 지낸 사람이 故 박홍수다. 그는 경남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를 나왔고,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해 그의 고향인 경남 남해군 창선면 적량리라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동네 이장을 오래 맡았던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나와 연결되었다. 그 때 이 분은 테헤란로에 위치한 특허청 빌딩 뒤쪽 이면도로 깊숙한 곳(어린이 놀이터 옆)에 어느 이층 단독주택에서 무슨 일인가 보고 있었다. 방이 여럿인 그 집에 방마다에는 남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골똘히 무슨 일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박홍수에게 물어보니 무슨 국가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동네 이장처럼 허름한 잠바에 새마을 모자를 쓰고 있으니 누가 그 사람이 곧 장관이 될 사람인 줄 알았겠나?


그가 큰소리를 쳤다. 문현동 금 도굴사건은 기필코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장담이다. 그 뿐 아니었다. 나에게 칠십 평이 넘는 오피스텔도 공짜로 쓰라는 거다. 또한 고급렌트카를 임대해 사용하게 해 주었는데 무려 세 달동안 잘 타고 다녔다. 또 명함까지 찍어 주었는데, 그 오피스텔 주소에 회사이름과 ‘회장 정 충 제‘ 라는 직함까지 박혀 있었다. 어리둥절 하면서도 나는 그의 장담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 달 정도 지났을 때 였다.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만나자는 거다. 그래서 그의 안가(安家)인 어린이놀이터로 달려갔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이일에서 손을 떼야 되겠습니다.” 호언장담하던 때와 딴판이었다. 파랗게 질려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왜 그래요?” 하면서 물었더니 몇 번을 멈칫거리다가 드디어 대답을 했다.


“처 청와대가 너무나 깊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그, 그래서 저가 더 이상 어찌 해볼 방법이 없네요.”


그가 나에게 뱉어 놓은 마지막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 얼마 후에 농림부장관이 되었다. 이 것이 문현동 금 도굴의 실상이다.


6. 경남KCIA 간부 박상동


경남 마산시에서 진해로 넘어가는 초입에 ‘공단’이 있고 그 근처에 경남KCIA가 존재하고 있었다. 백방으로 문현동 금 도굴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였다. 그 때가 아마도 2004년 봄이라 기억된다. 어떤 사람의 소개로 경남KCIA를 찾아 갔다. 박상동이라는 간부의 이름을 대고 면회를 신청했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문현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 도굴을 낱낱이 말해 주었다. 박상동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장에 본부에 보고하여 해결 하겠다고 흥분했다.


일 후 만났을 때 풀이 팍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모가지가 열 개 있어도 안 됩니다. 뎅강 날라 갈 뻔 했습니다. 이제 저를 찾아오지 마십시오.” 그 때의 이 말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7. 위원장이 말한 ‘금기’란 무엇을 말하나?


‘일제강점기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위원장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전남광주 출신에 검사 출신 정선태라는 분이 왔다.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는데 경복고등학교라고 하였다. 수소문을 하여 그와의 동창생을 한 사람 찾아냈다. 그리하여 어렵게 위원장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선태가 문현동에 관한 말을 다 듣고 나더니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자신의 임기 중에 문현동이란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라고 하였다.


왜 “금기”인가? 위에서 “큰 세력”이 문현동을 막고 있는데 감히 자신의 힘으로 건드린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날라 간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큰 세력”이 누구인가?


8. 국정원의 안가가 여관이냐 호텔이냐?


도굴단의 두목 백준흠(58년생)을 국정원의 안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준다는 말을 들었다. 위치 추적기까지 허리춤에 채워진 것을 어느 술집에서 허리춤을 뒤집어 보여주면서 자랑했기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국가에서 보호해주는 국보급인간”이 바로 도굴단의 두목 백준흠이었다. 어이가 없는 일은 이렇게 대한민국에 엄연히 존재하였다.


그 안가를 관리하고 책임졌던 사람의 직책과 이름은 안전과장 김민수(48년생)로 전남광주 출신이다.


9. 도굴단과 청와대를 접목시킨 ‘고리’


김성태가 작성한 A4용지 404쪽짜리 일기장에 보면 신필균, 신낙균 자매가 나온다. 신낙균은 언니로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한 국회의원 출신에 여성부장관이다. 또한 이 여자는 언니이고, 이 여자의 동생이 신필균인데 (48년생)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담당 비서관을 하였던 절름발이 독일 박사다. 이 자매가 도굴단 두목 백준흠과 불가분의 관계로 백준흠이 제주도 애월읍 광영리에서 활동할 때다. 문현동에서 싣고 간 도굴된 “금”을 감추기 위해 일본군이 파서 숨긴 굴을 찾는 작업을 할 때, 이 여자들이 번갈아 제주도를 들락거린 사실이 나타난다. 이렇기 때문에 이 여자들이 바로 노무현과 도굴단을 연결시킨 “고리”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0. 노무현과 도굴단 두목 백준흠의 관계


‘열기구협회’라는 사회체육단체가 있다. 큰 풍선에 바람을 넣고 밑에 소쿠리를 달아서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구를 사람이 타고 가는 단체다.


이 단체서 2001년도에 태평양을 횡단하여 , 미국까지 날아가는 행사를 한 사실을 알아냈다. 이 ‘행사의 조직표’를 보면 어이가 없다. ‘추진위원장’이 노무현, 당시 종로 보선에 당선된 국회의원이고, ‘총괄본부장’이 바로 금도굴의 두목 백준흠(58년 생)이라고 활자로 박혀 있었다. 이 둘은 동호인으로 20년 이상을 동거(同居)는 아니고 동락(同樂) 해온 사실이 나타 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서로가 너무도 잘 안다는 것이다.


백준흠이 생긴 것이 빈약하다. 체구도 왜소하고 가늘게 생겼다. 한참 도굴할 당시에 몸무게가 채 60kg이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왼손으로 목덜미를 낚아채어 오른손으로 그의 허리춤을 잡아 번쩍 치켜들어 2~3m 씩이나 던져 버린 적도 있었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뼈 속이 새처럼 비었는지 가벼웠다. 그래서 그런지 생긴 것도 꼭 맹금류였다. 큰 눈알이 꼭 맹금류의 눈알이었다. 눈매가 매서워 그를 볼 때마다 독수리가 생각났었다. 그뿐 아니라 외모처럼 거짓말을 너무도 잘 했다. 쉽게 말해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마무리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가 지껄인 말이 거짓말을 했는지 본인이 모를 정도인 것이니 말해 무엇 하겠나? ‘도덕적 불감증’ 환자의 전형이 바로 이 놈이다. 그러니 물 만난 물고기처럼 ‘노무현을 등에 업고 온갖 간 큰 짓’을 한 것이 바로 문현동 금도굴이다.


그리고 이자와 찹쌀궁합으로 만난 엉큼한 삼천포 출신 김성태는 또 어떤가? 이놈은 태어난 자체가 천상 ‘도둑놈’ 이었다. 소도둑놈 같이 큰 덩치에 엉큼하기가 말 할 수 없는 이 자와 교활한 맹금류 인간 백준흠이 서로 만났으니 궁합이 찰떡이다. 둘이 그렇게 붙게 된 매개체가 노무현이다. 세상에 대통령이 뒤를 봐준다니까 무식한 촌놈 김성태는 앞 뒤 잴 것 없이 맹금류 백준흠을 상전 모시듯 받들었고, 간(肝) 크게 우쭐 거렸던 것이다. 어쨌든 노무현이 도굴단과 접목됨으로써 명대로 살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원인임을 알 수가 있다. 이런데도 또 다시 스스로 ‘폐족’이었다는 노무현의 졸개들이 ‘문현동의 금’으로 다시 ‘대통령’을 만들어 내었다. 그 최고 수혜자가 바로 문재인이다.


11. 실상을 적은 책 문재인에게 전달


문현동 금도굴에 실상을 책으로 발간하였다. 책 제목이 “황금백합작전”이다.


이 책이 나오자 나는 책 열권을 묶어들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2010년 2월초) 부산 초량에 위치한 부산 YMCA사무실이다. 문재인이 서울로 입성하기 전 오랫동안 부산 YMCA이사였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총무에게 책 열권을 주었다. 문재인에게 한 권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면 아홉 권은 임의로 처리해도 좋다고 하였다.


며칠 뒤 확인해 보니 문재인에게 총무가 직접 전달해 주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한 이유는 사실이 아니라면 나를 고소하든지, 대응을 유도하기 위함인데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다. 반응을 하여야 세간에 이목을 모을 텐데 눈치 빠른 문재인이 내 뜻을 간파하고서 쉽사리 말려들지 않은 것이다.


그 책에 도굴단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었고 노무현이 ‘금도굴’ 때문에 비명횡사했고, 문재인이 노무현을 도마뱀 꼬리 자르기의 일환으로 제거(타살)했다고 실명으로 썼음에도 무반응 하였다는 사실은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는 것이 아닌가?


12. 문재인의 절친 연합통신 지방 국장


문재인이 졸업한 경남고등학교 한반 동기 중에 절친한 한사람이 있었다. 연합뉴스 지방 국장을 역임한 조양일이 바로 그다. 별명이 “연탄”이다. 피부가 검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조국장이 책임지고 문재인이 있는 청와대에 알려 “문현동 금도굴” 사건을 해결해주겠다고 나와 단단히 약속했다. 그 댓가로 전체 지분 10/100을 조국장이 지정한 사람이름으로 공증해 주었다.


그 10%속에는 문재인의 몫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한동안 조국장은 열심히 “문현동 금도굴”사건의 해결을 위해 뛰어 다녔다. 돈도 많이 썼다. 그러던 그가 실체를 알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아이고! 선생님 저는 이만 발을 빼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지분은 어쩌고?”


“지분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찌 내 친구를 죽일 수 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요?”


“아이고... 내친구(문재인)가 너무 깊이 관련 되어 있는 것이 확인 되었는데, 어찌 더 이상 내가..”


지분도 포기하고 뒤돌아서 꽁무니를 빼든 조양일 이었다. 이로서 문재인이 아니 노무현과 그 패거리들이, 청와대가 통째로 “문현동 금도굴”에 관련된 것이 확인 되었던 것이다.


13. 금 도굴단을 비호한 검사 서범준


나를 수사하던 검사 서범준이 나에게 제의한 말이다. “국가(검찰)가 개인들의 이권다툼에 개입 (수사)하는 일은 참으로 난처합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는 제 말을 비중있게 들으시고 잘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생님을 생각해서 하는 이 말씀을 오해하시면 앞으로 고생을 많이 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첫째, 지금까지 6개월가량 해온 수사를 이로써 종결지을까 하는데 제 뜻에 따라 주시는 것이 선생님에게 유리할 것입니다." 나는 그 때까지도 꿈을 못 깨고 있었다. 그래서 고함부터 질렀다.


“검은 까마귀 흰 까마귀 가려달라고 부를 때 마다 KTX를 타고 정확하게 출두했는데. 국가가 개인들의 이권다툼에 개입하기가 난처하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요?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되네!” 그랬다. 서범준이 진정으로 닥쳐올 미래의 위기에 대해서 나에게 힌트를 준 것인데 돌대가리인 내가 그걸 몰랐던 것이다. 서범준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시는 게 현명합니다. 둘 다 무혐의 불기소하여 형사 문제를 끝내고, 정 억울하면 유능한 변호사를 구해 민사로 해결하시기를 진정으로 권합니다. 세월이 가고 나서야 그때 서범준이 한말의 진실이 가슴을 때린다. 애송이 서범준을 지휘한 검사가 바로 유명한 뇌물검사 김광준이다. 조희팔로부터 거액을 받은 것이 들통 나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살고 있다. 서범준이 대구출신이고, 김광준도 대구출신이다. 바로 옆방이니 또 직속상관이니 얼마나 멋지게 날 함정에 엮어 빠트렸겠나? 결론은 말단 지청에 애송이 검사가 상층부의 지시없이 어찌 독단적으로 나에게 “합의를 제의”했겠는가?에 있다.


14. 통신사 사회부장 김병헌과 노무현의 봉하리


‘뉴시스’라는 민간 통신사에 사회부장 김병헌이 있었다. 마산고를 나와 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에서 프랑스 파리특파원까지 했다. 그러다가 “뉴시스”가 생기자 옮겼고, 사회부장일 때 나를 만났다. 이 사람은 머리가 비상해서인지 처음부터 내말을 인정했다.


지하 어뢰공장도 인정하고 금도굴도 100% 인정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기사를 내보냈는데 무려 7번이나 연속하여 썼다. 진검승부를 하겠다며 도굴단의 이름과 등장 정치인들의 이름을 모두 실명으로 기사화 한 것이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사람의 고향이 경남 김해군 진영읍이었고, 노무현의 고향 봉하리와는 지척간이라 했다. 그래서 노무현의 집안을 잘 알았다. 아버지가 노판술이고 노무현의 어머니가 전라도 말을 심하게 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6.25후에 전라도 지방에서 봉하리로 흘러왔다는 것이다.


김병헌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했다고 하였다. 어쨌든 기사의 폭발력은 대단 했다. ‘도굴단’들이 반응한 것이다. 김성태를 필두로 두목 백준흠, 하진수, 다이버 채상훈, 조읍규등이 김병헌이 당직 날 인걸 용케도 알고서 일요일 뉴시스 본사로 쳐들어 온 것이다. 이들은 이처럼 항상 떼를 지어 몰려 다녔다. 김병헌에게 실명으로 기사를 썼다고 항의를 했고, 다음날에는 당근을 제시했다, 꼭 바깥에서 자기네들을 만나달라고 나중에는 사정까지 했다고 하였다. 그 무렵 국정원에서 언론사를 출입하는 담당이 김병헌에게 은밀하게 만나자고 하였다.


그래서 만났더니 리챠드롤리스(미 CIA 극동책임자)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고 또 정충제도 샅샅이 캐물었다고 했다. 그 얼마 후 김병헌이 태도가 변했다. 나를 만나는 걸 회피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내가 구속되었다. 이때가 2005년 9월 6일이다. 이로부터 44개월 동안 기나긴 수형생활를 마치고 2009년 5월에 교도소를 출감했다. 나오는 길로 김병헌을 찾았다. 놀라웠다. 뉴시스에서 월급을 제때 못 받아 항상 궁핍했던 그는, 그때 마누라로부터 이혼까지 당하여 아파트며 모든 재산을 빼앗겼다. 빈 몸뚱이와 옷가지가 들어있는 가방하나만 달랑 들고 쫓겨나 뉴시스 사무실에서 간이침대를 놓고 연명했었다. 그런데 그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빈털터리가 졸지에 고급인간이 된 것이다. 내가 구속되자 즉각 여의도에 국가보훈처 대변인이 되었다. 그것도 4급 서기관이었다.


그리고 4년 만에 교육과학체육부 대변인실로 영전 하였는데, 이때는 부이사관 대우다. 그뿐만 아니었다. 비실거리던 신체는 싹 바뀌어 번쩍번쩍 생기가 흐르고 광채가 났다. 양복도 모두 최고급 명품이었고 새장가를 들었는데 젊은 마누라가 삐가 번쩍하였다. 아침 출근 때는 강남 모처에 고급동네의 아파트에서 외제자동차로 광화문 청사까지 모셔다 준다고 자랑했다.


나에게 고생 했다면서 지갑속에서 1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내 용돈으로 쓰라고 주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판인가? 문현동의 금도굴을 너무도 깊이 알고 있는 그에게 노무현 정권에서 채찍 대신 당근을 주어 팔자를 고치게 한 것이 아니고 뭔가? 그 후로 무서워서 만나고 싶어도 그에게 연락해 만날 수가 없었다.


15. 동부지청에 전화를 건 노무현


2005년 7월 초의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부산지검동부지청으로 출두했다. 벌써 여섯 달째다.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에서 동부지청까지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오전 11시에 맞추려면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가서 또 KTX로 갈아타고 부산역에 내려 택시를 타야 겨우 그 시간에 맞출 수가 있다. 그 날도 젊은 검사 서범준과 나는 날카롭게 대립하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내가 동쪽이라고 진술하면 어떤 영문인지 ‘서’는 꼭 서쪽이라고 하였다. 매사가 나와 정반대로 거꾸로 인 것이다. 그러다가 그가 뭔가 말문이 막히면 쪼르르 옆방에 갔다가 한참 후에 돌아왔다. 옆방은 수사지휘 검사로 ‘부부장검사’란 직책을 가지고 있는 전국에서 유명세를 탔던 김광준이었다.


조희팔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꿀꺽’한 혐의가 들통 나 징역 7년을 선고 받고 지금 감옥에 있는 ‘더러운 검사’다.


그 자도 대구출신, 애숭이 검사였던 담당 서범준도 대구출신이다. 나는 그때 까지 한 번도 지각하지 않고 착실하게 출석 했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티격태격 하다가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었다. 소변기 앞에 서서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는, 난감한 이 수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하면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찌르며 아는 체 한다. 고개를 돌려보니 뜻밖에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개로 진주에서 자주 만났던 고향 후배였다.


이 아무개는 본래 직업이 배를 타던 ‘무선사’였다. 원양어선을 타고 먼 바다에 조업 나가는 마도로스생활을 하던 사람이다. 어찌어찌하다 검찰청에 취직이 되어 공무원이 된 사람으로, 진주지청에서 ‘무전사’로 근무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것이다. “니~가 여기 웬일이고?” “아이고, 행님! 행님은 여기 웬일입니까?”


내가 특수부 서범준 에게서 수사를 받고 있다는 말을 하자, 그는 잠깐 자신의 방으로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차를 한 잔하고 가도 괜찮다고 하였다. 화장실 옆이 바로 통신계장 방이었다. 그 아무개는 승진하여 그 방에 책임자인 통신계장 이였던 것이다. 방은 꽤 널찍했고 부하 직원도 서넛 있었다. 그러니 그는 나에게 출세한 자신을 자랑하고 싶었던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었다.


“도대체 행님! 사건이 뭡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문현동 금도굴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행님이 바로 주인공입니까?”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방의 사람들 시선이 모두 날 향해 있었다.


“주인공이라니? 그기 무슨 말이고?” “아이고~ 세상에~ 우리회사(동부지청) 직원들 중에 문현동 금도굴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니? 그기 무슨 말이고? 어찌. . . “ ”아이고야! 지난 번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당선자 신분으로 ‘젊은 검사들과의 대화의 장’을 한 적이 있지요?”


〔“그래 있지~” “노무현이 동부지청장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입니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TV에서 뉴스로 전달되는 그 장면을 본 기억이 생생해서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질문한 검사에게 시빗조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때 어떤 젊은 검사가 노무현에게 질문을 하였다.


“당선자께서는 무슨 이유로 부산동부지청에 전화를 거셨던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하면서 대화의 장이 개판이 되고 말았던 기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런 일이 있지? 그 일이 와? 내하고 상관이 있나?” “행님이 그 주인공인 것을 알았으니까, 놀래는 것 아닙니까?”


‘문현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제어뢰공장 도굴사건에 관심을 끄고 수사하지 마라!’ 이것이 노무현이 그때 지청장에게 전달하고자 하였던 핵심이었다는 말이었고, 그래서 당시의 동부지청 직원들 모두(말단 타이피스트까지도)는 문현동도굴사건에 대해 오래 동안 ‘인구에 회자’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웃기는 것은 노무현이 ‘당선자 신분’ 일 때부터 문현동금도굴에 깊숙히 관련되었다는 증거다(아무게의 이름과 신원은 추후 기회가 되면 밝힐 것이다).


추신


앞에서 언급한 어떤 젊은 검사(노무현에게 질문한)가 검찰을 떠나 옷을 벗는다는 기사가 모 일간지에 실렸다(2017. 8. 2. 수). 우측 상단에 박스기사로 큼지막하게 났다. 그 검사의 사진도 함께 올랐다. 제목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그 밑에 더 큰 활자로 ‘盧–검사와의 대화‘ 檢간부 퇴장으로 뽑혀 있었다.


그 젊은 검사의 이름은 '김영종'이었고 수원지검 안양지청장이 끝이었다. 사법연수원 23기다. 그 때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검사 열명 중에 일곱 명이 옷을 벗고 셋만 남아있단다.


김검사 역시 동기생들이 모두 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누락되었으니 옷을 벗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다. 어쨌든 도둑놈 대통령 문재인이 들어서고채 100일이 안되어 ‘커트’ 되고 말았으니 우습니다


한 시 바삐 이 김영종검사를 수소문하여 만나볼 참이다. 그리하여 그때 김검사께서 노무현이 동부지청장에게 전화를 건 용건인 ‘문현동 금도굴’ 사건에 ‘노터치’하란 말을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물어봐야 될 일이다.


16. 비자금 20조원(Ⅰ)


문재인 비자금 20조에 대해서 말하겠다.


정옥자라는 할머니가 계신다. 전남 광주여고를 졸업했고 이대를 나와 육군사관학교 교수를 하였기 때문에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정교수님”이라고 호칭한다. 나는 이 여자를 세 번씩이나 만나 봤다. 그래서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장('이기승'이라는 48년생 남자,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다)이 발행한 수표(1조원짜리)가 진본임을 잘 알았다. 정 교수님 말의 핵심은 “내가 나이 들었는데 돈이 탐이 나서도 아니고 명예가 탐이 나서도 아니었다. 다만 저런 사람(문재인)의 정체를 알고 나니, 저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서는 이 나라가 큰일 나겠구나 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폭로하게 된 것이다.”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 앞에 말한 '이기승 영업부장'은 전 대법원장 이영섭 씨의 장남이라고 했고, 지금은 뭘 하는지 확인을 하니 재벌기업 방계회사 회장이라고 하였다. 1조짜리 수표가 스무장, 한 장, 한 장 마다의 고유 번호가 유튜브에 동영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 거액의 자금이 부산 문현동에서 금도굴로 조성된 돈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왜 그런가? 이 수표가 사실이라면 이 작은 나라에서 그런 거액이 만들어 질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진작 당사자인 문재인은 5-6년을 유튜브에 동영상이 돌아다녀도 수수방관하였다.


정 교수도 멀쩡하였고 모를 리 없을 텐데 문재인도 한마디 말이 없었다. 19대 대선을 목전에 둔 3월 하순경이다. 느닷없이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나에게 전화가 왔다. 'KBS추적 60분'에 아무개 여자 작가가 내 전화번호를 찾는다고 하였다. 가르쳐 주어도 되느냐고 물은 것이다. 앞전에 내 동생 정성제가 부산 사상구에 있는 문재인 지역구 사무실에 “신나통”을 들고 들어간 사건이 있은 직후에 SBS 방송 ‘Y그것이 궁금하다’ 팀에서 여자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고 출판사에서 방송국이라 믿고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방송에 출연했는데 내 영상만 내보내고 입을 막고 자막처리 한 적이 있었다. 완전히 엉터리였다. “신나통”사건에 얼마나 충격을 받고 똥줄이 탔으면, 그 당사자인 나를 SBS방송국을 시켜 유인하여 엉터리 방송을 내보냈을까? 이리하여 나의 가정이 노출되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숨어 다니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나는 그런 이유로 그날 'KBS추적 60분' 보셨어요? 묻는 답에, "본 적이 없는데 뭐가 나왔어요?“ ”정옥자 교수가 나왔답니다. 외환은행 수표 때문에요“ 나는 깜짝 놀랐다. 방영날짜를 대략 계산해보니, 앞에 나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하던 때부터 촬영 했다면 꼭 들어맞는다. 그때 나에게도 출연 요청을 했을 것이고 정 교수와 내가 함께 방영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 애기가 웃긴다. 뭣도 모르고 KBS 제의에 응했던 정 교수가 노발대발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라면서 펄쩍펄쩍 뛴다는 것이다. 나는 알았다. SBS에서 당해봤기 때문에 그 심정을 충분히 알고도 남는 것이다. 정 교수는 선의로 가장한 KBS만 믿고서 출연에 응했을 것이고, 결과는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외면하고 180도 다른 반대쪽으로 몰아가는 장난을 쳤을 것이기 때문에 심한 모멸감과 아울러 배신을 느꼈으리라. (실제로 방송을 보고난 정 교수는 노발대발 KBS에 속았다며 펄펄 뛰었다고 전해 들었다. 내가 SBS에 당한 것과 똑 같이 유인 당해 연출된 것이었다. 문재인 측에서 다급하기는 다급했던 모양인가보다. 어쨌든 문재인이나 정옥자 둘 중 하나는 죽어야 이 사건의 흑백이 드러날 것임은 자명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선거를 목적에 두고 뒤가 구리기 때문에 선거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되어 꾀를 부린 것이다. 쉽게 말해 물 타기를 하여 예방주사 효과를 노린 것이다. 참으로 비열한 짓이다. 이렇게 하여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문재인은 다음은 또 어떤 짓을 할까?


추 신


2017년 8월 1일 화요일 이다. 오전 10시 30분경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팀의 여자 작가로부터 재 전화 번호를 알고 싶다고 전화가 왔단다.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프로에 날 찍겠다는 것이었다. 또 장난이구나 싶었다. 그랬지만,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사장이 가르쳐 주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용건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답이 웃겼다. 처음에는 박수웅(박정희대통령의 이발사)이 어쩌고 하더니 우물쭈물 더듬거리다가 ‘마쓰시다’ 금이 어쩌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씨부렸다. 그러면서 금에 대해서는 선생님(나, 정충제)이 최고로 잘 아는 분이 아니냐고 나를 치켜세운다. 몇 마디 말에 사태가 전부 파악되었다. 또 장난이구나, 어이가 없었다.


“야! 너 또 장난할거냐? 누가 시켰어?” “그게 아니고. . .“ “아니긴 뭐가 아니냐 너희들이 공영방송이라고 하면서 양아치짓 계속하면 안돼!“ “무슨 그런 심한 말씀을. . .“ “내가 너희들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지 않아?. . .“


“Y 그것이 궁굼하다, 말입니까?“ “잘 알고 있네, 너희들이 한 통속으로 다 짜놓고 또 허방에 빠뜨리려고 그러는 줄 내가 모르는 바보냐?“


나는 호통을 치고 전화를 끊었다. 문재인 쪽에서 내 동향을 염탐하려고 장난을 치는 줄 누가 모를까 , 멍청이 같은 비열한 놈들! 잘 돌아가는 대한민국이로다.


17. 채찍과 당근


없는 죄를 만들어 나를 “사기꾼”으로 만들고, 문현동 “금”으로 노무현의 청와대를 잔치판으로 만들고 ‘폐족’들에게 산더미 같은 돈을 안겨서 나라까지 훔치게 만들었다. 그 뒤 하수인 검사 서범준은 어찌됐을까? 알아보니 대구 계성고, 고대 법대 출신에 거구의 서범준은 그 후 “특혜로” 판사에 전출되었다. 당근으로 무엇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이 또한 당근 중에 하나라고 본다.


18. 형제가 모두 정신병자로 둔갑


나(정충제) 그리고 나의 넷째 동생(정성제) 둘 다 ‘정신병자’라고 문재인은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 파일에 정충제는 분명히 ‘정신병자’라 되어 있다. 신나통을 들고 들어갔던 정성제도 ‘정신병자’라 하였다. ‘정신병자’가 맞다면 그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정신병’하고 우리 집안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정신병원에서 감정해보면 알 것이고, 또 의료보험조합에 조회 해본다면 지난 세월에 다닌 병, 의원, 약국이 다 나올 것이다. 정신병과 관계된 약이나 치료, 진찰 등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이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는데 급급해 생사람을 정신병자로 단정하고 몰아간 죄가 크다. 멀쩡한 형제를 둘 다 ‘정신병자’로 모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인가? 상당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인데 그 이유를 문재인에게 물어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19. 내가 중국행을 택한 이유


정부기관인 ‘일제 강점기 피해진상규명 위원회’ 위원장 이었던 정선태라는 분이 계셨다. 검사 출신인 정선태씨는 그 후 법제처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지금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이 분에 대해서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정선태씨로 인하여 ‘문현동 금도굴’ 사건이 왜 해결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씨와 친한 고등학교 동기 동창인 함 아무개 씨를 알아내었고 이 분을 통해 들었다. 정씨가 직접 말했다고 했다.


“문현동은 내 영역 밖이야, 손대면 큰 일 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동안 문현동을 손대면 내가 다쳐, 그러니 모른 척 해야 돼” 이 말이 그때 정씨를 만나고 나서 나에게 전해준 함 아무개씨가 한 말이다. 관련기관의 장이 한 말이 이렇다면 이 말속에 모든 해답이 다 들어 있음을 나는 간파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문현동금도굴’ 사건이 해결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다. 그 후 노태우 비자금을 터뜨린 전 국회의원 박계동씨가 주축이 되어 신문로 새문안교회 건너편 인도에서 데모가 있었다. 일제피해자연합회 회원들인 노인들이 700~800명 모여 부산 문현동 지하어뢰공장 속에 방치되어 있는 강제징용자 유골 1,000여 구를 발굴하라고 촉구하는 데모였다.


이날 박계동 전 의원과 오봉주 후임 위원장이 위원장실에서 만나 약속하였다. '문현동 유골' 찾는데 무게를 두고 하루 빨리 발굴하기로 하했다고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흐지부지 김이 빠졌다. 문현동은 언제나 이런 꼴이었다.


그 후, 나는 대한민국 땅에 있는 것이 무서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당할지 몰랐다. 동선(동선)이 노출되어 있으니 도굴단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위해(위해)를 가해 올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부득이 중국행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유사 이래 금액면에서 제일 규모가 큰 문현동 금도굴을 자행한 자 들이 누구인지 한 시 바삐 명명 백백히 밝혀내어야 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능지처참'을 하고 '부관참시'도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이 보다 시급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20. 도굴한 ‘금’을 숨기기 위해 무대를 제주도로


도굴범으로 나의 조수였던 배신자 김성태가 작성한 일기장(A4용지 404쪽 짜리)이 내 수중에 있다. 도굴단에게 ‘바지’씨를 내세워 투자를 하겠다고 속여서 입수한 내부 서류가 무려 큰 가방 으로 두 개나 된다. 별별 서류며 사진이 가득 들어있었다.


도굴단이 ‘금’을 갈라먹기 위해 작성한 배분표등 모두가 중요서류였는데 그중 유독 눈에 띄는게 바로 일기장이다. 문현동에서 1차 도굴이 끝난 시점이 2002년 8월말 경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빼낸 ‘금’을 부두에 정박하고 있던 170톤 탐해호로 옮겨 실었다. 그리고 종횡무진으로 동해안 후포항 근처, 서해안 군산 앞바다 말도 근처의 수중, 그리고 제주 애월읍 광영리 해안의 바다 속에다 숨겼다. (이 일기장에 다 나타나 있다.)


그중 제주도에서의 그들의 작업이 흥미로 왔다. 애월읍 할렐루야 기도원 위쪽에 고급팬션이 있고 호화판 그 집을 통째로 전세 내어 본부로 삼았다. 완전히 유람을 온 부자들 같이 행세 했는데 비싼 ‘다금 바리’ 회를 밥 먹듯 즐기고 사흘마다 소갈비를 사다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그들은 그 근처 지하에 숨어 있는 일본군들이 판 지하 굴을 찾았다. 왜 지하 굴을 찾았나?


그것은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굴을 찾아냄으로써 문현동에서 싣고 간 ‘금’을 그 굴속에 옮겨 놓고서 이벤트를 할 요량이었다. 애당초 ‘금’을 그 굴속에 일본군들이 숨긴 것처럼 꾸며서 자신들이 죽기 살기로 찾아낸 것처럼 ‘쇼’를 하겠다는 것이다. ‘금’이 소량이었다면 그런 ‘쇼’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었다. ‘금’이 워낙 많다보니 그렇게라도 하여 ‘오픈’을 해야 양성화 되어 햇볕 속에 당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구색을 갖추어야 하였고, 가장 필요한 것이 그들이 찾아내기까지의 고생한 무용담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기장을 작성한 것이다.


이리하여 무대가 부산 문현동에서 제주도 애월읍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그들이 한참 이런 작업을 할 때 격려차 또는 유람 차 이곳에 여러 번 들렸던 여자들이 바로 신낙균이라는 남양주 출신의 국회의원과 장관을 역임한 민주당 최고위원이였다.


그리고, 김대중 시절 청와대에서 여성담당 비서관을 했던 절름발이 장애인 신필균이다. 신낙균이 언니 이고 그 친동생이 신필균이다. 부산에서 도굴해 제주도까지 싣고 간 장물인 ‘금’을 숨기기 위해 ‘굴’을 찾는데 찾아가서 같이 희희낙낙 거렸다면 당연히 그 여자 자매 둘도 도굴단원이다. 그리고 공범인 것이다. 이런 일을 모두 소상히 내가 알게 되었기에 청와대가 ‘금도굴’에 개입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21. 뉴욕에서 온 금융가의 증언


태극기 집회, 촛불 집회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2016년 10월 달이다. 미국 뉴욕에서 온 재미 교포가 날 찾는다는 말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미국교포가 왜 나를 찾는가? 일단 만나 보기로 했다. 서대문에 있는 어떤 교회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나이가 62세라는 점잖게 생긴 사내는 말쑥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소개를 하였다. 이름이 제이슨 배라고 하였다.


고향은 은평구 신사동이고 부친은 목사였다고 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대학은 ‘청산학숙’을 졸업했고 롯데회장 신동빈과 동기동창이다. 특히 영어를 잘했고 그래서 졸업과 동시에 동경은행에 입사하였다. 몇 년 후 미국 뉴욕으로 발령을 받았다. 일본인에 비해 발음이 유창했고, 특히 그의 뛰어난 영어 실력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십여년 미국생활에서 투자전문가가 되었다. 그리하여 개발 투자회사를 설립했고 엄청난 부를 손에 거머쥐었다. 그의 일과는 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세계 금융의 흐름을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뉴욕의 맨하탄이 세계금융의 중심지이다 보니 어디서 어디로 뭉칫돈이 흘러가는지 한눈에 훤히 들여다 보는 것이다. 2008년 이라고 했다. 5월경인데 뜻밖에도 ‘금’이 200톤이 홍콩의 금시장에 나왔는데 대한민국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금’ 생산국이 아니고 소비되는 전량을 수입하는 것이 한국의 실정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신경을 집중하여 추적을 하였다, 홍콩이 국제항이다 보니 출처를 따지지 않고 ‘금’은 처분되었고 그 돈은 몇 번 세탁되어 한국으로 흘러 들어갔음을 확인했다. 금 200톤이라? 이 의문이 늘 머릿속을 맴 돌았다. 그리 하여 한국에 인터넷을 뒤졌고, 인터넷에서 문현동 ‘금도굴’을 알게 되었고 또한 정충제라는 이름도 알게 된 것이다. 서울에 온 김에 나를 수소문하였고 책(황금백합작전)이 출판된 사실을 알고 출판사에 연락해 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금200톤’이 한국에서 홍콩에 싣고 간 것이 2008년 5월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한국 에 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나는 2011년 12월 말에 중국으로 갔다. 내가 간곳이 대련인데 그곳에서 조선족 젊은 중국변호사를 만났고 그가 나를 보호해주었다. 즉, 나의 후견인 이 된 것이다. 둘이서 북경에 갔다. 서울에서부터 알았던 조선족 실업가의 초청을 받고서다. 북경에서 만난 이 실업가가 나를 초청한 이유가 문현동 ‘금’이라 추정되는 ‘금’이 홍콩에 나타난 적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 만났을 때 내가 그에게 책(황금백합작전)을 한 권 준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문현동 ‘금도굴’에 대해서 잘 알았다.


그가 2008년도 봄에 이웃에 살고 있는 중국 경찰 수뇌부의 아들과 함께 홍콩에 간적이 있다고 하였다. 목적이 한국에서 ‘금’이 들어왔다는데 확인하러 가자는 수뇌부 아들이 말한 제안에 의해서다. ‘금’을 싣고 온 사람들을 직접 만났고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실업가가 ‘정충제’라는 이름을 말하면서 아느냐고 물었단다. 그 때 그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 하였다. 너무나도 당황하며 놀라던 일행 3명은 일체 입을 열지 않고 꽁무니를 빼더니 그다음부터 연락이 두절 되었다고 하였다. 홍콩까지 ‘금’을 그것도 200톤이나 싣고 간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나 싣고 갈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정옥자 교수의 20조원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뉴욕에서 온 제임스 배나, 이 조선족 실업가가 한 말의 시점이 일치되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정옥자의 20조원 역시 홍콩에서 한국 외환은행으로 거액의 달러가 들어왔음을 들었다.


내가 아는 것은 그 한번이지만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 실어 날라 돈으로 바꾸었을 수도 있었다. 참여정부와 청와대의 지시로 국정원이 개입되어 문현동에서 도굴된 ‘금’을 싣고나가 처분하여 국내로 들어온 돈이라 나는 믿는다.


문재인의 1조원짜리 수표 스무장의 일련번호를 확인하여 금융감독원에서 진실을 밝혀야 된다. 사실이면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고, 탄핵시켜야 된다. 그의 정체를 국민 앞에 까발려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정옥자를 허위사실유포로서 구속 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쌍방에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22. 문희상의 동생 문희재


중국에 조선족변호사를 만나고 나서 중국말 한마디 할줄 모르는 나는 생활에서 해방이 되었다. 그가 하던 변호사 일을 집어치우고 24시간 나와 함께 생활하는 후견인이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그가 모든 것을 부담했기에 나로서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격이었다.


어느 날 (2012년 4월 초순)해거름에 변호사가 헐레벌떡 들어왔다. “선생님! 이곳 대련까지 문현동 금도굴의 ‘돈’이 들어왔습니다.” 대련에서 10수년을 활동하던 변호사니 대련에 물정을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는 그였다. 대련에 개발구가 있는데 그곳에 ‘붉은 매화거리’가 있고 그곳이 바로 ‘코리아타운’이라 했다. 4차선 도로의 끝의 양쪽에 한국식 일주문이 서있고 그 길이가 400미터쯤 된다. 그곳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이 있다고 했다. 1개층에 면적이 한국 평수로 700평쯤 되니까, 4개층 이면 2,800평 ~ 3,000평 쯤 된다. 딸린 주차장이 있는데 자그마치 20,000제곱미터라 했다. 이곳에서 중국인이 큰 ‘이마트’ 같은 슈퍼마켓을 경영 했는데 부도가 나버렸다. 그리하여 이 건물과 부속된 주차장이 법원에 경매물건으로 나왔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두 번인가 유찰된 끝에 낙찰 받은 인물이 의외의 한국인이라고 했다.


의정부출신 다선 국회의원에 민주당 최고위원을 여러번 하였고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했던 문희상의 친동생이란 말이다. 그자는 48년생인데 대련에 흘러들어 온지 그 당시(2012년) 20년쯤 된다고 했다. 이름이 ‘희’자 돌림으로 문희재라 했다. 이자가 별 볼일 없이 미미한 존재였는데 2003년 여름경부터 한국에서 거금이 들어와 ‘대련한인회’에서 중요 간부 직책도 맡고 ‘재력가’로 변신했다는 말이다.


최근에는 추미애라는 여자 국회의원이 대련까지 그를 두, 서너 차례 찾아 왔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추미애만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 외 민주당의 고위 간부들 여럿이 자주 들른다고 하였다. 거물 야당 정치인의 동생이 하루아침에 거부가 되어 엄청난 규모의 건물을 낙찰 받은 주인 이 되고, 또 그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한국 상품을 파는 백화점이 될 것이라 하였다.


나는 다음날 일찍 변호사를 따라 홍매(紅梅) 거리에 위치한 그 건물을 답사하여 사진을 찍었다. 문현동에서 도굴된 ‘금돈’이 대련까지 흘러들어 왔다는 미증유의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이러고 나서 내가 이 사실을 폭로하는 글을 썼고, 인터넷에 달인인 변호사가 한국 인터넷에 이 글을 게제 하였다. (네이버 검색창에 1.정충제, 2.문현동, 3.황금백합작전을 치면 확인 할 수 있다.)


다음날 해질 무렵 변호사가 나타나더니 빨리 짐을 싸라고 했다. 위험하니 더 이상 대련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방을 싸서 그날 밤 8시에 산동성 옌타이로 가는 밤배에 올랐다. 남쪽으로 만리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변호사가 문현동 수직구를 뚫은 업자 전 수산중공업회장이 문현동의 ‘금돈’으로 설립한 회사 “수산기계유한공사”를 찾아 가보자는 말이 였다. 박주탁은 경남 남해군 창선면 수산리 출신이다. 경남고등학교와 서울상대 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