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월가에서도 금융의 중심으로 꼽히는 뉴욕 증권거래소 근처에는 ‘돌진하는 황소상(Charging Bull)’이 자리 잡고 있다. 주식 시장에서 ‘상승장’을 뜻하는 황소의 상징 때문에 동상의 뿔이나 급소 등을 만지면 재운(財運)이 들어온다는 속설이 돌면서 매년 관광객이 몰린다. 월가의 상징이자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이 동상을 만든 건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다.(중략)
모디카는 지난 2017년 황소상 맞은편에 세워진 ‘두려움 없는 소녀’ 동상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투자자문사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S)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기념해 소녀의 형상을 한 동상을 황소상 맞은 편에 세웠다. 당찬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린 소녀는 마치 황소에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월가에 여성 임원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동상이었다.
하지만 모디카는 “양성평등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소녀상이 세워지면서 황소가 가진 회복·힘·자유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반발했다. 황소상이 위력을 가진 존재로 비친다는 것이었다. 결국 2018년 12월, 뉴욕시는 소녀상을 증권거래소 앞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출처:중앙일보]
이 작가는 1997년에 볼링 그린에 유대인들의 하누카 축제에
메노라를 만들어서 선물한 전력이 있음.
세계무역센터(9.11테러일어난)에 있는 메노라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했던 기독교의 성직자로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인물인 ‘성 니콜라우스’가 태어났다.
니콜라오, 니콜라스, 니콜라라고도 한다.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2월 6일이다. 상징물은 황금이 든 세 개의 자루이며 어린이·죄수·선원·그리스·벨기에·불가리아·시칠리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 공화국·슬로바키아·그루지야·로렌·러시아·대한성공회의 수호 성인이다.
서울에는 그를 수호성인으로 하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과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이 세워졌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_amp.asp?arcid=0924313281
한국정교회(대주교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총본산인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뒤편 골목 안쪽에 있다. 한국정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회원 교단으로(중략)
1997년 ( 이탈리아 조각가가 하누카짭메노라를 준 연도)
축성한 이곳에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출신 성도가 함께 예배드린다
대한성공회(의장주교 이경호) 서울주교좌성당 역시 이국적 자태를 뽐낸다. 관광 명소로도 유명해 2007년 개방 이래로 매년 2만여명이 방문한다. 붉은 벽돌에 화강암이 어우러진 성당은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이 설 계한 것으로 1922년 착공해 1996년 완공...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바로크 양식의 교회는 Malostranskénáměstí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원래는 13세기 Myra의 성 니콜라스에게 헌정한 고딕 양식의 교구 교회가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1625년 화이트 마운틴 전투 이후, 교회와 이웃집들을 예수회가 인수했습니다. 오늘날의 성 베드로 교회 Mikuláš는 알프스 북쪽의 가장 가치 있는 바로크 양식 건물에 속합니다.출처: https://plutokr.tistory.com/183 [피로제거제:티스토리]
이 조각들은 태양 숭배, 생명의 순환, 조상 의식을 강조하는 북유럽 상징 전통의 일부입니다. 동일한 상징이 현대 [천문학적 상징 으로 태양이 아닌 지구]를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약학 에서는 태양 십자가 기호가 다양한/잡다한 약물을 나타냅니다 .
예수회 / 가톨릭 / 천주교 / 성공회 / 정교회
전부 태양을 숭배하는 것과 짬뽕이다.
그럼 이번엔 돌아와서 유대교 회당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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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근처에 위치한 고대 엔게디 유대교 회당은 1960년대 중반(흔히 1965년으로 추정)에 엔게디 키부츠 주민들의 작업 중 바닥이 드러나면서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1970년부터 1972년까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의 댄 바라그와 요세프 포라트가 체계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당시 로마/비잔틴 시대 팔레스타인에서 발견된 가장 긴 유대교 회당 비문으로 알려진 모자이크 비문은 서쪽 통로에 있으며,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여러 단락/구절에 걸쳐 쓰여 있고, 하나의 연속된 봉헌문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술적 분석에 따르면 이 비문은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뉩니다. 첫째, 목록/족보 및 역법 자료로, 제사장 직분(미 슈마롯 ), 성경 속 인물, 월, 황도대 관련 내용 등이 포함됩니다. 둘째, 축복과 기념으로, 기증자와 후원자를 위한 일반적인 덕담과 기념 문구가 담겨 있습니다.
베이트 알파 회당은 1928년 이스라엘 북부 베이트 셰안 인근 길보아 산맥 기슭에 위치한 헤프지바 키부츠 주민들이 관개 공사를 하던 중 발굴되었습니다. 발굴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 소속 고고학자 엘레아자르 수케니크가 주도했으며, 1962년에는 이스라엘 고대유물관리국이 후속 발굴을 진행했습니다. 북쪽 입구에서 발견된 그리스어와 아람어로 된 봉헌 비문은 이 회당이 비잔틴 황제 유스티누스, 아마도 유스티니아누스 1세(518-527년) 재위 기간에 공동체 기부금으로 건립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스어 비문에는 인근 베이트 셰안 회당 건축에도 참여했던 마라노와 그의 아들 하니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 국가 사적지로 보존되고 있는 베이트 알파는 주로 중앙의 황도 12궁/태양신 패널과 서사 패널(예: 이삭의 희생)로 유명하며, 테두리와 보조 패널에는 촘촘한 기하학적 장식이 새겨져 있습니다. 베이트 알파의 명성은 십자가 하나보다는 인물과 황도 12 궁 이미지에 기반하지만, 출판된 여러 이미지와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바닥의 테두리 형태와 반복되는 모티프는 비잔틴 시대 에레츠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용된 스와스티카 형태와 매우 유사합니다
예수 유대인화 + 태양 후광 전부 우상 작업질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들지 않나요?
그럼 십자가는 십자가도?? ? ? ?
콥트 교황청에서도 3년 전부터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사제를 파송해 기도처를 관리하고 있다. 최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기도처에서 콥트교 아시아 담당 순회 사제 필로 바티르 신부와 (중략)
콥트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른바 ‘70인역’이라 불리는 최초의 그리스어 번역판 구약성서 셉투아진트(Septuagint)의 출판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는 모든 분야의 최고 학자들을 배출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70인역이 출판됐다. 당시 알렉산드리아에는 히브리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될 만큼 많은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후 74년 마사다 전투 이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자 유대인들은 이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고, 이때 예루살렘에 있던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기독교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사회와 이집트인 사회에는 기독교가 급속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당시 유대인들은 복잡한 이집트어를 공용어였던 그리스어로 단순화하여 표기하는 방식을 고안했는데, 이를 ‘콥틱’이라 불렀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콥틱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공동체를 일컬어 ‘콥트교’라 부르게 됐다.
조금 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처음 이집트에 기독교를 전한 사람은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였다. 콥트교 전승에 따르면 마가는 가나의 혼인잔치 당시 현장에 있었으며, 이후 로마에 있을 때 천사의 지시로 이집트로 향하게 됐다.
https://en.wikipedia.org/wiki/Copts
대부분의 콥트교도는 동방 정교회 의 일종 인 알렉산드리아 콥트 정교회 를 따릅니다 . [ 47 ] [ 48 ] [ 49 ] 규모가 작은 콥트 가톨릭 교회 는 로마 교황청 과 친교를 맺은 동방 가톨릭 교회 이며 , 다른 이들은 이집트 복음교회 에 속합니다. 콥트교도는 아랍 르네상스 뿐 아니라 이집트와 아랍 세계 전체 의 근대화 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 41 ] 또한 범아랍주의 , 통치, 교육 개혁 , 민주주의 와 같은 이집트의 사회 및 정치 생활과 주요 논쟁에도 기여했습니다 . [ 41 ] 역사적으로 콥트교도는 사업 분야에서 번성해 왔습니다. [ 50 ]
애큐메니컬 운동의 시초 . 공의회. => 이집트 출신 콥트들이 주도
알렉산드리아 교구가 초기 기독교 신학과 교리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세 차례 공의회가 모두 이집트 출신 총대주교들에 의해 주재되었다는 점에서 입증됩니다. 니케아 공의회 (서기 325년)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황 알렉산더 1세 와 코르도바의 성 호시우스가 공동으로 주재했습니다 . 이 공의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훗날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가 된 아타나시우스 였는데, 그는 오늘날 여러 교파의 대부분의 기독교 교회에서 암송되는 니케아 신조를 제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공의회의 결정 중 하나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게 부활절 날짜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매년 다른 기독교 교회에 발표하는 책임을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 서기 381년)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황 티모테오 1세가 주재했고 , 에페소스 공의회 (서기 431년)는 알렉산드리아의 교황 키릴이 주재했습니다 .
구약의 유대인들이 진심으로 믿고 따른 하나님이 아닌 그것을 종교화한 "유대교"는 결국 다른게 하나도 없는것이다. 전부 우상을 들이고 우상들과 타협한 우상숭배니까. 세속적으로 일컬어지는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
굴러온 돌인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던,, 혈통을 주장하는 세파르딕 유대인이던 모두 이교(우상이자 다른신)들을 수용한것입니다..
그렇다면 콥트의 십자가를 봅시다.
앙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널리 사용된 장식 문양이었으며, 인접 문화권에서도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콥트교도들은 이를 변형하여 물방울 모양이 아닌 원형 고리를 가진 '크룩스 안사타(crux ansata)'라는 형태로 기독교 십자가의 변형 으로 사용했습니다 .
2부로 이어집니다.



에수님을 유대인 모양으로 묘사한 것도 사탄의 장난질이라고? 에수님은 유대인인데 로마인 모습이 맞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