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수원 화성돈 = 워싱턴 DC






수원 화성


조선 정조대왕은 궁궐을 수원에 새로 건설하고 궁 이름을 '화성(화성돈)'이라고 한다


정조대왕의 효심과 부국강병의 꿈이 담긴 수원 화성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긴 후, 1794년 착공하여 1796년 완공된 계획도시이자 국방요새로, 동서양 기술을 집약한 성곽 건축과 실학 사상의 결정체



화성돈 (空心墩)


공심(空心)이란 안이 비었다는 뜻이고 돈(墩)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주변보다 높으면서 평편한 지대를 가리킨다. 즉 공심돈이란 '내부가 비어 있는 망대'를 말한다



1790년 정조(14년)


화성 축성 준비: 1789년 읍치 이전에 이어, 1790년 수원 신도시 방어를 위한 성곽 축조 필요성이 대두되어 성제 연구 시작.

화성행궁(봉수당) 기틀: 1790년부터 1800년까지 정조는 11년간 12차례 능행을 하며 화성행궁에 머물렀으며, 이 기간 행궁은 조선의 지방 행궁 중 가장 중요하고 규모가 큰 곳으로 성장함.






워싱턴 DC


1796년의 워싱턴 D.C.(Washington, D.C.)는 미국의 새로운 수도로서 건설이 한창 진행 중이던 초기 형태의 도시였습니다. 1791년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피에르 샤를 랑팡(Pierre Charles L'Enfant)에게 설계를 의뢰한 랑팡 계획(L'Enfant Plan)에 따라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1796년 당시 워싱턴의 주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설 중인 수도: 1790년 수도입지법(Residence Act)에 따라 포토맥 강변의 땅을 확보하고 본격적인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백악관과 국회의사당 등이 건설 중이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아 정부 기능은 필라델피아에서 이전해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랑팡 계획의 적용: 1791년 수립된 계획에 따라 도로망, 정부 청사, 주거 구역 등이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1796년에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모든 집의 외벽을 벽돌이나 돌로 건설하도록 지시하는 등 도시의 모습이 점차 갖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정착지: 워싱턴 D.C. 구역 내에는 이미 조지타운(Georgetown)과 같은 기존 정착촌이 존재하여, 1796년 당시 새로운 수도 계획과 기존의 마을이 연결되는 과정에 있었습니다.


워싱턴 D.C.는 1790년 수도입지법에 따라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조성한 계획 도시로, 1800년 12월 백악관 등 주요 정부 건물이 거의 완공되며 수도 기능이 이전되었습니다. 피에르 샤를 랑팡이 설계한 이 연방 특별구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일부를 할애하여 건설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개발을 통해 620만 명 규모의 수도권으로 발전했습니다. 


워싱턴 D.C. 건설 및 발전 주요 사실

건설 배경: 1790년 수도입지법(Residence Act) 통과로 Potomac 강변에 건설 결정.

설계: 프랑스 건축가 피에르 샤를 랑팡(Pierre Charles L'Enfant)이 도시 배치 설계.

완공 및 이전: 1800년 12월 백악관 및 국회의사당 건물이 완공되며 필라델피아에서 수도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