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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구체적으로는 양녕대군의 16대손이다. 굳이 따지자면 왕가의 후손이긴 했지만 직접적인 왕실과는 멀어진 지 이미 오래였다.
이승만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자신을 '프린스 리'라 소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걸 가지고 이승만이 거짓말로 사기치고 다녔다는 식으로 비판받기도 하고, 한국 기준으로는 크게 틀린말도 아니다.


다만 외교독립론자였던 이승만은 현지의 지식인, 엘리트층들과 많이 만나고 인맥을 쌓으려 노력했고 듣보 아시아 국가 출신이라서 그렇게라도 해야 상대를 해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게 도움이 되었다.


외국에서 'prince'는 한국어의 '왕자'와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아니라서 먼 왕손들까지 prince로 보는 체계가 없는 것도 아니며[2], 이승만의 의도가 자신이 왕손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일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근본적으로 공화국으로 시작되다 보니 황족, 왕족, 귀족에 대한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3] 


아무리 동양인이라고 해도 일단 왕족쯤 되면 그래도 좀 달리 봤다고. 안익태도 아일랜드에 있을 때 "아이리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에 대해 "나라를 통치해 온 황제의 직계손인 '프린스 리'"라며 '왕손'의 의미로 프린스라는 호칭을 붙인 적이 있다.# 민영익도 보빙사로 미국 대통령인 체스터 A. 아서를 만났을때 신문에 '프린스 민'으로 소개되었다.



그런 혈통적 배경과는 별개로, 광복 이후 잔존한 대한제국 황족에 대해서는 대단히 매몰찼다. 조선의 궁궐, 종묘 같은 국가 시설은 차치하더라도 의친왕의 사동궁이나 운현궁 같은 일종의 구황실 사유 재산마저 국고로 환수하려 했고 실제로 일부는 성공했다.
말년의 순정효황후 윤씨[4]는 6.25 전쟁이 터지자 미군의 원조로 피난했는데, 휴전 후 이승만의 지시로 창덕궁으로 환궁하지 못하고 한동안 정릉 수인재(修仁齊)[5]에서 기거해야 했다.


이승만은 본인이 전주 이씨 왕가 혈통이라는 것에 자부심은 있었으나, 나라를 망가뜨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황실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이었고[6] 독립운동 시기부터 그는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에 군주제를 바탕으로 하는 황실에 대해 좋게 생각할 일이 없었다.


또한 본인이 대한민국의 권좌를 차지한 마당에 자칫 민심이 구황실로 향할 것을 우려한 견제적인 행동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