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3) 안용복과 독도의 인연은 소빙하기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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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빙하기에 먹고 살기위해 먼 바다로 나온 것이고 '안용복'의 활약은 잊혀지지 않게 되었다



아래 일본 외무성에서는 안용복을 쓰레기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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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번째 최악 콤플렉스는 '안용복'이다


1번째는 태정관지령문(1877)였고 이 두가지는 독도공략의 베이스캠프인데 철저히 부정적 인식을 한국 인터넷에 심으려 지난 15년을 디시인사이드에 일본 국방비의 상당한 포션을 투입하여 끈질긴 추진력을 보였다


안용복은 일본어 회화 쓰기 가능한 왜학倭學 통역관 수준였는데 혹시 조선 경상도 강원도 선주협회에서 인재를 찾아낸 결과가 안용복 아닐지 그렇게 추정해 보는 이유는 '경쟁' 때문이다


[맥아더 라인] 마저도 넘어와 독도어장에 일본 어선 수백척이 조업을 했었던 해방 직후와 상황은 같다 그래서 [이승만 라인]이 생겼고 독도를 조선시대로 되돌린 결정이 나온 것이다


조선 중기에도 그런 치열한 '경쟁'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가지어(바다사자),전복은 어류에 비해서 잡기가 쉬운데 교미기,번식기가 최고 수확 가능한데 년간 1,2회 뿐이고 기상, 해류에 따라 조선,일본이 경쟁을 치열하게 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측 사료에 보면 " 울릉도에 도착해서 보니 전복이 보이지 않았고 저 북서쪽 만에 조선인들은 해감을 마친 전복 미역을 말리며 쉬고 있었다 "


그런 '생존 경쟁' 이유로 조선 선주협회에서 안용복을 투입하여 불법 침입과 불법 조업에 항의하려 했을 것이다


첫 만남에서 일본어선에 올라 일본어로 따지던 안용복과 선장 박어둔은 그 상태로 납치가 된다 그것이 1차 도일이다


아래 연구논문에서 알수 있듯이 막부의 竹島渡海禁止令(죽도 도해 금지령) 문서를 받아 오게 된다 하지만 대마도에서 그것을 탈취 당한다


이듬해 빼앗긴 竹島渡海禁止令를 다시 받기 위해서 안용복은 스님과 관계자를 모집하여 15명으로 2차로 일본으로 갔다 이것은 납치된 상황과는 달리 [불법 월경]임으로 100% 사형이다


하지만 안용복 뇌속은 竹島渡海禁止令 을 반드시 찾아오면 나는 벌은 커녕 상을 받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였을 것이고 조선인 누구나 그런 해피엔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안용복을 민간 선주협회에서 기용한 특별한 인재로 보는 나만의 이유



https://kiss.kstudy.com/thesis/thesis-view.asp?key=34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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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기


한국에서 ‘안용복’을 독도를 지킨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안용복을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일본 연구자들은 안용복에 관한 한국측 문헌의 기술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제 그들이 일본 사료를 통해 새로운 ‘안용복상’을 그려낼 필요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선 『竹嶋紀事』에서 보이는 안용복과 박어둔 진술서를 살펴보겠다.


흔히들 『竹嶋紀事』에서는 ‘우산도’, 즉 독도 기록이 없다고 한다.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의 경우 안용복이 평가되고 있는 점은 항상 ‘울릉도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松島는 조선 왕조에 있어서도 영유 인식의 대상 외 였다.”고 하였다.

이케우치 사토시의 견해 비판을 위해 『죽도기사』에 나타난 ‘于山島’ 기록을 분석하고자 한다.


1693년 4월 17일, 안용복과 박어둔은 울릉도에서 일본 오야 가문 어부들에 의해 납치되면서 같은 날 배에서 오야 가문의 선원들이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3월 27일에 안용복은 울릉도에 간 목적을 三界의 샤쿠완(상관, 혹은 장군)의 명령으로 전복이나 미역을 따려고 부산포를 출항하였다고 했다.


4월 18일 일본 오야 가문의 배가 울릉도를 떠나


4월 20일 오키국(隱岐國) 도고(嶋後)의 후쿠우라(福浦)에 도착하였다.


5월 7일에 안용복과 박어둔은 이나바(因幡)를 출발하여


6월 말일 나가사키에 도착하였다.


7월 1일 에도막부의 명을 받은 쓰시마 번에서 온 留守居 하마다 겐베(濱田源兵衛)가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9월 2일에 안용복과 박어둔은 나가사키를 거쳐 쓰시마에 도착하였다. 이틀 뒤인


9월 4일 大目付(대감찰) 가도노 구로자에몬(門野九郞左衛門)은 쓰시마도주의 명령을 받아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안용복의 진술의 경우 배 3척은 울릉도에 전복과 미역 채취를 위해 돈벌이 간 것으로 진술했고, 달리 상거래를 할 마음이 절대 없고, 일본인과 상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우리들이 울릉도에 건너간 일은 달리 몰래 간 것도 아니고, 조정의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건너갔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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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기사』에서 ‘우산도’가 세 차례 등장한다.


1693년 11월 19일에 쓰시마도주에게 보낸 다다 요자에몬(多田與左衛門=橘眞重)에게 서장을 보낸 뒤

12월 5일 쓰시마도주는 다다 요자에몬에게 답신을 보냈다.


쓰시마도주답신의 경우 ‘우산도’가 세 차례 등장한다.


첫째, 쓰시마번에서 안용복 진술에서 울릉도에서 ‘우산도’를 두 번 보았다고 하였다.


둘째, 재판 다카세 하치에몬(高瀨八右衛門)이 탄 배가 사스나(佐須奈)에 도착했을 때 박동지가 ‘우산도’를 거론하였고,


셋째, 『여지승람』기록을 들어 우산도와 울릉도는 별도의 섬인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안용복이 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섬을 인식하였음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과 접위관 홍중하, 박동지

쓰시마도주와 대차왜 다다 야자에몬과 재판인 다카세 하치에몬까지 울릉도와 우산도를 두 섬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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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쟁계’가 진행하는 동안에 안용복은 물론이고, 조선 조정과 일본 에도막부와 쓰시마도주의 경우 ‘竹島’는 ‘울릉도’이고, ‘松島’는 ‘于山島’인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1695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돗토리번(鳥取藩)에 竹島(울릉도)와 松島(독도)가 언제부터 속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이에 돗토리번은 竹島와 松島는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결국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1월 ‘竹島渡海禁止令’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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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론으로 들어 간다


일제시대 반도의 조선계 일본인들이 열도로 가는 방법에는 단 1가지 뿐인데 '도항 허가서'를 받는 것이다


도해, 도항은 전혀 다르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 버젓이 도해면허를 받아서 울릉도,독도에 어업하러 왔으니 일본땅 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 TV드라마 수준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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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국가라고 여기는 과대평가는 실망으로 돌아 올꺼라


2차로 일본으로 자진해서 월경을 한 안용복은 일본측 간악한 술수에 말려 불운한 인생이 시작되는데 사형을 언도 받지만 조정 중신의 노력에 유배형에 처하게 된다


일본측 술수란 어업경쟁을 훨씬 뛰어 넘어 [울릉도 쟁계] 였다 " 울릉도를 넘기시오 "


그래서 해피엔딩이 될 풍운아 안용복 인생은 ... 슬픈 결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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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 외무성 다케시마 Q&A = feat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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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도 19세기 '石島'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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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도 무인도를 영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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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도는 시마네현으로 편입 불가 !

https://gall.dcinside.com/m/uspolitics/402755


(4) 독도와 안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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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日本외무성 사기극: 우산도 = 죽도 ≠ 독도

https://gall.dcinside.com/m/uspolitics/402787



(5) 조선지도에 '독도'가 있었나

https://gall.dcinside.com/m/uspolitics/403320


(6) 독도. 1951 샌프 조약 (미국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