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 오직 은혜라는 두 가지 솔라 차원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구원론이 사실상 동일하다.

행위는 단지 참된 믿음의 증표이자 은혜의 법 아래 자유의지의 발현 뿐이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의 구원론을 비판하는 것은 신앙의 교리가 아닌 교리 외적인 신앙 관습상의 차원에서만 벌어진다.

그러나 그러한 관습이 인간적인 악습을 많은 부분 포함했기에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의 개혁 운동이 벌어졌던 것이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보편교회에서 개혁교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구원관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는 신 구교 모두 성경 말씀과 성경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개신교도들은 가톨릭과 정교회, 심지어 성공회와 일부 루터교회, 감리교회 신자들이 행위구원을 가르치고, 또 따른다고 섵불리 믿는다.

그들이 과연 아르미니우스와 웨슬리, 칼 라너와 라칭거, 후커와 뉴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을 제대로 읽어보고 그런 주장을 하는걸까?

아니면 일군의 목사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극-칼뱅주의적 선입견에 가득 찬 채 주장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걸까?

혹은 기도라는 가장 강력하지만 자칫 감성적인 영역으로 빠질 수 있는 신앙의 도구로 자의적으로 판단한 만인사제론적 오류인 걸까?

단 한번도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 정교회 등의 보편교회의 신학을 공부해보지 못한 이들이 그 안의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학만이 올바른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이는 오히려 가톨릭과 보편교회를 적대하고 그들을 부정해야 만 자신들의 정체성이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하는 아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구원은 반드시 교파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구원이 가시적 교회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면 
성 어거스틴의 주장대로, “보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는 말이 더 정통성 있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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