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이집트의 움직임을 먼저 안 이스라엘이 선제공습으로 이집트 공군 궤멸

이스라엘의 핵 보유를 두려워 한 미국은 이집트와 아랍을 동원해 이스라엘 공격을 준비하다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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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2월 8일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





1967년 6월 5일: 이스라엘 공군은 이집트의 공군기지를 기습. 450여 대의 항공기 중 300여 대를 파괴하고, 공군 기지와 레이더 기지 등을 모조리 파괴


1967년 6월 8일: 미 해군 정보수집함 '리버티호'가 이집트 연안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전투기와 어뢰정에 공격받아 침몰, 34명이 죽고 172명 부상. 미국 항공모함 함장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지만 국방장관과 대통령이 중지 명령. 미국은 사건 조사도 안하고 마무리


1967년 6월 11일: 3차 중동전쟁 휴전 협정 체결


1968년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의 공격으로 미국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나포.

미 해군 83명 중에서 나포 도중 총격으로 1명이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82명이 북한에 억류.

미국 정부는 북한에 사과문을 쓰고 1968년 12월 23일 미군들 판문점을 통해 추방


1968년 2월 2일: 북한과 미국의 세번째 푸에블로호 비밀협상에서 미국은 침범을 시인하고 북한에 사과하기로 결정


1968년 2월 8일: 미국 영화 '혹성탈출' 개봉


1968년 5월 10일: 미국과 북베트남이 평화협정 논의 시작


1968년 5월 22일: 미국 핵추진잠수함 '스콜피온함' 훈련중 실종. 6개월 뒤 심해에서 잔해 발견. 99명 사망. 침몰 원인 모름


1968년 6월 19일: 미국, 영국, 소련 3국이 '적극적 안전보장'을 유엔안보리에 제출, 발표함으로써 NPT(핵확산방지조약)의 구성이 완료


1969년 4월 15일: 주일미군의 미 해군항공기지에서 이륙한 해군 전자정찰기 EC-121가 북한 공군 MiG-21 전투기에 의해 동해상에서 격추. 미군 31명 전원 사망


1969년 9월: 이스라엘 총리 메이어와 미국 닉슨 대통령 비밀협약 체결. 이스라엘의 핵보유를 철저히 비밀로 한다

1969년 9월: 북한과 미국 비밀협약 체결. 북한의 핵보유를 철저히 비밀로 한다







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제3차 중동 전쟁 또는 6일 전쟁(히브리어: מלחמת ששת הימים 또는 아랍어: +++ ++++) 혹은 6월 전쟁 그리고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주변 이웃 국가인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이 연합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 때 당시 이집트는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불렸다.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 사이의 관계는 제1차 중동 전쟁 이후 안정화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1956년 수에즈 위기 당시 이스라엘은 주요 목표 중 하나였던 티란 해협을 확보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여겼다. 이 지역은 1950년 이래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항해를 봉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철수할 수 밖에 없었으나, 티란 해협을 다시 개방할 지도 모른다는 보장을 받게 되었다. 유엔 긴급군이 국경에 따라 배치되었지만 비무장 합의는 없었다.


1967년 6월까지 이스라엘과 주변국 사이의 긴장은 높아졌다. 이스라엘은 티란 해협에 대한 봉쇄는 전쟁 명분이 될 것이라 말하며 1956년 이후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5월 말 가말 압델 나세르는 이스라엘 선박에 대해 해협들이 봉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따라 군을 전진시켰고,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에 대항해 이집트 공군기지에 이스라엘 입장의 예방적 선재공습을 가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들은 제3차 중동 전쟁에 관한 논란 중 하나이다.


이집트는 기습에 당했고, 이스라엘군은 소수의 피해만 입은채 이집트 공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이는 이스라엘에 공중우위권을 제공해주었다. 동시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와 시나이반도를 향해 공세를 개시했고, 이는 다시 이집트군을 놀라게 했다. 몇몇 초기의 저항이 있은 후, 이집트 지도자였던 나세르는 시나이반도에서 이집트군을 철수시켰다. 이스라엘군은 서쪽으로 계속 진격하며 이집트군에 큰 손실을 입혔고 시나이반도를 정복하는데 성공했다. 나세르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물리쳤다고 주장하며 요르단과 시리아에게 이스라엘을 공격해달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에서 요르단군을 축출했으며, 시리아군에게도 반격을 가해 골란고원을 점령했다.


6월 11일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아랍 연합군의 손실은 이스라엘의 손실치보다 훨씬 높았다. 1,000명 이하의 이스라엘군이 사망한데 비해 아랍 연합군은 20,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과 혁신적이고 잘 수행된 전투 계획, 그리고 아랍 연합군의 낮은 전투 실력과 지도력이 원인이 되어 군사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가자 지구와 시나이반도를, 요르단으로부터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를,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획득했다. 이스라엘군의 사기와 국제적 우위는 전쟁의 결과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의 영토는 3배나 커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로 인해 군사들은 자만감에 빠졌고, 이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당시 아랍 연합군이 초기에 승리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100,000명의 시리아인이 골란고원을 떠났고, 300,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서안 지구를 떠났는데 이들은 모두 난민이 되었다. 아랍 세계에서는 소수의 유대 공동체가 축출되어 이스라엘이나 유럽으로 이동했다.



미군 리버티호 격침의 미스터리


이집트의 나세르가 6일 전쟁을 시작한 데는 이스라엘이 본격적으로 핵무장을 하기 전에 끝장내야 한다는 강박심리가 작용했다. 6일 전쟁은 이스라엘 전투기가 아침 출근 시간에 맞추어 이집트 공군기지를 기습, 300대가 넘는 전투기를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파괴함으로써 사실상 30분 만에 끝났다.


6일 전쟁 중 이상한 사건이 일어났다. 1967년 6월 8일 미 해군 6함대 소속 정보수집함 리버티호가 이집트 연안 공해상에서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과 어뢰정의 공격을 받고 침몰, 34명이 죽고 172명이 다쳤다. 공격을 받자 리버티호의 함장은 미(美) 항모(航母) 아메리카호에 지원을 요청했다. 아메리카호 함장은 즉시 A-4 전투기를 발진시킨 다음 가이스트 6함대 사령관에게 보고, 사령관은 출격을 승인했다.


직후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출격중지’를 명령했다. 사령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는 “최고사령관(대통령)의 육성(肉聲) 명령이 없으면 중지시킬 수 없다”고 버티었다. 존슨 미국 대통령이 그의 전화를 받더니 “장관 명령대로 하라”고 했다(레이건 정부 때 공군장관을 지낸 토머스 C. 리드가 쓴 <核급행>에서 인용).


이스라엘은 오폭(誤爆)이라고 변명했으나, 리버티호가 이스라엘군의 작전계획을 탐지해 시리아에 넘겨줄까봐, 격침시켰다는 설(說)이 있다. 라빈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이스라엘 공군기가 격침시킨 배가 소련 함정이 아니고 미군 함정이란 보고를 받곤 안도했다고 한다. 소련 함정이었으면 군사적 보복을 각오해야 하는데, ‘다행히’ 미군 함정이므로 존슨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자신감 뒤엔 미국의 유대인 세력이 존슨 대통령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존슨 행정부는 리버티호 격침 사건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존슨 대통령을 이은 닉슨도 친이스라엘 노선을 따랐다. 그는 대통령 선거와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뒤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 지도부는 닉슨을 끝난 사람으로 취급, 홀대했는데 당시 참모총장이던 라빈 장군이 닉슨을 부대로 초청, 환대했다. 라빈은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 되었고 주미(駐美)대사로 부임했다. 닉슨은 라빈을 우대했다. 6일 전쟁으로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로부터, 골란 고원을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이스라엘은 두 나라를 상대로 저강도(低强度)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1969년 9월 골다 메이어 수상이 미국을 방문, 닉슨과 회담했다. 메이어 수상은 25대의 팬텀기, 80대의 스카이호크 전투기, 그리고 2억 달러의 저리(低利) 차관을 요청했다. 닉슨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런 평을 했다.


<메이어 여사는 극단적인 강고(强固)함과 극단적인 친밀감을 동시에 표현할 줄 알았다. 이스라엘의 생존과 관련된 사안에 대하여는 굉장히 강고한 태도를 보였다.>



닉슨-메이어 비밀협약


이 회담에서 두 나라는 비밀협약을 맺었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91년 이스라엘 언론에 의해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고, 당시 닉슨의 안보보좌관이던 키신저의 메모가 비밀해제로 공개된 적이 있다. 비밀협약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공개적 선언이나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보유를 알리지 않으면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 사업(Nuclear Program)을 묵인하고 보호할 것이다”로 되어 있다.


작년 7월 6일 오바마 대통령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한 직후, “이스라엘은 독특한 안보상의 필요성에 따라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해 안보상의 이익을 저해하는 어떤 조치도 취하도록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고 발표했다. 이는 1969년의 비밀협약이 유효함을 에둘러서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