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사람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내가 산 주식은 왜 떨어지기만 할까, OO는 왜 내 카톡에 답장이 없는 걸까. 등등등
하루종일 머리 속 생각들은 조각난 파편들처럼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의 파편들은 대부분 자신의 물질적 필요나 육체적 필요 감정적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들이 90%이상입니다.
그 하루의 생각들이 하루의 말을 만들고 하루의 행동을 만들고 하루의 감정을 만들고 하루의 나가 되는것 이기에 이러한 생각의 뭉치가 나의 실존 증거라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물론적 주장에 의해서 물질이 관념을 지배 한다라는 말이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와 반대로 관념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관념론도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둘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또 틀린말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물질이 관념에 영향을 주는 한편 관념도 물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관념과 물질은 둘이 아닌 하나의 업과 다운을 가지는 서클 혹은 음양 으로 둘이 모여 하나를 이룬 파동이기에 누가 선후인가를 파악하는건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는 실존을 정의 하는 평상시 나의 생각들을 제 3자적인 객관적 시각에서 스스로 버릇처럼 감시해본다면 삶이 달라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왜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거지?
거기에서 시작해서 지금 생각의 원인을 파보고 그원인이 나의 어떠한 물질적 결핍이나 아니면 어릴적 깊은 트라우마에서 시작되었는가를 파악하게 된다면 그때부터 진짜 나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버릇처럼 항상 현재의 나의 생각을 감시 해야 진정한 깊은 곳의 나의 내면의 모습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 깊이 파고 들어 가다보면 드디어 불교에서 말하는 참나 아니면 수호신 아니면 무의식 아니면 성령 혹은 신성을 만나게 됩니다.
신과 나의 합일 혹은 천지인의 합일 혹은 성령과의 합일 등 인류의 모든 종교가 말하는 목적에 한발짝 내딛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나는 분리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첫단추입니다.
창조되었을때 심어졌던 하나님의 숨결 혹은 참나 혹은 무의식 혹은 영혼. 명칭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명칭을 구분하느라 바빠서 바로 앞에 있는 보물을 보고도 놓쳐 엉뚱한 길에서 헤매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미 창세부터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고 영원히 함께하는 이 진리 혹은 영혼은 지금도 여러분의 수많은 생각속에 불현듯 끼어들어 여러분이 늪에 빠져들지 않게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살을 결심한 어느 친구가 편의점에서 초코과자를 먹어야 겠다는 뜬금없이 떠오르는 찰나의 생각에 자살을 하지 못하고 다시 삶을 극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실이 힘든 사람들은 이 내면속 자신을 이끌어주는 진짜 나 혹은 진리와 대화를 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내면속 성령 혹은 신 혹은 무의식과 대화 하기위해 노력하게 되면 삶은 극적으로 반전되게 될것 입니다.
생각마구니일뿐 바탕 즉 하나님과 같이 비출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