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백인이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怪소문
선우정 부국장
입력 2011.11.08 23:15 | 수정 2011.11.09 03:31
일본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1866년부터 70년까지 순차적으로 발간된 '서양사정(西洋事情)'이란 책이다. 문명개화론의 선구자였던 후쿠자와 유키치가 미국과 유럽을 돌아보고 쓴 서양 견문록인데, 해적판 10만부를 합쳐 25만부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기록은 2년 후 후쿠자와 본인에 의해 깨진다. 1872년 출간된 '학문의 권장'은 편당 20만부씩 총 340만부가 팔렸다. 인구가 지금의 4분의 1 수준이고 식자율이 30% 정도이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요즘 해리포터 시리즈를 능가하는 세기의 베스트셀러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양사정'이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국가 계발(啓發)서라면, '학문의 권장'은 개개인의 합리주의적 각성을 유도하는 국민 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독립의 기력(氣力)이 없는 자는 반드시 남에게 의존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자는 반드시 남을 두려워하고, 남을 두려워하는 자는 반드시 남에게 아첨한다"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외세에 대한 두려움을 개개인이 학문으로 극복함으로써 '일신(一身) 독립'을 통해 '일국(一國) 독립'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후쿠자와는 철저한 개국론자였다. 외세를 무조건 배격하는 것을 업으로 삼던 세력을 향해 "양이(攘夷·외국 사람을 오랑캐로 보고 배척함)를 말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구실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당시 일본은 유신을 단행했으나 내전이 계속되고 있었고 서구 열강을 당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문을 연마해 자신감을 가지면 독립을 확고히 해 외세를 두려워하거나 아첨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서구 계몽주의를 일본 현실에 적용한 것이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개화론자도 얼마 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결정적인 차이는 340만부를 발간한 일본 개화론자들의 엄청난 동력과, 340만부의 책자를 사준 일본 국민의 에너지였다. 당시 일본은 납 활자 주조에 성공하면서 정론지와 대중지가 나뉠 정도로 신문, 잡지, 책자 발간이 활발해졌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느끼는 것 이상으로 당시 사람들은 정보 접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체험했을 것이다. 일본의 문명개화론자들은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뛰어들어 두려움으로 닫힌 대중의 마음을 열린 마음으로 바꾼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한국과 일본사를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일본은 어떻게 분출하는 국가 에너지를 '양이'에서 '개국'의 흐름으로 돌렸을까? 한국은 왜 에너지 전환에 성공하지 못했을까? 일본 역시 서구 열강과 두 차례 국지전을 치를 정도로 반(反)외세 기운이 팽배했다. 하지만 열강의 힘을 절감한 소수 지도자가 개화로 돌아서자 국민 전체가 뒤를 따랐다. 일본 국민은 순종적이라서 그렇게 했을까? 한국은 반항적이라서 그렇게 못했을까? 당시 대중에게 호소하던 일본 개화론자의 열정을 읽으면, 국민성의 차이만은 결코 아닌 듯하다.
개항이 시작된 120년 전, 서울에는 "백인이 전염병 약으로 어린아이를 삶아 먹는다"는 괴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자유무역을 둘러싼 논쟁은 예나 지금이나 두려움을 확대하는 쇄국론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개국론의 싸움이 아닐까 한다. 지금 개국론자들은 문명의 힘을 통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미신에 대응하고 있을까? 19세기에 그랬듯, 열정의 차이가 논쟁의 승패를 결정하고 결국 나라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2020년이나 130년전이나 똑같지. 백인이 '전염병 약'으로 인구를 감축시키려고 한다는 괴소문ㅋㅋ
그런 괴소문들이 더욱 더 번창하도록 열심히 구매해주시는 우리 한국인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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