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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I

TESTIMONY


매캐릭 추기경의 성추문과

조직적 은폐에 관한

비가노 대주교의 성명서


2018.08.22.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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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세계 여러 지역에서 겪고 있는 이 비극적인 순간에 — 미국, 칠레, 온두라스, 호주 등 — 주교들은 매우 중대한 책임을 집니다. 특히 2011년 10월 19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나를 교황대사로 파견했던 나라인 미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0월 19일은 북미대륙에서 최초로 순교했던 성인들의 기념일이었습니다. 나를 비롯한 미국의 주교들은 이 첫 순교자들을 본보기로 따르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메리카 대륙에 복음을 전파하며,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 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합니다.

주교들과 사제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신자들, 소년들, 무고한 피해자들, 그리고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려는 젊은이들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고, 더불어 침묵으로 인해 이러한 범죄가 계속되도록 방관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이신 교회의 얼굴이 많은 가증스러운 범죄로 인해 상처를 입었으나, 이를 치유하고자 한다면, 또 우리가 진정으로 교회를 악취의 늪지대에서 해방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비밀스러운 문화를 철저히 배척하고 숨겨왔던 진실 일체를 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자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주교들과 사제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쌓아올린 침묵의 장벽을 철저히 해체해야 합니다. 이 침묵의 장벽으로 인해 세상에 마치 교회가 일종의 사이비 종파인 것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침묵의 장벽은 범죄조직인 마피아의 오메르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대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이… 지붕 위에 전파되리라” (누가 12:3).

나는 지금까지 언제나 교회의 위계가 스스로 모든 진실을 밝히고 오류를 수정하며 새롭게 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고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 차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접촉을 피했습니다. 또 로마의 최고위 성직자까지 나서서 나를 공격하고 내 명예를 훼손하는 거짓말을 할 때도 나는 언론과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패가 교회의 최고위층까지 도달한 지금, 나는 양심에 근거하여 워싱턴 대교구의 명예 대주교 테오도르 매캐릭 관련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합니다. 나는 요한 바오로 2세 시절인 1998년부터 2009년까지 교황 대사 담당 부서장으로서,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시절인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주미 교황대사로서 재직하며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황 대사 담당 부서장으로서 나의 업무는 단순히 교황청 대사관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로마 관구 직원(채용, 승진, 주교 후보자에 대한 정보 업무)과 추기경 및 주교와 관련된 민감한 사건 검토도 관할했습니다.


최근 몇몇 기사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불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주미 교황대사였던 가브리엘 몬탈보와 피에트로 삼비는 모두 교황청에 테오도르 매캐릭 추기경의 심각한 추문을 인지 즉시 보고했습니다.

교황대사 피에트로 삼비가 쓴 바에 따르면, 2000년 11월 22일자 보니파스 램지 신부의 편지는 전임 교황대사 고(故) 몬탈보 대주교의 요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편지에서 램지 신부는 1980년대 말부터 1996년까지 뉴어크 시의 교구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신학교 내에서 "대주교가 신학생들과 동침했다"는 소문이 반복적으로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소문에 다르면 매캐릭 대주교는 주말마다 다섯 명의 신학생을 초대하여 자신의 해변 별장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더불어 편지를 쓴 램지 신부는 뉴어크 시 대교구에서 나중에 사제로 서품된 몇몇 신학생들이 과거 이 해변 별장에 초대되어 대주교와 함께 동침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2000년 말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몬탈보 주미 교황대사는 매캐릭 대주교를 상대로 혐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끌던 부처는 교황청의 조치에 대해 들은 내용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몬탈보 교황대사의 후임으로 재직했던 삼비 교황대사는 당시 국무원장이었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교구의 그레고리 리틀턴 신부가 매캐릭을 상대로 작성한 기소 메모를 전달했습니다. 리틀턴은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추문으로 사제직을 박탈당하고 평신도로 강등된 인물입니다. 이와 별개로 리틀턴은 두 건의 메모를 더 작성했는데, 여기에는 당시 뉴어크 대주교였던 매캐릭과 다른 신부 및 신학생들에 의해 성적 학대를 당한 그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삼비 교황대사는 리틀턴이 이 기소 메모를 민간 및 교회 사법 당국, 경찰, 변호사 등 약 20명에게 전달했다고 말하며, 따라서 이 소식이 곧 공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황청의 신속한 개입을 촉구했습니다.

2006년 12월 6일, 나는 교황 대사 담당 부서장으로서 수신한 문서들을 종합하여 메모를 작성했으며 이를 당시 상급자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 국무원장과 부장관 레오나르도 산드리에게 제출했습니다. 메모에서 나는 리틀턴이 매캐릭 추기경에 대해 고발한 비위 사실은 혼란, 혐오감, 깊은 슬픔과 쓰라림을 불러일으킬 만큼 중대하고 추악하며, 다음과 같은 범죄를 구성함을 지적했습니다. 신학생들과 사제들을 유혹하고, 여러 피해자에게 동시에 부도덕한 행위를 요구하고, 두 명의 다른 사제가 보는 와중에 매캐릭 대주교의 추행에 저항하던 젊은 신학생을 조롱하고,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의 공범들의 죄를 사면하고, 이러한 추악한 죄를 저지른 사제들이 성체를 거룩하게 축성하는 행위는 성체모독죄에 해당함을 지적했습니다.

2006년 12월 6일 작성된 이 메모는 내 직속 상관이었던 국무원 부장관 레오나르도 산드리에게 송신됐으며, 나는 다음과 같은 고려 사항과 계획을 제안했습니다:


  • 매캐릭 추기경의 추문은 추기경이 연루됐다는 점에서 심각하며,
  • 추기경이 연루됐기에 교회법 1405조 1항 2조의 “추기경 관련 사건은 오직 로마 교황만이 판결할 수 있다[ipsius Romani Pontificis dumtaxat ius est iudicandi]”라는 규정상,
  • 나는 매캐릭 추기경에게 선례가 될 수 있는 예방적이고 치료적 기능이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를 통해 무고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믿는 신자들이 받을 큰 충격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교회가 민간 당국보다 선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가능하다면 언론보도가 있기 전에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를 통해 사제들의 가증스러운 범죄로 인해 시련받고 모욕을 당한 교회에 일부 위신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추기경이 더 이상 권력을 남용하여 무고한 피해자들을 해하지 못하도록 교회가 선제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징계를 했다면, 민간 당국은 더 이상 추기경을 상대로 사법절차를 밟는 것이 아닌, 교회가 이미 징계하여 강등된 평신부를 상대로 사법절차를 밟게 됐을 것입니다.

2006년 12월 6일 작성된 내 메모에 대한 그 어떠한 답변도 없었으며, 조치나 결정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08년 4월 21일에서 23일 사이에, 리처드 사이프가 작성한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를 위한 미국의 성적 학대 위기에 대한 성명서”가 인터넷에 게시됐습니다. 이 성명서는 그의 웹사이트인 richardsipe.com에 게시됐습니다. 4월 24일, 신앙교리성 장관 윌리엄 레바다 추기경이 이 성명서를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한 달 후인 2008년 5월 24일에 내게 전달됐습니다.

다음 날, 나는 신임 국무원 부장관 페르난도 필로니에게 2006년 12월 6일에 작성했던 메모와 함께 새로운 메모를 전달했습니다. 이 메모에서 나는 리처드 사이프의 성명서를 요약했습니다. 사이프의 성명서는 다음과 같은 진심 어린 호소로 결론을 냈습니다. “저는 교황 성하께 합당한 경의를 표합니다. 동시에 성하의 전임자였던 교황 레오 9세에게 성직자의 비위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던 피터 다미안의 뜨거운 열의로 말씀드립니다. 그가 당시 고발했던 로마의 문제들은 오늘날 미국의 문제와 유사합니다. 성하께서 요청하신다면, 제가 고발한 내용에 대한 문헌을 제출하겠습니다.”


나는 메모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 번 매캐릭 추기경의 지위를 즉시 박탈하고, 사제직을 박탈할 수 있다는 조문을 담은 교회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상관에게 피력했습니다.

이 두 번째 메모에 대한 회신 역시 없었으며, 나는 매캐릭 추기경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는 점과 2006년 첫 번째 메모에 이은 이 묵묵부답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지오바니 바티스라 레 추기경을 통해 리처드 사이프의 용기 있는 행동이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이 매캐릭 추기경에게 부과한 것과 유사한 제재를 가했습니다. 그 내용은 매캐릭 추기경이 거주하던 신학교를 떠나고, 공개적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공공 회의에 참석하거나 강연을 하거나 여행하는 것 모두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매캐릭은 기도와 참회의 삶에 전념해야 했습니다.

나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매캐릭에 대해 이러한 조치를 언제 취했는지, 2009년인지 2010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 시기 나는 바티칸 시국 행정부로 전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그간의 오랜 지연이 누구의 책임인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점은 베네딕토 16세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베네딕토 16세는 과거 추기경으로서 교회 내 부패를 강력히 비판했으며, 재임 초 동성욕적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을 신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나는 이 책임이 베네딕토 16세를 처음 보좌했던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르토네 추기경은 동성욕자들을 승진시키는 것을 선호했고, 또한 교황에게 전달하는 정보와 보고를 선별하는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것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이러한 내용의 제재를 매캐릭에게 가했고, 이러한 사실은 당시 주미 교황대사였던 피에트로 삼비가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워싱턴 주재 교황 대사관의 1등 참사관이자 삼비 교황대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대사대리의 직책을 맡고 있떤 장-프랑스와 랑테옴에 의하면, 삼비 교황대사는 매캐릭 추기경을 대사관에 소환하고 한 시간 이상 격렬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랑테옴 대사대리는 “교황대사의 고성이 복도에서 들릴 정도였다”고 말했습니다. 랑테옴 대사대리는 이 같은 사실을 법정에서 증언할 준비가 됐다는 말도 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이러한 제재 사실은 내가 워싱턴으로 떠나던 2011년 11월, 신임 주교회의 의장 마크 우엘레 추기경이 내게 다시 한 번 전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지시는 신임 교황대사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이에 따라 대사관에서 처음으로 매캐릭 추기경을 대면한 나는 이러한 내용을 그에게 그대로 고지했습니다. 매캐릭 추기경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자신이 해변가 거처에서 몇몇의 신학생들과 동침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수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마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했습니다.

신자들은 매캐릭이 어떻게 워싱턴 대교구의 주교로, 그리고 추기경으로 어떻게 임명됐는지 의아해하고 궁금해합니다. 신자들은 매캐릭의 범죄가 왜 오랫동안 은폐됐는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하므로 이를 밝히는 것이 나의 의무이며, 로마 교황청부터 시작하여 내가 아는 사실을 증언하겠습니다.







<파티마 형제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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