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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II

TESTIMONY





매캐릭 추기경의 성추문과

조직적 은폐에 관한

비가노 대주교의 성명서




2018.08.22.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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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2006년 9월까지 교황청 국무원장으로 재직했으며, 모든 정보는 그에게 보고됐습니다. 2000년 11월 주미 교황대사 몬탈보는 소다노 추기경에게 보고서를 보내며, 앞서 언급했던 매캐릭 추기경의 심각한 비위 사실을 고발한 보니파스 램지 신부의 서한 역시 전했습니다.


소다노 추기경이 마시엘 신부의 성추문 사건을 끝까지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에 주재한 교황대사 유스토 물로르[Justo Mullor]가 이러한 은폐 계획에 동조하지 않자 소다노 추기경은 그를 해임하고, 베네수엘라 교황대사였던 레오나르도 산드리를 임명하여 은폐하도록 했습니다. 소다노는 심지어 바티칸 공보실을 통해 거짓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마시엘 사건을 종결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이에 대응했고, 소다노의 지속적인 옹호에도 불구하고 마시엘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고 불가역적으로 정죄했습니다.


매캐릭의 주교 임명과 추기경 임명이 소다노 추기경의 작품이었는지,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매우 병약했을 때를 노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설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소다노가 이 일에 대해 유일한 책임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매캐릭은 로마를 자주 방문하며 교황청에 많은 친구를 사겼습니다. 소다노가 거짓말까지 하며 마시엘을 옹호하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점을 보면, 매캐릭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에 따르면 매캐릭은 교황청 내부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전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매캐릭이 워싱턴 대교구의 주교로 임명될 때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지오바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이를 반대했습니다. 워싱턴 주재 대사관에는 레 추기경이 자신은 이 임명과 무관하며 매캐릭은 후보자 명단에서 14번째에 불과했다고 수기로 기록한 메모가 있습니다.


삼비 교황대사의 보고서와 첨부된 모든 문건은 국무원장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전달됐습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나의 2006년 12월 7일 메모와 2008년 5월 25일 메모 역시 부장관이 베르토네 추기경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추청됩니다. 이미 언급했듯 베르토네 추기경은 임명 직후 거리낌 없이 동성욕자로 알려진 후보자들을 주교직에 추천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게바노의 대주교로 임명됐던 빈첸조 디 마우로[Vincenzo Di Mauro]는 신학생들을 해친 혐의로 해임됐습니다. 이와 더불어 베르토네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이뤄지는 보고를 통제하고 조작하는 일 역시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현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역시 매캐릭의 성추문 은폐에 동참했습니다. 매캐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이후 여러 대륙으로 여행을 다니고 임무를 수행한 점을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2014년 4월, 워싱턴 타임스는 매캐릭이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한 소식을 1면에 실었고, 이 기사를 통해 교황청 국무원이 그를 외국으로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워싱턴 주재 교황대사로서 나는 파롤린 추기경에게 베네딕토 16세가 매캐릭에게 부과한 제재가 여전히 유효한지 묻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물론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습니다.


매캐릭 복권에 책임이 있는 것은 파롤린 추기경뿐만이 아닙니다. 전임 신앙교리성 장관 윌리엄 레바다 추기경, 주교성 장관 마크 우엘레 추기경, 전임 주교성 부장관 로렌조 발디세리, 현 주교성 부장관 일손 데 헤수스 몬타나리 대주교 모두 책임이 있습니다. 이들의 직위를 고려할 때 이들이 베네딕토 16세가 매캐릭에게 가한 제재를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레오나드로 산드리 추기경, 페르난도 필로니 추기경, 그리고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은 국무원 부장관으로서 매캐릭과 관련된 내용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반니 라졸로 추기경이나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 역시 몰랐을 수 없습니다.  국무원 외교부의 장관으로서 이들은 매주 국무원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에 대해서는 일단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만 교황 프란치스코와 매우 긴밀한 관계인 몇몇 고위 성직자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란체스코 코코팔메리오 추기경이나 빈센조 파글리아 대주교가 바로 이런 자들입니다. 이들은 동성욕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전복하려는 동성욕 집단에 속해있으며, 이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1986년에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작성한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동성욕자에 대한 사목적 돌봄에 관한 서한[Letter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on the Pastoral Care of Homosexual Persons]”에서 정죄된 바 있습니다. 에드윈 프레데릭 오브라이언 추기경레나토 라파엘레 마르티노 추기경 역시 이와 같은 불온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으나, 이념은 다릅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이러한 동성욕자 집단 중 일부는 이 순간에도 성녀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에 대해 논하겠습니다. 베네딕토 16세가 매캐릭을 상대로 가한 징계사실을 매캐릭의 워싱턴 대교구 후임자인 도널드 우얼 추기경은 제일 먼저 보고받았을 것입니다. 이 우얼 추기경 역시 최근 피츠버그 주교로 재임하며 비위가 폭로되어 위신이 추락했습니다.


삼비 교황대사는 진정한 로마냐 지방의 아들답게 매우 책임감 있고 흔들리지 않으며 올곧고 숨김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이 우얼 추기경에게 매캐릭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찌됐든 나는 수차례 우얼 추기경과 이를 논의했으며, 처음 대화한 즉시 우얼 추기경 역시 상황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에 자세한 부분까지 논의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우얼 추기경과 논의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당시 워싱턴 대교구가 발행한 출판물 뒤표지에 색깔로 인쇄된 광고가 있었는데, 사제직에 소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매캐릭 추기경과의 만남에 초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즉시 우얼 추기경에게 전화를 하니 우얼은 내게 광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놀라며 즉시 이 만남을 취소하겠다고 했습니다. 만약 우얼 추기경이 지금까지 매캐릭의 비위 사실에 대해, 베네딕토 16세의 제재 사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면, 이런 우얼 추기경의 대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얼 추기경의 최근 발언을 보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두 피해자에 대한 보상에 대해 교활하게 언급한 점이 매우 우습습니다. 우얼 추기경은 서슴지 않고 거짓말을 하며, 그의 총대리인 안토니첼리 신부에게도 거짓말을 하도록 종용합니다.


우얼 추기경은 이외에도 명백히 거짓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조지타운 대학교 측이 승인했던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사에 대해 대학 총장인 존 데지오아에게 두 통의 서신을 보냈습니다. 보내기 전 절차에 따라 이 서신의 사본을 우얼 추기경에게 직접 전달하며, 이에 대한 별개의 서신을 우얼 추기경에게 작성하여 함께 전했습니다. 우얼 추기경은 이 서신 일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서신을 수신하면 수신했다는 답을 하던 평소의 관례와 달리, 어떠한 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나는 이 행사가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과거 7년 동안 지속되어 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얼 추기경은 7년 동안 있었던 행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우얼 추기경은 매캐릭 추기경의 지속된 학대와 비위를 분명 인지하고 있었고, 이와 더불어 베네딕토 16세가 매캐릭에게 가한 제재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의 명령을 위반하고 매캐릭이 워싱턴 시의 신학교에서 거주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를 통해 해당 신학교의 신학생들이 위험에 처하도록 방조했습니다.


메투첸의 폴 붓코스키 주교와 뉴어크의 존 마이어스 명예 대주교는 자신의 관할 교구에서 벌어진 매캐릭의 범죄를 은폐했으며, 두 명의 피해자에게 피해보상을 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이 사안과 관련해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철저히 이들을 신문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언론과 인터뷰를 한 케빈 패럴 추기경 역시 매캐릭의 범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과 댈러스에서 근무했던 그의 이력으로 봤을 때, 그 누구도 이런 주장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앞서 언급했던 마시엘의 범죄에 대해 질의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범죄가 벌어졌던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에서 공식 직함이 있었던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이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션 오맬리 추기경이 대해서는 매캐릭에 관해 발표한 그의 최근 성명문은 유감이며, 그의 신용을 바닥까지 떨어뜨렸습니다.


* * *


나는 교황 프란치스코와 관련된 내가 직접 경험했던 사실을 밝힐 의무를 느낍니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중대하며, 주교로서 모든 주교가 보편교회 속에서 공동으로 짊어지는 책무를 통감하며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진술하는 내용이 진실됨을 천주님을 증인 삼아 맹세할 수 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과거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의 선례를 따라 임기말 로마의 모든 교황대사를 소집했습니다. 교황과의 면담 일자는 2013년 6월 21일 금요일로 정해졌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 면담을 취소하지 않았고, 나는 워싱턴에서 로마로 와서 참석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선출 3개월 뒤로, 베네딕토의 사임 이후 프란치스코와의 첫 대면이었습니다.


2013년 6월 20일 목요일 아침, 나는 로마의 성녀 마르타의 집[대립교황 베르고글리오가 관저로 쓰던 호텔]에 가서 동료들과 합류했습니다. 호텔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붉은 테두리의 카속을 입은 매캐릭 추기경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에게 늘 그랬듯이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냈습니다. 매캐릭은 즉시 대답하며, 어딘가 모호하고도 승리한 듯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교황 성하께서 어제 나를 접견하셨고, 내일 나는 중국으로 갑니다.”


당시 나는 매캐릭이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프란치스코]와 오랜 친분 관계였으며, 매캐릭이 베르고글리오의 선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는 추후에 빌라노바 대학교에서의 강연과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ational Catholic Reporter]지와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 내용입니다. 또한 매캐릭이 이번 콘클라베를 준비하는 추기경단 회합에 참석했으며, 베네딕토 교황을 선출했던 2005년 콘클라베에서는 선거인으로 참석했던 전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캐릭이 내게 말한 의미심장한 발언을 즉시 간파하지 못했으나, 이는 며칠 뒤에 자명해졌습니다.


다음 날 교황 프란치스코와 면담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연설 일부는 읽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발언했습니다. 연설이 끝난 후, 교황은 모든 교황대사와 개별적으로 인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한 줄을 서서 교황과 인사를 했고, 나는 줄의 뒤쪽에 섰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미국 주재 교황대사입니다”라고 소개를 할 시간만 주어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교황은 즉시 책망하는 어조로 내게 말했습니다: “미국의 주교들은 이념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목자여야 합니다! [The Bishops in the United States must not be ideologized! They must be shepherds!]” 그 자리에서 나는 이 발언의 의미나 그의 공격적인 어조에 대해서 물어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며칠 전 오맬리 추기경이 리오에서 개최되는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있던 교황이 포르투갈어를 복습할 수 있도록 내게 보내줬던 포르투갈어 책을 한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를 즉시 교황에게 전했고, 이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면담이 끝나자 교황은 “다음 주일까지 로마에 남아있는 분들은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나와 함께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조속히 교황이 내게 하고자 했던 말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머무르고자 했습니다.


6월 23일 일요일, 교황과의 미사 공동 집전 전 교황의 거소 관리를 담당하며 제의 관련하여 도움을 준 리카 신부에게 교황이 다음주에 나를 만날 수 있는지 물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황의 의중도 파악하지 못한 채 워싱턴으로 복귀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사가 끝나고 교황이 현장의 평신도들과 인사를 나눌 때, 그의 아르헨티나 출신 비서인 파비안 페다키오 신부가 다가와 “교황 성하께서 지금 시간이 되냐고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나는 된다고 대답했고 즉시 시간을 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교황은 나를 거소 1층으로 데려가 “삼종기도 전까지 40분의 시간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운을 떼며 교황이 지난 금요일 면담 자리에서 내게 인사하며 건낸 말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그 때와는 매우 다른, 친절하고 따뜻한 어조로 내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주교들은 이념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필라델피아 대주교처럼 우익적이면 안 됩니다. (교황은 대주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목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좌익적이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올리며 “좌익적이라는 말은 동성욕을 뜻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물론 좌익적인 것과 동성욕이 어떤 상관이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교황은 질문으로 나를 떠봤습니다. “매캐릭 추기경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는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순진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교황 성하, 매캐릭 추기경을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주교성에 가면 그에 대한 두꺼운 파일이 존재합니다. 그는 여러 세대의 신학생과 사제를 부패시켰고, 베네딕토 성하께서는 그를 정죄하며 기도와 참회의 삶을 명하셨습니다.” 교황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주제를 바꿨습니다. 그렇다면 매캐릭 추기경에 대한 질문의 저의는 무엇이었겠습니까? 분명 교황은 내가 매캐릭의 우군인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워싱턴에 복귀한 이후, 교황 프란치스코와의 면담 후 며칠 만에 발생한 새로운 사건으로 인해 이러한 일들의 진의가 분명해졌습니다. 2013년 7월 9일, 신임 주교 마크 세이츠는 엘 파소 교구를 맡게 됐습니다. 그 때 나는 댈러스에서 개최된 생명윤리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에 내 교구 대리인 장-프랑수와 랑톰 신부를 엘 파소로 보냈습니다. 랑톰 신부는 워싱턴에 복귀하여 내게 엘 파소에서 매캐릭 추기경을 만났으며, 매캐릭 추기경은 그를 따로 불러내 교황이 내게 했던 발언과 거의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주교들은 이념화되어서는 안 되며, 그들은 우익적이지 않아야 하며, 목자여야 합니다…” 나는 경악했습니다. 이를 통해 2013년 6월 21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내게 책망의 어조로 했던 발언은 매캐릭 추기경의 영향 때문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당시 교황 프란치스코가 언급했던 “필라델피아의 대주교처럼 우익적이지 않아야 한다”는 발언 역시 매캐릭과 관련됐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 매캐릭과 필라델피아의 대주교 간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에게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할지에 관해 이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추기경이었던 베네딕토 교황, 라칭거 추기경은 성체를 모실 수 없도록 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작성했으나, 매캐릭은 이 서한의 내용을 조작했었습니다. 또한 나는 마호니, 레바다, 우얼과 같은 추기경들이 매캐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이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덴버, 샌프랜시스코와 같은 중요한 지역과 관련된 베네딕토 교황의 주교 임명 결정을 반대해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2013년 6월 23일 매캐릭과 관련된 질문을 가장한 덫으로 만족하지 못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몇 달 후인 2013년 10월 10일 나와의 면담에서, 두 번째 덫을 놓았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또 다른 제자인 도널드 우얼 추기경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게 물었습니다: “우얼 추기경은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사람입니까 나쁜 사람입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교황 성하, 저는 그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가지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앞서 내가 언급했던 사건들이며, 조지타운 대학교의 비정상적인 편향성에 대한 우얼 추기경의 목회적 무관심, 그리고 워싱턴 대교구에서 사제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을 매캐릭 추기경과의 만남에 초대했던 사건에 관합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교황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분명한 점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선출 이후 매캐릭은 모든 제재에서 해방되어 쉼없이 여행하고 강연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 추기경과 협력하여 교황청 내부, 그리고 미국 교회 고위직 인사에서 킹메이커가 됐으며, 오바마 행정부와 교황청 간의 관계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지닌 인사가 됐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교황 프란치스코가 주교회의에서 버크 추기경을 우얼 추기경으로 대체하고, 수피치를 추기경으로 임명 직후 배치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방적인 인사로 인해 주교 임명에 관한 워싱턴 주재 교황청 대사관의 역할은 사라졌습니다. 또한 브라질 출신의 일손 데 헤수스 몬타나리를 주교성 부장관과 추기경단 부장관으로 임명했으며, 몬타나리는 교황의 비서 파비안 페다치오와 절친한 관계였습니다. 이로 인해 몬타나리는 단 한 번에 구성원에서 대주교 부장관으로 승진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직책에 이러한 인사는 전례가 없는 것입니다.


시카고에 블레이스 수피치를, 뉴어크에 조셉 토빈을 임명한 것 역시 매캐릭, 마라디아가와 우얼이 주도한 것입니다. 매캐릭은 가해자이고, 마라디아가와 우얼은 은폐에 동조한 공범입니다. 수피치나 토빈은 시카고 주재 대사관과 뉴어크 주재 대사관에서 제시한 후보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수피치에 관해서는 그의 저속한 오만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피치는 모두에게 자명한 증거를 뻔뻔하게 부인합니다. 이는 약 80%의 학대가 위계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위계를 악용한 동성욕자들이 청년들에게 가해했다는 연구결과를 말합니다.


나는 시카고시 대교구에서 열린 수피치 취임식에 교황대사로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수피치는 새 대주교가 물 위를 걸어다니기를 기대해서 안 된다는 허무맹랑한 농담을 던졌습니다. 수피치는 아메리카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동성욕 친화적인 생각을 내비쳤는데, 이러한 생각을 지닌 그가 현실을 뒤집지 않고 맨땅에 가만히 서있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수피치는 미국 주교회의 소속의 아동 및 청소년 보호 위원회[Committee on Protection of Children and Young People] 위원장으로 재직했던 경력과 전문성을 자랑하며, 성직자의 성 학대 문제의 원인은 동성욕이 아닌 교권주의[clericalism]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억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피치는 2000년대 초 미성년자 성적 학대 위기의 정점에 발표됐던 연구결과는 인용했지만, 이러한 연구결과를 2004년부터 2011년에 걸쳐 수행된 존 제이 형사사법대학[John Jay College of Criminal Justice]의 독립 보고서가 완전히 부정했다는 사실은 무시했습니다. 이 독립 보고서는 성 학대 피해자의 81%가 남성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교황청 미성년자보호위원회 위원이며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의 부총장이자 아동보호센터의 대표인 한스 졸너 신부는 라 스탐파지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동성욕적 가해이다.”


로버트 맥엘로이의 샌디에이고 임명 역시 이런 식으로 청탁된 것이며, 교황청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은 내게 “샌디에이고 교구는 맥엘로이가 차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16년 7월 28일 로버트 사이프가 맥엘로이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 수 있듯, 맥엘로이 역시 매캐릭의 범죄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인물들은 특히 예수회의 비정상적인 분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 비정상적인 분파는 안타깝게도 예수회 내에서 다수를 점하게 됐습니다. 이는 바오로 6세와 이후 교황들에게도 심각한 우려를 안긴 사안이었습니다. 예수회 소속 로버트 드리난 신부의 경우, 하원에 네 번 당선되었으며 낙태죄 폐지를 강력히 지지했습니다. 또한 예수회 소속인 빈센트 오키브 신부는 1967년 랜드 오레이크스 선언[The Land O’Lakes Statement]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미국의 가톨릭 대학과 교육기관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이 선언에는 당시 푸에르토 리코 가톨릭 대학교의 총장이었던 매캐릭 역시 참여했으며, 이 선언은 미국 청소년들의 양심 형성에 큰 해악을 끼쳤습니다.


수피치, 토빈, 패럴, 맥엘로이와 같은 문제의 인물들이 찬사를 보내는 예수회 소속 제임스 마틴 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황청 홍보국 자문위원으로 임명된 제임스 마틴은 잘 알려진 LGBT 활동가입니다. 최근 더블린에서 개최된 세계가정대회에 참석하여 그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하는 제임스 마틴은 이 예수회 분파의 부패를 잘 보여주는 자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 내에서 완전한 투명성을 요구하며, 주교들과 신자들이 파레시아[parrhesia, 진실 말하기]를 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신자들 역시 교황이 이러한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교황은 매캐릭이 신학생들과 사제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범죄를 언제부터 인지했는지 진실되게 밝혀야 합니다.


교황은 2013년 6월 23일 나를 통해 이 사실을 보고받았지만 그 이후로도 매캐릭을 비호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가 매캐릭에게 가한 제재를 무시하고, 매캐릭을 마라디아가와 함께 신뢰하는 고문으로 삼았습니다.



특히 마라디아가는 교황의 비호에 취해, 동성욕 피해로 인한 한 신학생의 자살 기도가 촉발한 수십 명의 신학생들의 진심 어린 호소를 “헛소문”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신자들은 마라디아가의 추악한 생존전략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권력 남용의 심연을 감추기 위해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교회 자산을 배임, 횡령하는 그의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라디아가는 또한 전 교황청 외교단장이자 온두라스의 대사였던 알레한드로 발라다레스를 상대로 큰 금전 문제를 일으켰던 적도 있습니다.


전임 보조주교 후안 호세 피네다의 경우, [이탈리아의] 주간지 레스프레소[L’Espresso]가 지난 2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이에 대해 아베니레[Avvenire]지에 마라디아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방문을 요청한 것은 피네다이며, 피네다는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모함을 당한 후 이와 같은 요청을 했습니다.” 현재 피네다에 대해 공개된 것은 그의 사직서가 수리됐다는 것뿐이며, 피네다의 사임으로 인해 이 사태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게 됐습니다.


교황이 강조하는 투명성의 부합하도록 아르헨티나 주교 알시데스 카사레토가 교황청 순시자[Visitator]로서 1년 전 교황에게 직접 제출한 보고서가 공개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에드가 페냐 파라 대주교의 국무장관 임명 역시 온두라스, 즉 마라디아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페냐 파라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테구시갈파 주재 교황대사관의 고문으로 있었습니다. 나는 교황 대사 담당 부서장으로서 페냐 파라에 대해 우려를 일으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조만간 온두라스에서 과거 칠레를 강타했던 추문과 비슷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황이 칠레에서 주교단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오소르노 주교로 임명했던 후안 데 라 크루즈 바로스 주교를 끝까지 비호했듯, 온두라스에서도 로드리게스 마라디아가 추기경을 끝까지 감싸고자 하고 있습니다. 먼저 교황은 칠레의 피해자들을 모욕했으나 언론과 피해자, 그리고 신자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교황은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받았다고 말했고, 이 일련의 사태는 칠레 교회에 재앙을 초래했으나 여전히 교황은 칠레의 두 추기경인 에라수리즈와 에자티를 비호했습니다.


매캐릭이 일으킨 충격적인 사건에서도 교황 프란치스코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교황은 최소 2013년 6월 23일부터 매캐릭이 연쇄적으로 성적 학대를 저지른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매캐릭을 비호했습니다. 실제로 교황은 매캐릭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으며, 이러한 조언은 당연히 교회를 위하거나 사랑하는 자에게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캐릭이 미성년자를 학대했다는 보고서가 발간되고 언론의 주목을 받은 후에야 교황은 매캐릭을 상대로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 조치도 언론에서 자신의 위신이 추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특히 평신자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몇몇 주교와 사제들도 이에 동참하여 매캐릭의 연쇄 범죄를 은폐한 자들, 그리고 자신의 지위를 높이거나 야망이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매캐릭과 협력한 자들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직자들, 주교와 사제들의 극심히 부도덕한 행위를 퇴치하기에 이는 부족합니다. 회개와 참회를 위한 시기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들 사이에서, 또 신학교에서 정절의 덕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재원을 낭비하고 헌금을 유용하는 부패와의 전쟁이 필요합니다. 동성욕적 행동의 심각성을 규탄해야 합니다. 교회 내부에 침투한 동성욕 조직을 뿌리뽑아야 합니다. 이에 관해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성심 신학교[Sacred Heart Major Seminary]의 재닛 스미스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직자들의 학대 문제는 일부 주교의 사임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행정적 명령이나 조치로는 더더욱 해결할 수 없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회 내부에 침투한 동성욕 조직이며, 이를 뿌리뽑아야 합니다.” 이 동성욕 조직들은 이미 많은 교구, 신학교, 수도회 등에서 비밀과 거짓말로 은폐되어 왔으며, 마치 문어의 촉수처럼 강력한 힘으로 무고한 피해자들, 그리고 사제직 소명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온 교회를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이에게, 특히 주교들에게 이 침묵의 음모, 오메르타를 물리치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인지하고 있는 추문과 범죄를 언론과 사법 당국에 알릴 것을 간곡히 요청합니다.


2008년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서 완전히 드러나고 실현되었지만, 이 사실이 인류사에서 환영되어야 함을 우리에게 상기시켰습니다. 이 인류사는 천주님의 신실함과 우리 사람의 안타까운 불신실함의 역사입니다. 신약은 어린양의 성혈로 완성되었으며, 여기에 담긴 은총의 보고인 교회는 성결하나 그 구성은 죄인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 암브로시오는 “immaculata ex maculatis[불결함에서 성결함이 나온다]”라고 썼습니다. 즉, 교회는 성결하고 흠이 없으나, 지상에서의 여정에서 죄로 더럽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직 워싱턴시 대주교 테오도르 매캐릭의 가증스럽고 신성모독적인 범죄, 교황 프란치스코의 우려스러운 죄스러운 행보, 그리고 수많은 목자들의 침묵을 통한 동조로 인해 충격받은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나는 교회는 성결하다는 불가침의 진리를 이분들께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위신은 수치스러운 일들로 인해 크게 훼손됐으며, 많은 분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12일 삼종기도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할 수 있는 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악에 대항하지 않는 것은 묵시적으로 이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악이 퍼지는 곳에서 행동해야 합니다. 악에 대항하는 선한 기독교인들이 충분하지 않을 때 악은 퍼집니다.” 만약 이러한 말대로 이것이 모든 신자가 짊어진 중대한 의무라면,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매캐릭 사건에서 악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악인들과 동조하고 협력한 교황의 책임은 얼마나 중대하겠습니까? 그는 변태성욕자로 밝혀진 자의 조언을 따랐고, 막중한 권위의 사도좌에 앉은 교황의 이러한 행태는 매캐릭의 악행을 기하급수적으로 증대시켰습니다. 이와 더불어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파괴하고자 하는 많은 악한 사목자들을 비호하고 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에게 사도 베드로에게 명하신 형제들의 힘을 복돋아 주라는 사명을 저버렸습니다. 분명 그의 행적은 형제들을 분열시키고, 오류로 이끌었으며, 그리스도의 양떼를 물어뜯는 늑대들이 계속 활개치도록 동조했습니다.


보편교회의 이 극적이고 중대한 순간에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가 말했던 무관용 원칙에 부합하여 매캐릭의 범죄를 은폐했던 추기경들과 주교들과 함께 사임해야 합니다.


이 모든 상황 속 큰 충격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목자들은 신실하게, 헌신적으로 자신의 소명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은 큰 시련의 순간에 풍성하게 드러나며, 그분의 무한한 자비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결심을 한 자들에게만 허락됩니다. 지금 이 순간은 교회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참회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어머니 교회에 대한 믿음을 다시 굳건히 하고, “유일하고, 거룩하며, 보편된 사도전승의 교회”를 믿읍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절대 교회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성혈로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셨고, 성령을 통해 지속적으로 숨결을 불어넣으십니다.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동정녀이신 어머니, 천상모후이신 어머니, 영광스러운 왕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로마, 2018년 8월 22일

성모승천대축일

카를로 마리아 비가노, 대주교







<파티마 형제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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