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신분상승 사다리라고 생각했다.
한때 내 꿈은 책에 파묻혀서 뒤질때까지 공부하고싶었다.
죽기직전까지 이 우주의 동작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는다는게 너무 억울했다.
만 7세,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하여 집없이 아버지의 11.5톤짜리 화물차를 타며 돌아다니던 시절.
학교는 보내야한다고 경북의 어느 지방소도시 달동네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거실겸 주방, 화장실, 그리고 방 하나...
형광등도 없는 천장에는 아버지께서 어디서 줏어왔는지 세계지도와 별자리 지도를 붙여놨었다.
온 가족이 몇 안되는 이삿짐을 풀고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대뜸 어머니께서 초록색이 육지고 푸른부분이 바다라고 하시더라.
저 바다 건너 미국에 가보고 싶다고...
어머니는 교수가 꿈이셨다.
실제로 성적도 지역에서 1위를 6년동안 놓쳐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자가면역질환과 간염덕분에 병원에서 살았을 때도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결국 나의 삼촌인 늦둥이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상고로 진학하셔서 일을 하며 대학을 갔다고 하신다.
문제는 대학원시절때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오리온에서 식품연구원을 하고 계셨는데 앓고있었던 간염과 자가면역질환이 더 심하게 터지면서 식품관련 일을 그만두게 되셨다.
그러다보니 수입이 없어 대학원을 더이상 다니지못하시고 포기하셨었다.
그 당시 미국으로 유학준비를 하고계셨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 어린 나이에 책임감이 생겼다.
기필코 어머니를 저 바다건너 타국으로 보내드리리라...
그러다 문득 바다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3년을 조르고 졸라 10세때 포항의 어느 해수욕장을 찾아간적이 있었다.
처음보는 파도와 처음 맡아보는 시큼하며 비릿한 바다내음...
낭만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다와 관련된 책과 서적을 찾아보았다.
해양생물학을 알게되고, 그러다보니 지구과학과 천체물리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의 수수께끼를 혼자서 풀어가는 재미로 살았다.
대학을 너무 가고 싶었다.
대학을 가서 대학원을 가면 연구를 한다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너무 가고싶었다.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탈 수도 있다는 말에 정말 열심히 했다.
471명중 3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나에게 모든 돈과 시간을 끌어주기 시작하셨고 자연스레 내 동생은 소외되었다.
중학교 3학년때였다.
나는 영재원 이력으로 자연스럽게 과고에 진학을 할 예정이었다.
아마 봄이 가시며 여름이 오던 날 밤이었을 것이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왔었는데
문을 열때 동생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형만 해주고 왜 나는 안되냐며 고함을 치며 울고있었고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것이 문너머로 들렸다.
난 그때 과고를 포기했다.
다시금 떠올렸다.
내 인생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께서 해주신 바다건너 이야기 덕분이었다.
꿈이 생겼고 목표가 생겼고 그곳에 꽂혀 이끌리는대로 달려만 왔다.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등록금, 고등학교 학비, 기숙사비, 유학비...등등
그 당시 우리가족에게는 너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내가 그것을 포기하면
내 동생은 하고싶다던 한의사가 될 수 있었다.
내 그림자를 밟으며 질투심에 나를 열심히 따라온 내 동생이 그날따라 애처로워 보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던가.
반대로 말하면 물은 얼룩지지 않지만 피는 지워지지도 않는다.
나는 차마 외면 할 수 없었다.
대학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날 공교롭게도 티비에서 유보트라는 영화를 했다.
나는 잠수함 기관사가 되기로 마음먹고서 해사고 원서를 던졌다.
부모님의 반대에 어머니의 인감도장을 훔쳐 도장을 찍고는 원서를 넣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해사고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보니 상선을 타면 돈을 더 준다는 소리에 상선을 탔고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집안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고
반대로 내 몸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릴적 부터 앓았던 판막기형덕분에 혈압이 수시로 떨어져 계단에서 구르기도 하고
진급하려고 밤새워 면장공부하다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선물에 우리 가족이 웃으며 고맙다고 사진 찍어 보내주면 너무 기뻤다.
본선불 수당을 차곡차곡 모아 어머니께 돈다발을 드리면 너무 좋아하셨다.
그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나를 위해 고생한 내 가족들에게 사죄를 하고싶었다.
나 때문에 하마터면 꿈을 잃을뻔한 내 동생
나 때문에 화물차에 공장야간에 쉴새없이 일하다 손가락 4개를 잃으신 우리 아버지
나 때문에 병원도 못가 지병으로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
내 평생을 사죄하며 살리라 마음 먹었다.
1기사로 진급을 하고 2년째쯤
몸이 더 악화되었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근육이 자라지 않고 살도 많이 빠졌다.
174에 82를 유지하던 내 몸이 3달만에 60키로로 빠지더니 계속 빠지기 시작해서 54키로까지 빠졌었다.
기관장께서 더 이상 배 타려고 하지 말라며 건강을 챙기라하시고는 하선을 권유하셨고 나도 하선을 하게 되었다.
하선하고 본 부모님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주름은 늘어나 있었다. 과연 나는 효도를 하고있었던 걸까
스스로 나에게 벌을 내렸던 걸까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완전히 배를 내린 후 퇴직금으로 차를 하나 사고 부산의 어느 서비스엔지니어링 업체에 들어가 일을 하며 휴가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닌다.
미국은 못가지만 동남아, 일본, 중국, 동유럽 정도 다녀봤다.
배는 신분상승 사다리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가장 빨리 올라올 수 있는 동앗줄이었던것 같다.
배를 타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기관장님, 2기사, 1항사 실항사 실기사와는 아직도 만난다.
다음주에도 한번 모이기로 하여 만나기로 했다.
어느새 실항사는 어엿한 1항사가 되어있었고
1항사는 여수의 모 캐미컬 부두의 서베이어가 되었다.
2기사는 서울에서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고
실기사는 내 꿈이었던 해군 잠수함에서 중사로 전기장을 맡고있다.
나에게 배는 낭만이었고 황름 동앗줄이었다...
한때 내 꿈은 책에 파묻혀서 뒤질때까지 공부하고싶었다.
죽기직전까지 이 우주의 동작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는다는게 너무 억울했다.
만 7세,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태어났을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하여 집없이 아버지의 11.5톤짜리 화물차를 타며 돌아다니던 시절.
학교는 보내야한다고 경북의 어느 지방소도시 달동네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거실겸 주방, 화장실, 그리고 방 하나...
형광등도 없는 천장에는 아버지께서 어디서 줏어왔는지 세계지도와 별자리 지도를 붙여놨었다.
온 가족이 몇 안되는 이삿짐을 풀고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대뜸 어머니께서 초록색이 육지고 푸른부분이 바다라고 하시더라.
저 바다 건너 미국에 가보고 싶다고...
어머니는 교수가 꿈이셨다.
실제로 성적도 지역에서 1위를 6년동안 놓쳐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자가면역질환과 간염덕분에 병원에서 살았을 때도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결국 나의 삼촌인 늦둥이 남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상고로 진학하셔서 일을 하며 대학을 갔다고 하신다.
문제는 대학원시절때 터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오리온에서 식품연구원을 하고 계셨는데 앓고있었던 간염과 자가면역질환이 더 심하게 터지면서 식품관련 일을 그만두게 되셨다.
그러다보니 수입이 없어 대학원을 더이상 다니지못하시고 포기하셨었다.
그 당시 미국으로 유학준비를 하고계셨다고 하더라...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 어린 나이에 책임감이 생겼다.
기필코 어머니를 저 바다건너 타국으로 보내드리리라...
그러다 문득 바다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3년을 조르고 졸라 10세때 포항의 어느 해수욕장을 찾아간적이 있었다.
처음보는 파도와 처음 맡아보는 시큼하며 비릿한 바다내음...
낭만적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다와 관련된 책과 서적을 찾아보았다.
해양생물학을 알게되고, 그러다보니 지구과학과 천체물리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의 수수께끼를 혼자서 풀어가는 재미로 살았다.
대학을 너무 가고 싶었다.
대학을 가서 대학원을 가면 연구를 한다는 어머니의 이야기에 너무 가고싶었다.
공부를 잘하면 장학금을 탈 수도 있다는 말에 정말 열심히 했다.
471명중 3등을 할 정도로 성적이 좋았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나에게 모든 돈과 시간을 끌어주기 시작하셨고 자연스레 내 동생은 소외되었다.
중학교 3학년때였다.
나는 영재원 이력으로 자연스럽게 과고에 진학을 할 예정이었다.
아마 봄이 가시며 여름이 오던 날 밤이었을 것이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왔었는데
문을 열때 동생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형만 해주고 왜 나는 안되냐며 고함을 치며 울고있었고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것이 문너머로 들렸다.
난 그때 과고를 포기했다.
다시금 떠올렸다.
내 인생이 이렇게 재미있었던 이유는 어머니께서 해주신 바다건너 이야기 덕분이었다.
꿈이 생겼고 목표가 생겼고 그곳에 꽂혀 이끌리는대로 달려만 왔다.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등록금, 고등학교 학비, 기숙사비, 유학비...등등
그 당시 우리가족에게는 너무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내가 그것을 포기하면
내 동생은 하고싶다던 한의사가 될 수 있었다.
내 그림자를 밟으며 질투심에 나를 열심히 따라온 내 동생이 그날따라 애처로워 보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던가.
반대로 말하면 물은 얼룩지지 않지만 피는 지워지지도 않는다.
나는 차마 외면 할 수 없었다.
대학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날 공교롭게도 티비에서 유보트라는 영화를 했다.
나는 잠수함 기관사가 되기로 마음먹고서 해사고 원서를 던졌다.
부모님의 반대에 어머니의 인감도장을 훔쳐 도장을 찍고는 원서를 넣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해사고에 입학했다.
입학하고 보니 상선을 타면 돈을 더 준다는 소리에 상선을 탔고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집안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고
반대로 내 몸건강은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릴적 부터 앓았던 판막기형덕분에 혈압이 수시로 떨어져 계단에서 구르기도 하고
진급하려고 밤새워 면장공부하다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낸 선물에 우리 가족이 웃으며 고맙다고 사진 찍어 보내주면 너무 기뻤다.
본선불 수당을 차곡차곡 모아 어머니께 돈다발을 드리면 너무 좋아하셨다.
그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나를 위해 고생한 내 가족들에게 사죄를 하고싶었다.
나 때문에 하마터면 꿈을 잃을뻔한 내 동생
나 때문에 화물차에 공장야간에 쉴새없이 일하다 손가락 4개를 잃으신 우리 아버지
나 때문에 병원도 못가 지병으로 고생하신 우리 어머니...
내 평생을 사죄하며 살리라 마음 먹었다.
1기사로 진급을 하고 2년째쯤
몸이 더 악화되었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근육이 자라지 않고 살도 많이 빠졌다.
174에 82를 유지하던 내 몸이 3달만에 60키로로 빠지더니 계속 빠지기 시작해서 54키로까지 빠졌었다.
기관장께서 더 이상 배 타려고 하지 말라며 건강을 챙기라하시고는 하선을 권유하셨고 나도 하선을 하게 되었다.
하선하고 본 부모님의 머리는 희끗희끗해지고 주름은 늘어나 있었다. 과연 나는 효도를 하고있었던 걸까
스스로 나에게 벌을 내렸던 걸까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완전히 배를 내린 후 퇴직금으로 차를 하나 사고 부산의 어느 서비스엔지니어링 업체에 들어가 일을 하며 휴가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닌다.
미국은 못가지만 동남아, 일본, 중국, 동유럽 정도 다녀봤다.
배는 신분상승 사다리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가장 빨리 올라올 수 있는 동앗줄이었던것 같다.
배를 타던 시절 친하게 지냈던 기관장님, 2기사, 1항사 실항사 실기사와는 아직도 만난다.
다음주에도 한번 모이기로 하여 만나기로 했다.
어느새 실항사는 어엿한 1항사가 되어있었고
1항사는 여수의 모 캐미컬 부두의 서베이어가 되었다.
2기사는 서울에서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고
실기사는 내 꿈이었던 해군 잠수함에서 중사로 전기장을 맡고있다.
나에게 배는 낭만이었고 황름 동앗줄이었다...
고생했다
낭만이있네요
가끔 배로 돌아가고싶더라. 당직 끝나고 보던 일출 그리고 담배 한개비 새벽에 2기사와 신나게 노즐을 뽑고 보는 그 별빛과 맥주한잔..
육지는 생각보다 삭막하다. 바다에서 깊이 들이쉰 연초매연은 내 뱉자마자 저 하늘 멀리 구름되어 사라지는데 육지에서는 고작 바람에 부셔져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 같더라...
이전에야 물가대비 페이도 괜찮고 규제도 덜해서좋앗지 지금 다시 배탄다고하면 탈주할걸?ㅋㅋㅋㅋ - dc App
가끔씩 그리울때가 있다. 돈때문이 아니라
멋있네요
와..
과거야 그렇지만 지금은 신분상승?은 에바가 그냥 먹고 살만하다? 정도지
고생했다 ..지금부터 본인이 행복해지는법을 찾아라..희생으로 행복을찾으면 본인이 불행해지는 걸 인정해라..왜냐 우린 나약한 인간이거든..님이 행복하길 기도한다...
흙수저로 시작하여 어느정도 집안 살린 입장으로서 100프로 동감함...올해 기관장 진급했고 좀 더 윤택해지겠지만 또 다른 도전을 해보려함. 고생했어. 근데 이젠 삶의 포커스를 우리 자신에게 맞춰야할때가 온것같아
고생많네 난 기관장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던데
유전병 그런건가? 가족이 몸이 다들 안좋으시네
유전병은 아니고 어머니가 몸이 많이 안좋으셨음. 내 판막기형때문에 병원비가 많이 나가서 병원을 제때 못가서 악화된거지
킹승주님께 사연 전달하면 다시 승선할수있는 길을 제시해주지않을까합니다
고생많으셧네용 - dc App
이글 읽고나니 킹승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네요
해대 나부랭이들이 끄질르는 시답잖은 선갤문학 보다 훨씬 필력도 좋고 술술 익히고 내용도 좋다.
어릴때 꿈이 많아서 이것저것 많이해봄 글쓰는것도 좋아했는데 안쓴지가 8년이 넘어서 이젠 쓰지도 못하겠음ㅋㅋㅋ
퍄퍄 - dc App
그래서 동생 한의사함?
공고니와서 일하다 지거국 공대가서 제품설계연구소 들어감 그때 왜 안갔냐니까 형만 챙겨줘서 악바리 쓴다고 일부러 한의대 간다고 그랬다더라 ㅋㅋㅋ
구라치지마라 ㅋㅋ 중사가 전기장을 어케하노ㅋㅋ 무조건 원상사가 하는데
중사부터 직별장 할 수 있음 잠수함은 인원이 없어서 중사가 맡기도 함
동생이 ㄹㅇ 딱밤마렵네 지금 나이 먹었어도 딱밤마려움
해사고에서 ㅁㅈㅎ ㅋㅋ - dc App
평생승선해라
일단 이사는 견적 많이받고 그중에 중간정도 가격나가는곳으로 진행하는게 안전빵임ㅋㅋ 최저가는 퀄리티가 안좋을 확률 높고, 비싼곳은 부담되니까 ㅋㅋ https://replyalba.com/pt/Q7CkJxcIQU 이런 비교견적사이트에서 한번에 여러업체 견적받고 비교해봐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