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해운가족 동문들.
요즘 들어 항해사 직업에 관심갖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해 한편으로는 뿌듯함을 느낀다.
나는 2000년 초반에 승선생활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통고졸이라 그런지 실습도 갑판원으로 시작하여
1년 실습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케미컬선박에 3항사로 승선했는데 항해사 일에 아무것도 모르겠고 군대잡혀가야 될정도로 일을 못해서 많이 혼나고 회사에 손실도 많이 일으켰고 혼자서 방문닫고 울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항해당직 6시간씩 서는것도 너무 버거웠고 씻고 밥먹고나면 잠자는 시간이 고작 두세시간씩 밖에 안되어서 너무도
피곤하고 커피의 힘으로 버텨냈다.
3항사때부터 그만두고싶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해사라고 하면 해도에 항로선은 그려봐야
항해사 답지 않을까 싶어서 2항사는 꼭 되고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에 진급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막상 2항사가 되고 나니 GPS 로만 위치내는 항해사는
웬지 존재감이 없는 허수아비 같아서 스스로 별을보고
위치를 내는 천문항해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오리온 별자리엔 리겔이 있고 그 위엔 알데바란이라는 별.
오리온 밑엔 프로시온. 그 옆에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가 있다. 뱀자리 폴룩스 인가? 하는 별과 오리온 오른쪽엔
카펠라 라는 별자리들을 위주로 천문위치를 내보고
항해를 하였다.
한때는 1항사님을 잘못만나 크리닝을 못해서 12시간씩
당직을 서도 같이 탱크 크리닝을 도우러 가는 바람에
어쩔때는 3일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탱크안에
기절한듯이 잠을 잔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1항사 업무
가 어느정도길래 이렇게 고생하는가 싶어 크리닝에
대하여 어깨넘어 배우기 시작했다. 때로는 1항사님이
시험관들고하얀 스즈끼 입으며 연금술사 화학자처럼 시험관들고 테스트하던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수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월워시 테스트라는 것을 알게되고
탱크크리닝과 월워시테스트를 집중적으로 남몰래 익혀나갔다. 그리고 어떨결에 1항사님이 집에가게 되었는데
나에겐 뜻하지않게 진급할 기회가 생겨 1항사가 될수
있었다.
근데 1항사가 되고보니 주변의 회사사람들 시선이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서 열심히 공부하여 목포해양대학에
진학하여 졸업을 하였다.
토익은 600 겨우 넘겼지만 나는 만학도로 전학한 탓이라
조금 수월하게 졸업을 할수 있었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이때까지 해놓은게 아깝다보니
다시 승선생활을 임하게 되었다.
2 3항사 생활을 거치면서 대단지 아파트 한가구를
사들여 월세를 받고있고. 다시 2015년도에 재승선
하여 지금은 자그마한 오피스텔 규모의 원룸을
7가구 매입하여 월세를 받고있다.
우리 아버지는 말단 공무원 출신이라서 공무원으로
조금 오래 일하셔서 연금이 어느정도 되는편이다.
아버지 연금과 월세 그리고 내월급을 합치게 되면
거진 1000만원 조금 더 들어오는편이다.
내 퇴직금과 아버지 가 심심하실때 일을 나가시게되면
우리집은 영끌하면 1500 정도는 벌어들이는거 같다.
그리고 현재는 도라이가 되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고객의 화학제품들을 힘들게 크리닝해서 깨끗하게
선적하여 운송하는일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져서
이 일을 그만두질 못하겠다. 배를 타면서 나에겐 더욱
안락하고 친숙하게 느껴지고 여러가지 화물이
화물탱크에 가득차게되면 회사에 많은 돈을 벌어다 줄수있을거란 생각에 뿌듯하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돈도 돈이지만 이때까지 내가 해왔던 일에 인정받고주변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거 같아 이 일을 차마
그만두진 못할거 같다.
항해사가 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선 청춘과 젊음 연애는
확실히 많은 부분을 잃는거 같다.
하지만 그러한 젊음들을 희생당하는거 만큼 얻는 보상
또한 크리라 생각한다. 분명히 호불호가 갈리는 직업이다
보니 판단은 본인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고 본다.
요즘 들어 항해사 직업에 관심갖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해 한편으로는 뿌듯함을 느낀다.
나는 2000년 초반에 승선생활을 시작한 사람으로서
통고졸이라 그런지 실습도 갑판원으로 시작하여
1년 실습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처음으로 케미컬선박에 3항사로 승선했는데 항해사 일에 아무것도 모르겠고 군대잡혀가야 될정도로 일을 못해서 많이 혼나고 회사에 손실도 많이 일으켰고 혼자서 방문닫고 울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항해당직 6시간씩 서는것도 너무 버거웠고 씻고 밥먹고나면 잠자는 시간이 고작 두세시간씩 밖에 안되어서 너무도
피곤하고 커피의 힘으로 버텨냈다.
3항사때부터 그만두고싶었던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항해사라고 하면 해도에 항로선은 그려봐야
항해사 답지 않을까 싶어서 2항사는 꼭 되고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에 진급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막상 2항사가 되고 나니 GPS 로만 위치내는 항해사는
웬지 존재감이 없는 허수아비 같아서 스스로 별을보고
위치를 내는 천문항해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오리온 별자리엔 리겔이 있고 그 위엔 알데바란이라는 별.
오리온 밑엔 프로시온. 그 옆에 가장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가 있다. 뱀자리 폴룩스 인가? 하는 별과 오리온 오른쪽엔
카펠라 라는 별자리들을 위주로 천문위치를 내보고
항해를 하였다.
한때는 1항사님을 잘못만나 크리닝을 못해서 12시간씩
당직을 서도 같이 탱크 크리닝을 도우러 가는 바람에
어쩔때는 3일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탱크안에
기절한듯이 잠을 잔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1항사 업무
가 어느정도길래 이렇게 고생하는가 싶어 크리닝에
대하여 어깨넘어 배우기 시작했다. 때로는 1항사님이
시험관들고하얀 스즈끼 입으며 연금술사 화학자처럼 시험관들고 테스트하던데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보일수가 없었다. 그것이 바로 월워시 테스트라는 것을 알게되고
탱크크리닝과 월워시테스트를 집중적으로 남몰래 익혀나갔다. 그리고 어떨결에 1항사님이 집에가게 되었는데
나에겐 뜻하지않게 진급할 기회가 생겨 1항사가 될수
있었다.
근데 1항사가 되고보니 주변의 회사사람들 시선이 없지 않아 있는거 같아서 열심히 공부하여 목포해양대학에
진학하여 졸업을 하였다.
토익은 600 겨우 넘겼지만 나는 만학도로 전학한 탓이라
조금 수월하게 졸업을 할수 있었다.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이때까지 해놓은게 아깝다보니
다시 승선생활을 임하게 되었다.
2 3항사 생활을 거치면서 대단지 아파트 한가구를
사들여 월세를 받고있고. 다시 2015년도에 재승선
하여 지금은 자그마한 오피스텔 규모의 원룸을
7가구 매입하여 월세를 받고있다.
우리 아버지는 말단 공무원 출신이라서 공무원으로
조금 오래 일하셔서 연금이 어느정도 되는편이다.
아버지 연금과 월세 그리고 내월급을 합치게 되면
거진 1000만원 조금 더 들어오는편이다.
내 퇴직금과 아버지 가 심심하실때 일을 나가시게되면
우리집은 영끌하면 1500 정도는 벌어들이는거 같다.
그리고 현재는 도라이가 되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고객의 화학제품들을 힘들게 크리닝해서 깨끗하게
선적하여 운송하는일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져서
이 일을 그만두질 못하겠다. 배를 타면서 나에겐 더욱
안락하고 친숙하게 느껴지고 여러가지 화물이
화물탱크에 가득차게되면 회사에 많은 돈을 벌어다 줄수있을거란 생각에 뿌듯하게만 느껴진다.
지금은 돈도 돈이지만 이때까지 내가 해왔던 일에 인정받고주변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거 같아 이 일을 차마
그만두진 못할거 같다.
항해사가 되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선 청춘과 젊음 연애는
확실히 많은 부분을 잃는거 같다.
하지만 그러한 젊음들을 희생당하는거 만큼 얻는 보상
또한 크리라 생각한다. 분명히 호불호가 갈리는 직업이다
보니 판단은 본인 하기 나름에 달려있다고 본다.
열심히 잘 살고 계시네요, 앞으로도 화이팅입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하시는일 잘 되시길 바랍니다.
2020년 새한선관 다닐적에 처음 받은 초봉이 345였음 그당시 편붕이들이 180정도 받았고
어찌보면 30일 매일 12시간 일한것치곤 정말 적게 번 것이었는데
마인드가 좋네요 개추드렸습니다!
목해대 후배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입니다!
케미컬 1항사는 진짜 돈 곱절로 받아야됨 시발;;;진짜 사람죽으러가는거아니냐싶던데 - dc App
청춘과 연애와 육아의 기쁨은 한번 가면 못 얻지. 많은 희생이 있으셨네요.
선장은 하고있어? 근데 영끌해서 겨우 월천이라고?
인생의 낙이없음 케미컬은 돈 곱절로 줘도안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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