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일본이 먼저 침범후 일본이 러시아와 싸워서 그렇잖아, 그냥 알아서 개방했으면 지금보단 잘 살았겠지,
전부 IF인데 더 좋은 가능성을 말할수 있잖아? 차악이 아니라
선갤러 1(58.150)2024-12-16 17:04:00
저것도 선동이야. 수탈 당한사람들도 많음. 도시의 일반 서민들이야 어땠을지 몰라도 농사나 축산쪽은 많이 수탈당했다고함.
울할배도 일본인에 대한 평이 상당히 안좋았음.
선갤러 2(59.20)2024-12-16 17:05:00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때가 행복했겠네?
익명(6600v440v)2024-12-16 17:36:00
답글
일제가 대만, 오키나와, 한반도, 만주에서 시행한 식민정책은 각각 다르다.
선갤러 4(140.209)2024-12-19 13:45:00
2차대전때 한국인 5분의1, 5백만명 끌려가서 총알받이, 성노리개 된다음에 개죽음 당한 건 아냐?
선갤러 3(160.238)2024-12-17 02:10:00
답글
지원병제가 1938년에 시작되어서 2만이 안되고, 징병제가 1944년부터 5만이 좀 넘는다.
애초에 황국을 위한 성전이라 조선인에게 기회주지 않겠다는 인식이 강했고 그걸 말기까지 지킨게 일본해군임.
군복무 = 시민 = 참정권이라는 의미에서, 식민지화에 확신이 생긴 시점 + 일본패망 직전에 꺼내든 카드임.
선갤러 4(140.209)2024-12-19 13:14:00
답글
타민족을 억압한 점에서 백번까일 일이지만, 오히려 숫자 뻥튀기하다가 논점비약 당하고 반박당한다.
현재와 지금의 인권의식 / 제국주의 정당성을 논하지 않고 일제의 식민지를 감성적으로 대응하니
상대도 우습게 보는거고 , 우리도 맨날 팩트가 오락가락하는거임.
선갤러 4(140.209)2024-12-19 13:17:00
일제강점이래 한국의 반일감정의 세대가 있다고 한다면, 강점 당시의 독립군 세력 일부와 건국 즈음 이승만정부가 있고, 그 다음에 박정희임. 현 시점에 만주군 경력 친일파로 치부되는 박정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순신영웅화도 박정희가 한것이고, 반일감정을 확대재생산해서 협상의 도구와 국론응집으로 삼은게 팩트임. 이민족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관계는 국익에 따라 필요에 의해 편집되는 것이 당연한거임. 현 정부의 친일은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적 판단인 거고, 야당의 반일은 그러한 정부에 반대하기 위한 선택적 정책인 것임.
선갤러 4(140.209)2024-12-19 13:28:00
답글
서구 국제관계학/정치학적 측면에서 냉정하게 봤을 때, 조선의 일제식민지는 당사국간 전쟁에 패하여 점령된 것이 아니라 군주가 스스로 나라를 바치고 왕가 계통을 유지한 것이고, 일본 패망시에 같은 전범국으로 묶일 가능성까지 있었던 상황이었음.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세력의 분발도 있었지만 세력은 미미했고, 미국에서 활동하며 인맥쌓은 이승만의 활동이 주요했다고 보는게 맞음.
선갤러 4(140.209)2024-12-19 13:32:00
답글
이승만은 친일 독재자로 일컫어지지만, 한 평생 일본과 싸웠으며 집권중에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막아왔음.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국내파 지식계층은 일본교육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수혜 사실에서 자유로운 사람 절대 없음. 이제까지 박정희이래 이어온 반일(김대중을 이어 문재인때 전성기)은, 일본보다 한참 뒤쳐지는 후발국가로서 가능했던 일종의 차용증을 내미는 사실상 앵벌이고, 우리가 실력을 어느정도 갖췄고 상대도 부담스러워할 수준이 된 지금은 이런 감정적 방식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얻어지는 총량이 많아질 것
그건 일본이 먼저 침범후 일본이 러시아와 싸워서 그렇잖아, 그냥 알아서 개방했으면 지금보단 잘 살았겠지, 전부 IF인데 더 좋은 가능성을 말할수 있잖아? 차악이 아니라
저것도 선동이야. 수탈 당한사람들도 많음. 도시의 일반 서민들이야 어땠을지 몰라도 농사나 축산쪽은 많이 수탈당했다고함. 울할배도 일본인에 대한 평이 상당히 안좋았음.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때가 행복했겠네?
일제가 대만, 오키나와, 한반도, 만주에서 시행한 식민정책은 각각 다르다.
2차대전때 한국인 5분의1, 5백만명 끌려가서 총알받이, 성노리개 된다음에 개죽음 당한 건 아냐?
지원병제가 1938년에 시작되어서 2만이 안되고, 징병제가 1944년부터 5만이 좀 넘는다. 애초에 황국을 위한 성전이라 조선인에게 기회주지 않겠다는 인식이 강했고 그걸 말기까지 지킨게 일본해군임. 군복무 = 시민 = 참정권이라는 의미에서, 식민지화에 확신이 생긴 시점 + 일본패망 직전에 꺼내든 카드임.
타민족을 억압한 점에서 백번까일 일이지만, 오히려 숫자 뻥튀기하다가 논점비약 당하고 반박당한다. 현재와 지금의 인권의식 / 제국주의 정당성을 논하지 않고 일제의 식민지를 감성적으로 대응하니 상대도 우습게 보는거고 , 우리도 맨날 팩트가 오락가락하는거임.
일제강점이래 한국의 반일감정의 세대가 있다고 한다면, 강점 당시의 독립군 세력 일부와 건국 즈음 이승만정부가 있고, 그 다음에 박정희임. 현 시점에 만주군 경력 친일파로 치부되는 박정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순신영웅화도 박정희가 한것이고, 반일감정을 확대재생산해서 협상의 도구와 국론응집으로 삼은게 팩트임. 이민족이나 다른 나라에 대한 관계는 국익에 따라 필요에 의해 편집되는 것이 당연한거임. 현 정부의 친일은 동북아 정세 속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적 판단인 거고, 야당의 반일은 그러한 정부에 반대하기 위한 선택적 정책인 것임.
서구 국제관계학/정치학적 측면에서 냉정하게 봤을 때, 조선의 일제식민지는 당사국간 전쟁에 패하여 점령된 것이 아니라 군주가 스스로 나라를 바치고 왕가 계통을 유지한 것이고, 일본 패망시에 같은 전범국으로 묶일 가능성까지 있었던 상황이었음.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세력의 분발도 있었지만 세력은 미미했고, 미국에서 활동하며 인맥쌓은 이승만의 활동이 주요했다고 보는게 맞음.
이승만은 친일 독재자로 일컫어지지만, 한 평생 일본과 싸웠으며 집권중에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막아왔음. 당시 여야를 막론하고 국내파 지식계층은 일본교육이나 일본으로부터의 수혜 사실에서 자유로운 사람 절대 없음. 이제까지 박정희이래 이어온 반일(김대중을 이어 문재인때 전성기)은, 일본보다 한참 뒤쳐지는 후발국가로서 가능했던 일종의 차용증을 내미는 사실상 앵벌이고, 우리가 실력을 어느정도 갖췄고 상대도 부담스러워할 수준이 된 지금은 이런 감정적 방식보다 성숙한 방식으로 대응해야 얻어지는 총량이 많아질 것
친일파 입장=천국 나머지=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