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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선원 ㄱ씨(18)는 지난해 말 한밤중에 배 안에서 쪽잠을 자다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튿날 근무가 새벽 5시에 시작돼 일찍 잠을 청한 날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라면”이라는 두 글자가 들렸다. 이어 전화는 뚝 끊어졌다. ㄱ씨는 어리둥절한 채 30분가량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라면을 끓여와”라는 구체적인 명령이 떨어졌다. 앞서 전화를 걸어왔던 선장의 목소리였다.

실습 항해사와 기관사(실항사·실기사)들이 위탁교육을 빌미로 사설 외항선에서 시급 1000원 수준의 저임금을 받으면서 상사의 가혹행위까지 감수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원 훈련에 관한 국제협약(STCW)’에 따라 정식으로 선원이 되려면 최소 1년간 배에서 실습 경험을 쌓아야 한다. 해사고나 해양대 학생들은 보통 학교에서 운영하는 선박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나머지 기간은 국내외를 오가는 해운회사 외항선에서 실습을 하는데 이때 주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실항사·실기사들은 매달 30만원가량 실습비를 받는다. 실습비가 30만원으로 고정된 것은 10여년 전이다. 실습 선원들에 따르면 배의 항로에 따라 위험수당이 붙으면 50만~60만원도 받지만 그 이상 수령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올해 기준 선원 최저임금인 164만1000원에 한참 모자라는 금액이다. 하지만 실습 나간 회사에 취직을 하기 때문에 갖은 악행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문제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근무조건은 열악하다. 오전 6~7시에 일어나 오후 9시까지 일한다. 해양대 출신 ㄴ씨는 “실항사들은 계속 배를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이 없다. 낡은 배일수록 사람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노동강도도 세다”고 말했다. ㄱ씨처럼 상급자로부터 새벽에 “술안주를 만들어 오라”는 심부름을 받는 일도 적지 않다. 알약 형태의 비타민C를 잘게 부숴 코로 흡입하거나 노래방에서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포커에 사용하는 칩을 몸에 붙이는 가혹행위도 한때 있었다고 실습 선원들은 전했다.

실항사·실기사들은 항해 중 다치더라도 회사가 가입한 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증언했다. 회사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면 입사 때 불이익을 받을까봐 다치더라도 보험 청구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ㄷ씨는 “한 친구가 손가락을 심하게 다친 장면을 목격했다”고 털어놨다. 해당 동료는 배 안에서 고통을 참고 일을 했고, 배가 한국에 다시 정박한 다음에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ㄷ씨는 “동료는 보험처리를 하지 않았고 다친 게 들킬까봐 깁스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방치된 이유는 실무수습을 하는 학생을 일반 선원들과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선사의 관행과 제도적 허점 때문이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대승적 차원에서 필요 이상의 실습생까지 받는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비용까지 합하면 업체 측이 더 손해”라면서 “가뜩이나 어려운데 처우 개선 압박까지 들어오면 지금보다 실습생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학생들은 선원법 일부만 적용돼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선사가 학교로부터 위탁받아 교육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