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보니 초임 3항사로서 승선한지도 11개월이 다 되어가네요...8개월 계약으로 탔는데 능력도 없는 제가 어쩌다보니 11개월이 다 되도록 승선을 하고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간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뭐, 일단은 한국해양대 출신이지만, 학교 생활에서도 그다지 적응은 못 했고, 공부도 안했습니다. 귀찮았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에 중소 케미컬 선사에 들어갔습니다.

우선 깔고 들어가는건, 저는 일단 병신 맞습니다. 일처리에 있어 빠릿빠릿하지도 못하고, 느리고, 눈치없고, 그렇다고 싹싹하지도 못합니다. 딱 봐도 승선생활에 애로사항이 꽃필 요소는 두루 갖춘 보기드문 병신이지요.

실습을 주니어들 전부 외국인인 벌크를 타서 배운것도 없는 제가, 비록 여기서 실습을 한 두달 했다고 해서 아는게 있을리가 없습니다. 실습때에도 이런 바쁜 분위기가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백수 타이틀을 다는게 무서워서 그냥 승선을 했더랬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그동안 살면서 평생 먹었던 욕을 여기와서 2달간 다 먹은 것 같았습니다.

실습때는 \'집에 가고싶어 ㅜㅜ\'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3항사가 되고나서 처음 2달은 \'죽고싶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병신이라 죽는게 무서워 실행에 옮기진 못했구요...

가장 큰 문제는 안그래도 소심한 병신이 더욱 더 안으로 쪼그라들어서, 더욱 답이 없는 병신이 되었다는 겁니다. 일처리에 있어서 나아지는건 없고, 공부를 하여 지식을 쌓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니어 후빨하는 실력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두달 지나고 나니, 사람들이 한 둘 교대되고, 어느 새 사관, 부원을 통틀어서 제가 이 배에서 제일 승선한지 오래된 사람이 되었습니다만...그럼에도 전혀 나아진 건 없습니다. 한 번 병신은 영원한 병신이니까요.

업무는...처음에 그 처참한 때와 비교하면 나아지긴 했으나...지식적으로 아는것이 전무하다 보니, 혹여 2항사님이나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저 엑윽되다가 죄송합니다...라고 할 뿐이고

역시 한중일 케미컬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잦은 입출항과 전투적(?)인 분위기는 지금에 와서도 전혀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원래도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지금에 와선 마치 험하게 굴려져 배터리 수명이 다 한 핸드폰마냥 자도 자도 피곤하고 무기력하고, 지각도 하기 시작했네요...알람을 3-4개씩 맞춰놓는데 말이죠...

성격도 많이 안좋아지는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일 못하는 제 잘못이 많아서 한 없이 자책만 하고 우울했는데, 이제와서는 \'남 탓\'이라는걸 많이 하게 되네요. 아직 입 밖으로 그걸 꺼내지는 않고 속으로만 투덜거리지만, 스스로 놀랄만한 뒷담화를 속으로 많이 쏟아냅니다.

그리고.. 여기 타고있는 사관들의 마인드랑 전혀 저는 맞지가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눈치 봐 가면서 쉴 때는 쉬고 싶고, 적당히 게으름도 좀 피우고 싶은데...여기 있는 분들, 특히 여기 와서 만난 2항사님들을 보면...솔직히 말해서 미친것 같습니다. 좀 짜증나기도 하고요. 아는거 많고 일 잘하는건 알겠는데, 저라도 몇 년 배 타면 그정도는 할 수 있을거란 생각도 가끔 듭니다...

글이 길어졌는데, 역시 저는 배랑은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3년 시마이..라지만 3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일단은 휴가가서 빨리 쉬고 싶습니다...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무너진 때인 것 같습니다. 우선 휴가나가면 정신과 검사부터 받을 생각입니다. 지금 이 기분과 상태가 정상이라고는 절대 생각치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