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이라는 작품이 있다.

늘 큰 고민을 두고 있을 때면 그 시가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인생에서 선택이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보낸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그에 대한 아쉬움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선갤의 많은 갤러들처럼, 나 역시 두 길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다.

승선하면서 군대도 마쳤고 알뜰하게 저축도 했다.

유능한 인재까진 아니어도 나가도 상관없는 사람은 아닐 정도로, 제법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지금과 새로운 삶을 금방 저울질 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용기있는 인간이 되질 못한다.



내 부모님의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시골 무지렁이 농부의 둘째 아들이었던 아버지와 몰락한 지주 가문 출신의 어머니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사랑만으로 당신들의 삶을 살아오셨는데

그 결과란 참담해서 두 분은 은퇴를 앞두고 있는 얼마 전에도 변변찮은 집 하나 없고

노후자금조차도 없었다.



사실 그분들은 자식인 내가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만큼 열심히 살았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혼수로 가져왔던 물건들을 깡그리 판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가 철이 들기도 전에 이미 두 채의 신축 아파트를 무리하여 사셨던 것이다.

심지어 당시에는 친인척들로부터 무슨 아파트를 두 채나 덥썩 사냐며, 제정신이냐고 

무수한 욕을 드셨다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면수심의 백부, 백모는 가족에게 싫은 소리 하나 못했던 아버지에게

자신들 가게가 망하면 집안이 곤란하게 될 테니 응당 '형제로서의 도리'를 하라며 압박했고

금방 갚을 테니 잠깐이면 된다는 거짓말까지 해 가며 결국 돈을 빌렸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돈은 돌려받지 못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님은 어렵게 장만했던 한 채를 결국 별 이득도 못보고 되팔고 말았다.

(심지어 그 돈은 지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년수로 치면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기까지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외가도 골칫거리이긴 마찬가지였고, 외조부가 암에 걸리면서 가산을 다 탕진하는 동안

폭력 사건과 불량한 소행으로 구설수에 오르던 외삼촌들은 걸핏하면 어머니에게 손을 빌린 것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혈연을 끊지 못했고 

그들이 거짓 피눈물을 흘리며 도움을 요청할 때면 다시 속고는 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가계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악덕 중소기업에서 착취당하며

빠져나올 생각조차 못하는 아버지의 급여와 몸이 아픈 어머니의 임시직 일당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초중고 때부터 남들 다 다니는 학원 하나 보내주지 못해서 

내 손을 잡고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던 그분들의 마음과는 달리

나는 마냥 공부하지 않으니 좋다고 실실거리고 있었지만

대학 입학 후에 나와 동생은 집안의 상태를 알게 되었다.



나는 격노해서 길길이 뛰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나는 해대에 입학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기며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지독한 꼴을 당하고, 타고 있는 놈들을 전부 죽여버릴까 생각한

실습 생활조차도 그만두지 않고 버텨냈다.



어느덧 나는 학교를 졸업했고, 배를 타게 되었다.

첫 급여를 받은 날 얼마나 감정이 복받쳤던가.

그렇게 몇 개월을 타고 처음으로 내리던 날, 나는 멍청이마냥 실실 웃으며

남들의 시선도 아랑곳앉고 선물로 뭘 살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나는, 내가 약 반년을 타며 모았던 돈 전부를 어머니의 카드빚을 메꾸는데 썼고

가족들은 말도 못했지만 나는 그저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나는 군대도 마치고 근 1억에 달하는 부모님 빚도 해결했다.

고군분투하던 동생에게 학자금과 용돈도 줄 수 있었다.

지방에서 아파트도 하나 마련했다. 내가 집을 산다고 하자 부모님이 굉장히 놀라는 것을 즐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달려오니 갑자기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 것이다.

여태까지의 삶이 아쉽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그런 생각이 갑작스럽게 든 것이다.



친구들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라고 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았지만 배를 타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 전에 이런 삶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런지 그런 의문도 들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즐기기에,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그런 것 없이 살아왔던 걸까.

삶이 재미없음을 너무나 강하게 느끼곤 했다.



배는 나의 인생을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려 준 것이지만, 남은 평생을 함께하기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삶도 아니고 목표가 없는 상태로 그만두는 것 또한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수풀이 무성한 그런 길을 가야 하는지?

아니면 사람의 흔적이 나 있는, 익숙한 길이 최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