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 깡촌 출신이다. 시는 커녕 군 중에서도 대다수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그런 곳에서 자랐다. 다 쓰러져 가는 촌집에서 전기도 모르고 자랐다. 내가 컴퓨터를 본 것은 중학생 때였고, TV라는 걸 실물로 본 것도 그때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원서를 넣을 때도 선생님의 도움을 빌려서 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내가 도시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어딜 가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촌구석에서는 읍내를 돌아다녀도 사람 하나 보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서는 언제나 내 눈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학교만 다녔다. 말주변도 없고, 변변한 취미도 없는데다 스스로를 가꾸지도 못했기에 친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마냥 좋았다.
졸업하고 입사했다. 재미없는 놈이라고들 했지만 무능하단 손가락질은 안 받았다. 4년 동안 일하면서 저축했다. 내게는 불행히도, 승선이 천직이 아니었다. 밤에 고요한 바다를 볼 때면 언제나 외로움이 사무쳤다. 늘 미안하다는 말만 하던 아버지를 여의고 내 얼굴을 앙상한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울었던 어머니와 귀한 통화를 하노라면, 나의 눈시울도 붉어지곤 했으니까.
참지 못하고 나는 사직을 했다. 왜 이런 시기에 사직을 해야만 하냐고 묻던 감독에게, 나는 개인사가 있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촌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돈을 들고 상경했다. 운 좋게도 거주할 곳을 찾아냈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고 있다. 다행히도 점주가 챙겨줘서, 내 끼니 걱정은 없다. 공부한지 어느덧 2개월이 지났다. 쉽지는 않다. 솔직히 어렵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오면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해낼 것이다.
타인에게 내 삶은 그저 실패의 연속이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의 생활이 좋다. 하나뿐인 자식이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매일 한시간은 꼬박 기도를 했다던 나의 어머니. 이제는 당신께 은혜를 돌려드릴 일만 남았다.
털어놓으니 뭔가 후련하네. 건승하길.
목표한 바를 꼭이루시길.
잘했다
너도 망사한테는 '육상에서 빌빌대다 배로 기어들어올 보잘것없는 해대출신'임 ㅋㅋㅋ
공무원이나 공기업 준비하시는거 같은데 꼭 붙으시길
파이팅해라.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