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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성산수고 기관과 3학년때 대형 기선저인망 기관사 실습 하며 동지나해에서 1983년 8월에  목격한 썰이다.
이당시 나는 인천의 대창 수산이라는 회사의 130톤급 쌍끌이 기선저인망 자선 102 대창호에 학교동창 4명과 함께 실기사로 승선중 이었다.
동지나 해상서 꽃게 조업중인 무더운 8월로 정확히 기억된다.
8월달 즈음되면 태평양 에서 태풍이 빈번히
발생하고 동지나 해상을 거쳐가는 시기여서 백톤 크라스 좃만한 어선들이 조업하기엔  무리지만  이시기엔 동지나해에서 꽃게와  병어 조기 같은 고가 어종이 무진장 잡히는 때라서 300여척의 한국의 저인망 어선들 거의다 위험을 무릅쓰고 동지나해에서 조업했다.  이당시는 한중 어업 협정도 없던때고 중국엔 변변한 해상감시 경비정들도 많지 않았던 때라  한국 어선들은 중국 영해인 양쯔강  입구까지 들어가서 독고다이 월선 조업을  했었다.
주로 야간에 어둠을 틈타 독고다이 조업을 하는데
양쯔강 입구엔 고가 어종인 병어와 조기가 상당히 잡혀서 배짱 좋은 선장들이 월선 조업하는 해역이기도 했다.
사고를 목격한 날은 태풍이 조업지로 근접중인데도 십여 척의 배가 피항도 안가고 조업을 했는데
이런날은 중국 경비정들은 높은 파도로 인해 아예
바다에 나오지 못했다.
파도를 뒤집어 쓰면서 양망 작업하는데 선장은 피항 간다고 어구들 동여매고 황천항해 단도리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대략 4에서 6미터 되는 파도 이상되면 백여톤 밖에안되는 쌍끌이 어선들은 투양망중 전복될 위험이 크므로 조업을 포기 하고 안전한 곳으로 피항을 가거나 선미에 그물을 내려서 선체 길이를 두배로 늘린뒤 파도와 조류에 떠다니는 드리프팅을 한다.
이렇게 하면 선장 30미터 밖에 안되는 배도 십미터의 파도정도는거뜬히 견뎌낼수 있지만 선원들은 아주 죽을맛으로 지옥을 경험 한다.
이날은  중형급 태풍이 상하이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바람에 선장은 더이상 조업이나 드리프팅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대흑산도로 피항을 간다고 한다.  
일단 비바람을 맞아가며 양망을 부랴 부랴 마친뒤 황천 항해 단도리 작업하는데 옆에서
작업하던 선원하나가 갑자기 어어 배 넘어간다 며
큰소리를 치길레 우리배가 전도 되는줄알고 깜짝 놀라서 바다를 쳐다 봤는데 6백여미터 떨어진 수면 위에서 투망 조업중이던 11안영호라는 배가
우현으로 산채 만한 파도에 덮여 전복되고 있었다.
선장도 그 광경을 목격하고전복되어 서서히 가라앉는 11안영호 쪽으로 황급히 뱃 머리를 돌렸다.
사고 선박 가장 가까운쪽에 있던 배가 우리배와 7동창호 였고 나머지 저인망 어선들은 이미 두어시간 전에 피항지인 대흑산도로 뱃머리를 돌린뒤였다.
우리배와 7동창호는
사고 선박 11안영호로 접근 해서 바다에 빠져 허우적 대는 선원들을 구조하는데 높은 파도가 쉴새없이 덮치는데다 한치앞도 분간이 안될 정도로 비바람이 쎄차게 몰아치고 동급 크기인 우리배도 까닥하면 6미터 파도 에 전복될 위험이 커서 구조가 쉽지 않았지만 우리배와 7동창호는
입수되어 바다에 뿔뿔이 흩어져 떠다니는 11 안영호 선원들을 한명씩 한명씩 최선을 다해 악전고투 하며 건져내기 시작했지만
더 악화 되어 가는 기상 상태가 구조작업을 호락 호락 허락해주지 않아서 세시간만에 구조 수색을 포기하고 우리배는 7동창호와 함께 피항을 갈수 밖에 없었다.
우리배는 사고 선박 11안영호 선원 14명중 4명을 구조하고 7동창호는 6명을 구조 했지만 나머지 4명은 안타깝게도 찾지 못하고 기상 악화로 도저히 구조수색을 더할수가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기관장에게 들은 애기로는 11안영호 선장은 주위 선단 선장들의 피항 가라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태풍이 직접 관통하지만 조업을 강행 한다고 해서 사고 당시에도 타선박들은 이미 피항을가기 시작 했거나 피항 가기 위해 양망중이었다.
그럼에도
11안영호 선장은 황금 어장의 만선 대박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고 객기가 발동하여
조업을 강행하고 투망 하던중 변침 하다가 급기야 옆으로 밀어친 파도에 전복되 버리고 선원 네명의 목숨마저 았아가 버렸다.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조지 클루니 주연의 퍼팩트 스톰이란 영화가 떠오른다.
바다는 절대 거짓말 안한다.
오만과 자만으로 자연의 힘을 이길수 있는건 아무겄도 없으므로 절대 객기부리지 말고 안전 항해
안전조업에 임해야 된다는걸 어린 18세 때부터
똑똑히 눈앞에서 보게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