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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 싱가포르 이스트 바운드였다.

해군 제1군사교육단에서 시작된 여정의 마침표.

실습생으로 첫 승선을 할 때도 싱가포르에서 승선했고, 특례 중에도 이 곳에서 승하선을 여러번 했기에 나와 꽤나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앵커리지에서 24시간 이내에 출항해야 했기에 잠도 못 자고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괜찮았다.

지난 3년간 겪어온 수많은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통선이 오고 있으니 하선자들은 준비하라는 캡틴의 목소리가 트랜시버로 들렸고 모든 업무를 본선 진급하는 삼돌이에게 인계해주고 짐을 챙기러 방으로 올라 갔다.

샤워는 호텔에 가서 할테니 대충 쑤셔 넣고 어퍼데크로 내려 왔다.

나와 함께 승선했고 은퇴하실 기관장님과 조기장,타수 그리고 중국에서 승선했던 용접공들은 이미 채비를 마치고 내려와 있었다.

몇 개월간 함께 동고동락한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포트 사이드 갱웨이로 걸어갔다.

일항사가 갱웨이를 조정하느라 조금 기다렸는데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정도였다.

금빛 해설피가 앵커리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마치 평화로운 호수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한 명씩 갱웨이를 내려가 래더를 타고 통선으로 옮겨 탔다.

통선은 푸프 쪽으로 뱃머리를 향했고,크레인으로 내린 캐리어를 받고 통선장으로 출발했다.

점처럼 멀어지는 배 난간에서는 남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두 팔을 흔들어 주었고 우리도 화답했다.

저 사람들은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난관을 겪게될 지 궁금하면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7개월이란 시간을 지냈던 배는 점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묘박 중인 수많은 선박들과 벙커 바지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통선 푸프에 앉아서 지난 3년을 돌이켜보았다.

눈물이 안 날 정도로 힘든 일도 많았다.

얼굴만 봐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싫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련이 있었기에 나는 좀 더 단단해졌고 성장했다.

일반적인 대학 생활을 한 사람들에 비해 3년이라는 커리어을 쌓았고 같은 나이대에 쉽게 모을 수 없는 돈을 모았다.

휴가 때는 수많은 곳을 여행했고 다양한 문화를 접했고 견문을 넓혔다.

배에서 6개월 이상씩 갇혀 지내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멋지고 존경스러운 분들도 많이 만났고,또 많이 배웠다.

결코 헛되고 무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할 2020년이 무척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