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다 준・히사야 나오키 동시 인터뷰 ②


「Soul Searching Journey」第1回 麻枝准・久弥直樹 同時インタビュー「彼らが見つけた“尊敬”のかたち」

「Soul Searching Journey」 제1회 마에다 준・히사야 나오키 동시 인터뷰 「그들이 찾아낸 ‘존경’의 형태」


https://ch.nicovideo.jp/article/ar1890660?_ga=2.192956269.1983575306.1589161319-58832764.1589161319 (출처, 유료 결제 필요)


인터뷰어・구성:사카가미 쇼세이(坂上秋成)


마에다 준과 게스트와의 대담 기획 「Soul Searching Journey ~마에다 준 대담 기획~」의 제1회를 전달한다. 기념적인 첫 회 게스트로 우리는 시나리오 작가 히사야 나오키 씨를 불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히사야 씨는 일찍이 마에다 씨와 팀을 이뤄 「MOON.」, 「ONE ~빛나는 계절에」, 「Kanon」이라고 하는 세 개의 명작을 낳은 인물이다. 이른바 Key와 마에다 씨를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인물로, 제1회 게스트로서는 가장 걸맞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대담'은 실현되지 않았다.

 우리는 히사야 씨와 마에다 씨에게 각각 인터뷰를 실시해,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던져 열의에 찬 이야기를 수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이번에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

 마에다 씨와 히사야 씨는, 히사야 씨가 「Kanon」 제작 후에 Key를 그만두고 나서 장장 20년 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상황이기에 갑자기 얼굴을 맞대고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것은 실제로 두 사람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확실하다. 분명 마에다 준과 히사야 나오키 사이에는 서로를 가슴 깊은 곳에서 존경하는 마음이 있다.

 본 기획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하던 당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2020년 현재 서로를 어떠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양자의 발언을 대조하면, 사실 관계에서 서로 어긋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것을 조정하지는 않았다. 히사야 씨에게는 히사야 씨의, 마에다 씨에게는 마에다 씨의 기억이 있으므로 각자의 진실을 타인이 손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맞댄 대담이 아닌 각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며 행해진 변칙적인 개별 인터뷰. 하지만 이런 형식이기에 떠오르는 두 사람의 특별한 감정이 있었으리라 우리들은 확신한다. 그 확신과 함께, 두 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이 곳에서 세상에 내보낸다.

 바라건대, 거기에 있는 아름다운 마음이 독자에게도 닿기를.

 


◎제1부:히사야 나오키 인터뷰


――먼저, 히사야 씨가 시나리오 라이터를 목표로 하게 된 이유와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히사야:

저는 어릴 적에 특정 작품에 깊게 빠져 본 경험이 없어요. 초중학생 무렵에는 애니메이션도 거의 보지 않았고, 라이트 노벨에 흠뻑 빠진 적도 없어요. 그 중에서 굳이 열중했던 것을 꼽으라면 TRPG(테이블 토크 롤 플레이 게임)이 되겠네요. 「퇴마전기」나 「소드 월드」 같은 작품으로 친구와 놀고, 그때의 모습을 녹음해서 「리플레이」를 쓰곤 했습니다. 친구가 그걸 재밌다고 말해 주는 게 기뻤고, 지금도 이야기를 쓰는 데 있어 원체험 같은 게 된 것 같습니다. 그때의 영향으로 취직처로 게임 회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쯤이었나요.


히사야:

20살쯤의 얘기네요. 당시에는 오사카에 있는 친가에 살고 있었으므로, 거기서 다닐 수 있는 범위에서 일자리를 찾았는데, 당초에 그 당시 PC 게임 회사는 구인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이따금 찾아내도 실무 경력자만을 모집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시나리오 라이터가 돼야 했던 겁니다. (웃음)

그러던 중, PC 게임 잡지를 읽고 있을 때 Tactics의 「동거」(1997년)라는 게임 광고 안에 시나리오 라이터 모집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근무처는 오사카고, 무엇보다 경력자 한정이라는 조건도 없었어요. 이러면 이제 여기에 응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요. 꽤 운명적인 만남이네요.


히사야:

당시 저는 시나리오나 소설을 일절 쓴 적이 없었지만, 시나리오를 동봉하는 게 응모 조건에 들어가 있었기에 어떻게든 숏 시나리오를 마무리지어 보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집에 도달한 것은 불채용 통지였습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만, 실은 한 번 Tactics에 떨어졌었습니다. (웃음)


――그건 완전히 금시초문인데요.


히사야:

다만, 그 이후 당시 대표님이 전화로 '사실은 채용하고 싶었지만, 잡지에 모집 광고가 나간 시점에서 다른 루트로 시나리오 라이터를 채용해 버렸다. 하지만 그래서는 미안하니까, 고용할 수는 없지만 게임 제작에 흥미가 있으면 한 번 견학오지 않겠는가'하는 이야기를 주셔서, 흥미가 있었기에 쾌히 승낙해서 놀러 갔습니다. 그때 '이 사람이 먼저 채용된 시나리오 라이터입니다'하고 소개받은 게바로 그 마에다 씨였던 거예요.


――마에다 씨와의 만남에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히사야:

마에다 씨의 첫인상은 거의 떠오르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게, 당시 저는 '일반 유저'에 지나지 않아서 처음 게임 제작 현장을 견학하며 굉장히 긴장했었거든요. 그런데 행운으로, 그 날 견학 후, 대표님에게서 '정식 채용은 할 수 없지만 아르바이트라도 괜찮으면 내일부터라도 와 줘'하고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 마에다 씨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좁은 방에서 동료가 되어 시나리오를 진행시킨다는 형태였지요.

저와 마에다 씨 사이의 마루에 사전 1권만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걸 서로 필요할 때에 쓴다……는 기묘한 공간이 생겨났지요. 그러던 중에 마에다 씨는 바로 옆에 사람이 있으면 차분할 수 없었는지 골판지로 파티션을 만들고 있었습니다만. (웃음)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해서 「MOON.」 제작에 관여할 수 있었나요.


히사야:

제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MOON.」의 개발은 시작돼 있었습니다. 플롯은 마에다 씨가 벌써 써놨고, 초반 시나리오도 착수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 나쿠라 유이와 카누마 요코라는 두 캐릭터의 시나리오는 거의 하나도 쓰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걸 제가 받아서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MOON.」의 설정이나 플롯을 봤을 때 어떤 인상을 가졌나요. 굉장히 어두운 작품이고, 사이코적인 요소도 많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히사야:

내용에 관한 인상으로서는, 어쨌든 지금까지 없던 것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전해졌습니다. 저의 경우 「동거」라는 연애 요소가 강한 작품의 광고를 보고 Tactics에 왔으므로, 어두운 분위기와의 갭에 당황했습니다만. (웃음) 어쨌든, 당시 마에다 씨와 이야기를 하다 '다른 것과 똑같은 걸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하고 말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MOON.」은 캐릭터를 루트마다 공략해 나가는 타입의 작품이 아닌, 전체적으로는 일직선에 가까운 내용의 시나리오지요. 그걸 생각하면, 시나리오 분담이 어려웠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히사야:

의외로 그 부분은 고생하지 않았네요. 스토리는 확실히 일직선입니다만, '여기 파트는 이 캐릭터가 메인'과 같은 계층 나누기가 돼 있었기에 원활하게 분담하여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카누마 요코 쪽은 메인 히로인인 아마사와 이쿠미 이외에는 관련이 없었기에 곤란한 건 없었네요.

이건 그 후의 「ONE ~빛나는 계절에」(Tactics, 1998년)나 「Kanon」(Key, 1999년)에서도 그랬습니다만, 마에다 씨와 함께 작업하면서 일에 관해 세세한 결정을 하는 일은 그다지 없었어요. 서로 딱 정한 룰 속에서 진행해가며, 각자가 담당한 부분에 전력을 다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메인 스토리에서는 이야기의 실질적인 최종 보스인 '달'을 쓰러뜨린 후에, 이쿠미와 요코의 배틀이 나오지요. 그것도 히사야 씨가 집필한 파트인가요.


히사야:

그렇네요. 처음 시나리오를 맡았기 때문인지 여러가지 하고 싶은 게 생겨, 유이, 요코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초기 플롯을 바꿔 버렸어요. 실은 초기 플롯에서는 요코와 싸우는 장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꼭 요코가 구원받는 것을 넣고 싶었기에, 굉장히 제멋대로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필해 버렸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스스로 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상당히 강하게 있었지요.


――그 만큼 깊은 생각이 담긴 시나리오였다는 거네요. 지금 되돌아보면 「MOON,」에 관여한 것은 중요한 경험이 되었나요.


히사야:

그건 틀림없어요. 실은 Tactics에 들어갔을 때는 시나리오 집필 경험은커녕 PC로 문장을 써본 적도 없었어요. 텍스트 파일을 어떻게 만드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방금 전 얘기한 응모용 숏 시나리오도 워드 프로세서로 쓴 걸 감열지에 출력했을 뿐인, 그것만으로 떨어뜨려도 불평할 수 없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MOON.」을 만들던 나날은, 시나리오 내용을 논하기 전에 게임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드는지를 마에다 씨에게 배우고 있었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당시에는 확실히 히데마루라는 이름의 텍스트 에디터를 쓰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설정 방법부터 배워 간다는 느낌으로.

보통 텍스트를 쓸 때는 '흰 바탕에 검은 폰트' 스타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당시 마에다 씨는 '검은 바탕에 흰 폰트'로 집필하고 있었던 겁니다. 거기에 의문이 들어 어째서인지 물으니, '「MOON.」 같은 어두운 작품을 만들고 있으니, 텍스트 환경도 거기에 맞춰 어두운 분위기가 나오게 하고 있다'는 대답이 되돌아 왔습니다. 저는 거기에 '그렇구나!'하고 감명을 받아 흉내를 냈는데요, 그로부터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검은 배경에 흰 폰트'로 쓰고 있습니다. 당시 마에다 씨의 가르침이 제 안의 습관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ONE ~빛나는 계절로~」 제작


――1997년 11월에 「MOON.」을 발매한 후, 틈을 두지 않고 1998년 5월에 「ONE ~빛나는 계절로~」(이하, 「ONE」)이 발매됩니다. 반년 정도밖에 텀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곧바로 「ONE」의 개발에 착수하는 형태였으리라 생각하는데요, 그 무렵에는 히사야 씨는 정규직이 되어 있었던 건가요.


히사야:

네. 「MOON.」 발매 후에 정사원으로 맞이해 주셨습니다. 감사히도 책상을 사 주셨지요. 「MOON.」 제작 중에는 컴퓨터 받침대 같은 걸 책상 대용으로 썼었기에 제대로 된 책상이 생긴 것은 기뻤습니다. 작업용으로 쓸 수 있는 스페이스가 단번에 3배 정도로 늘었으니까요. (웃음)


――환경에서도 기쁜 변화가 있었군요. (웃음) 「ONE」은 「MOON.」과 같이 마에다 씨의 기획인데요, 히사야 씨는 어떤 식으로 관여하셨나요.


히사야:

처음에 마에다 씨 쪽에서 주인공의 어렴풋한 설정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릴 적에 짊어진 트라우마 탓에 머지않아 사라지는 운명에 처한 남자아이라는. 다만, 그 외에 정해져 있던 건 6명의 히로인을 준비해 저와 마에다 씨가 3명씩 담당한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캐릭터 이미지를 함께 조정하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히사야:

그런 것도 없었네요. 도중에 참가한 「MOON.」 때와 달리, 「ONE」은 기획이 시작할 때부터 참가했기에 서로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캐릭터를 백지에서부터 만드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어요. 「ONE」에서는 사토무라 아카네, 카와나 미사키, 코즈키 레이라는 세 캐릭터를 제가 담당했는데요, 제 캐릭터는 캐릭터의 이름부터 외관 등의 발주까지 제가 확실히 책임을 갖고 임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캐릭터나 시나리오는 어떻게 이미지를 만들어 갔나요.


히사야:

1997년 말 무렵에, ‘신정 직후에 캐릭터안을 추렴하자’ 라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마에다 씨 쪽에서도 「MOON.」이 독자성이 높지만 진입장벽 또한 높은 작품이 돼 버렸기에, 「ONE」은 시나리오의 깊이를 남기면서도 폭넓은 유저층이 플레이해 주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 쪽에서도 캐릭터에 대해 ‘겉보기에는 다른 게임에도 있을 법하지만, 실은 깊은 설정이 있다’는 타입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의식했었어요.


――「ONE」에서는 주인공을 데리고 사라지는 장소로서의 ‘영원의 세계’가 작품을 상징하고 있는데요, 히사야 씨가 담당한 캐릭터 중에서도, 특히 사토무라 아카네는 그 설정과 깊게 연관되어 있네요. 꽤 이른 단계에서부터 그녀가 ‘‘영원의 세계에 가 버린 지인을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설정이 있었던 건가요.


히사야:

그걸 생각해낸 순간은, 실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로 캐릭터를 생각해 오자고 얘기를 한 후, 주변 역까지 돌아와 자택 근처에 있는 터널 안을 걷고 있을 때 문득 생각난 겁니다. 제 경우,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아, 그거야’ 하고 갑자기 번뜩이는 순간이 이따끔 있습니다.


――그 번뜩임도 포함하여 아카네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밖에, 레이와 미사키에 대해서는 어떤 걸 생각하고 계셨나요.


히사야:

레이에 관해서는 일단 자극적인 것을 쓰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PC 게임 자체가 그렇게까지 세상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않았기에 꽤 대담한 걸 만들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까지 더해, 설정만으로도 화제가 될 정도의 캐릭터로 만들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 떠들 것 같은데 전혀 말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레이가 탄생했습니다. 다만, 그 점은 디자인의 발주서에 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쓰게 되면, 그 설정이 캐릭터 디자인에도 반영될지도 모르니까, 그러지 말고 외관과 내면에 갭이 있는 캐릭터를 유저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겁니다. 미사키도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만, 일상에서는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다는 갭을 만들고 싶다는 의식을 어디선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ONE」의 경우 히사야 씨가 담당한 캐릭터와 마에다 씨가 담당한 캐릭터가 인상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인 오리하라 코헤이의 성격도 조금씩 다른 듯한 이미지입니다. 그러한 부분도 따로 조정은 되지 않았던 건가요.


히사야:

그다지 하지 않았네요. 당시에는 서로가 쓰는 것에 간섭하지 않고 각자 책임을 갖고 진행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히로인 6명의 성격이나 연령 배분조차 명확하게 정해 두지는 않았어요. 우연히 마에다 씨와 캐릭터안을 추렴하니, 상급생으로 카와나 미사키가, 동급생으로 나가모리 미즈카와 나나세 루미와 사토무라 아카네가, 하급생으로 코즈키 레이와 시이나 마유가 있는 능숙한 배분이 되어 있었습니다만, 이건 완전한 우연입니다.

이런 제작 방법 탓에 생긴 문제도 있는데, 캐릭터안을 추렴했을 때 저와 마에다 씨의 캐릭터 이름이 겹치는 혹시나했던 사태가 발생한 겁니다. 실은 마에다 씨가 담당한 나나세 루미는 원래 나나세 레이였어요. (웃음) 결과적으로는 마에다 씨가 ‘써도 돼’ 하고 말해 주셔서 코즈키 레이를 그대로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재차 되돌아보면, 「MOON.」도 「ONE」도 이상한 밸런스로 성립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은 좀 더 세세하게 협의하는 게 보통입니다만, 스탭수가 적고 개발 기간도 짧았기에 보통 방식대로는 할 수 없었던 거지요. 아마 「MOON.」이 3~4개월, 「ONE」이 4~5개월이라는 개발 기간으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정말 터무니없는 제작 방법이네요. (웃음)


――확실히 듣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수고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웃음) 철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날도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드는데요, 실제로는 어땠나요.


히사야:

저는 어떻게든 집에는 돌아갔었습니다만, 마에다 씨는 거의 회사에서 살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지요. 체력적인 힘듦을 따지면, 「ONE」보다 「MOON.」을 제작할 때가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MOON.」에서는 PV를 만들자고 이야기가 됐는데, 애초에 노하우가 전혀 없고, 그래픽커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확실히 어쩔 방도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만, 각오를 다지고 저와 마에다 씨 둘이서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동영상 제작 소프트웨어가 있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만, 그걸 위한 예산도 받지 못해 정말로 수작업을 했습니다. 캐릭터를 조금 슬라이드시키는 게 다인 영상도 한 장의 그림을 조금 옆으로 밀어 놓고 캡쳐, 그리고 또 옆으로 밀어 놓고…… 하는 그런 식으로 만화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때는 마에다 씨와 단둘이 회사에 남아 철야한 걸로 기억합니다.


■Tactics에서 Key로


――「ONE」 제작 후, 히사야 씨, 마에다 씨, 음악 담당 오리토 신지 씨, 그래픽커 시노리~ 씨, 미라클☆미키폰 씨까지, 후에 Key를 설립하는 스탭진이 Tactics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경위가 있었나요.


히사야:

그때 분위기를 설명하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만, ‘이 멤버로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계속 만들려면 우리들끼리 다른 브랜드를 마련해야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건 틀리없이 그만 둔 전원이 느끼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만 둔 후에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혹시 ‘비주얼 아츠에서 제안을 받아 그만두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들을 고용해 줄 곳을 찾으면서, 저는 장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어떻게 해야할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마에다 씨와 화장실에서 딱 만나, ‘이 멤버로 퇴사해 새 브랜드를 만들게 되면, 첫 작품은 나에게 기획을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에다 씨가 알겠다고 말해 주셔서 간신히 배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마에다 씨에게 기획 이야기를 한 건 스스로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였나요.


히사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Tactics를 나가게 되면 제가 「ONE」 다음에 진행하고 있었던 기획을 실현할 수 없게 된다는 미련이 있었던 겁니다.


――그 기획 이야기는 완전히 금시초문인데요.


히사야:

바깥에는 전혀 정보를 내보내지 않았고, 애당초 기획서조차 완성하지 않았으니까요. 다만 히노우에 씨가 이미지를 잡기 위해 디자인해 준 캐릭터의 성과가 굉장히 좋아서, 이걸 꼭 실현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Tactics를 나가면 그 기획은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만, 스스로 기획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희 5명은 비주얼 아츠 대표 바바 타카히로 씨에게 제안받아 Key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는데요, 그 첫 작품이 되는 「Kanon」을 만들 때에는 Tactics에서는 만들지 못한 제 주의 기획을 실현시킨다는 생각을 안고 있었습니다.


■Key 시동, 그리고 「Kanon」 제작


――비주얼 아츠에 들어가 Key로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Kanon」의 이미지는 만들어져 있었나요.


히사야:

이미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로 No Plan이었습니다. 단지 Key의 첫 작품을 만드는 것에 있어, 「ONE」을 지지해 준 유저를 위해 한 번 더 같은 씨름판에 서서 그것을 넘는 작품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Kanon」을 만들 때에는 굉장히 「ONE」을 의식했었습니다.


――그건 조금 뜻밖이네요. 학교를 주된 무대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좀 더 테마 같은 부분도 포함해서 말인가요.


히사야:

예를 들면 계절 같은 것도 그렇네요. 「ONE」도 「Kanon」도 겨울을 무대로 한 이야기랍니다. 다만 「ONE」을 만들 때에는 스탭 인원수나 예산 문제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겨울 이야기인데 그래픽커의 도움을 받지 못해 배경으로 눈이 내리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일이 쭉 신경이 쓰였기에, 재차 「ONE」을 넘겠다는 의미도 담아, 한 번 더 눈이 나오는 이야기를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유저 쪽에서는 츠키미야 아유가 메인 히로인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요, 역시 그녀를 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간 건가요.


히사야:

아유가 메인 히로인이라는 위치 설정은 의식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작 방법은 「ONE」을 만들 때와 비슷하게 제가 츠키미야 아유, 미나세 나유키, 미사카 시오리까지 세 캐릭터를, 마에다 씨가 사와타리 마코토와 카와스미 마이라는 두 캐릭터를 담당했습니다만, 전원이 메인 히로인처럼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Kanon」에서는 아유가 일으키는 ‘기적’이 이야기 종반에서의 중요한 요소가 돼 있습니다. 그 테마는 처음부터 준비돼 있었던 건가요.


히사야:

아유의 스토리, 특히 라스트 신은 기획을 생각하는 단계에서 결정했던 것입니다만, 처음에는 그것을 작품 전체 테마로 하는 구상까지는 없었습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단어를 의식한 것은 히노우에 씨의 디자인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이 큽니다. 아유는 날개가 달린 가방을 언제나 메고 있습니다. 다만, 그건 제고 발주한 게 아닌 히노우에 씨가 디자인해 준 겁니다. 하지만 그 날개를 보고, 제 안에서 아유 이야기의 이미지가 보다 구체적으로 굳어진 건 있습니다.



――「Kanon」은 지금까지도 ‘나키게(울리는 게임)’의 대표작으로 많이 일컬어질 정도로, 당시 PC게임을 플레이했던 사람이나 그 후 토에이 애니메이션과 교토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에게는 많은 임팩트를 준 것 같습니다. 그런 ‘울리는’ 부분은 어느 정도 의식하고 계셨나요.


히사야:

방금 전, 「Kanon」은 「ONE」이 있었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얘기를 했는데요, 사실은 「ONE」도 「MOON」이 있었기 때문에 탄생한 작품이랍니다. 「MOON.」은 원래 다른 제목으로 기획이 진행됐는데 그게 「눈물.」이라고 하는 타이틀이었던 겁니다. 어떤 의미로는 참신한 타이틀이네요. (웃음) 그 당시에 마에다 씨가 ‘나키게’라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은 깊이 의식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에게 있어 ‘울린다’라고 하는 것은 「MOON.」에서부터 시작되어 그것이 「ONE」이나 「Kanon」으로도 이어졌다고 하는 게 제 인식입니다. 그래서 「Kanon」도 특별히 ‘나키게’라는 것을 의식했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MOON.」에서 「Kanon」까지 연속성이 있다는 건 굉장히 흥미롭네요. 제작 과정에서의 이야기도 듣고 싶은데요,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히사야:

「Kanon」은 「ONE」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포함시킨다는 게 하나의 컨셉이었기에, 효과음을 제대로 넣고 싶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오리토 씨와 의논했더니, ‘프리소스를 준비해 줄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스스로 녹음하는 게 빠르다’라며 마이크를 건네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자택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나 커튼을 열고 다는 소리를 녹음했습니다. 그런고로 「Kanon」에 사용된 미나세 댁의 효과음은 제 친가 소리 그 자체예요. (웃음)

그밖에도 주제가나 엔딩 테마, 그리고 제대로 된 PV를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기뻤네요. 그런 부분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만,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굉장히 고생했지만요.


――어떤 점에서 노고가 있었나요.


히사야:

당시 아직 「Kanon」이라는 타이틀을 낼 수 없는 시점에서 새 브랜드를 시작했다는 광고를 비주얼 아츠에서 많은 잡지에 여기저기 실은 겁니다. 그게 솔직히 압박이 됐고, 무엇보다 「MOON.」에 관여하고 나서 「Kanon」을 시동할 때까지 과정은 불과 1년여 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렇게 너무 어지럽게 환경이 바뀌는 가운데 한계까지 몰리게 된 거네요.

「Kanon」은 연기 기간까지 포함해 10개월 정도 개발 기반이 있었습니다만, 그 사이에 저는 쭉 정신적으로 팽팽한 상태였습니다. 마스터 업 직전에는 통근 시간도 아까워서 자택에 틀어박혀 작업했었고, 어쨌든 시나리오에 관해서는 고생했던 추억이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캐릭터 얘기를 하면, 초기부터 이미지가 굳어져 있던 시오리 시나리오가 우선 완성되고, 이어서 아유도 다 썼습니다만, 나유키 루트 집필에 굉장히 고전했습니다. 그 때에는 비주얼 아츠에서 상황 확인 전화가 걸려오는 것도 무서워서 자택 전화선을 뽑고 오로지 작업에만 집중했었어요.


――마에다 씨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조금 걸음을 딛고 질문하고 싶은데요, 당시 「ONE」의 히사야 씨가 담당한 캐릭터의 인기가 높았던 것도 있어서, 마에다 씨는 꽤나 히사야 씨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히사야 씨 쪽에서는 마에다 씨를 어떤 존재로서 파악하고 있는지, 그 점을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히사야:

저에게 있어 마에다 씨는, 프로 시나리오 라이터라고 하는 허들을 느닷없이 굉장히 높은 위치로 설정하게 한 사람입니다. 마에다 씨는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만, 「MOON.」을 제작할 때 마에다 씨가 쓰고 있던 플롯과 시나리오를 받고 감상을 물었을 때, 저는 그저 ‘재미있었다’고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마에다 씨는 좀 더 세세한 부분의 감상이나 의견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에서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의 마에다 씨는 인생에서 처음 만난 프로 시나리오 라이터이기에, 그 사람이 마침 지금 만드는 중인 있는 그대로의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전혀 지식이 없는 저는 그 퀄리티의 높이를 몰랐던 거예요.

결국, 착실한 감상을 전하는 대신 제가 생각한 건 ‘프로로 나아간다면 이 시나리오를 반드시 넘어야만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Tactics를 한 번 떨어졌었고, 다른 게임 회사로부터도 불합격 통지밖에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프로 시나리오 라이터입니다’하고 인정 받은 경험이 없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처음 설정한 그 허들이 얼마나 높았던 것인지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만약, 처음 만난 프로 시나리오 라이터가 마에다 씨가 아닌 다른 분이었다면, 아마 프로라는 것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달랐을 것이고, 그때로부터 20년 이상 시나리오 라이터를 계속 해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그만한 임팩트를 준 사람이지요.


――마에다 씨의 시나리오를 넘는다는 건 ‘언젠가’ 넘는다는 의미가 아닌, ‘지금’ 넘어야만 한다고 생각해 오신 건가요.


히사야:

그렇습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당장 따라잡아 추월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해고당해 버릴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라 마에다 씨도 몰랐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당시에는 정말로 필사적이었습니다. 발돋움을 하며 무리를 하는 상황이 쭉 계속되었기에, 「Kanon」을 만들던 나날에는 특히 마에다 씨를 굉장히 의식했었어요.


■비주얼 아츠 퇴사, 그리고 현재


――히사야 씨와 마에다 씨가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은 오랜 유저로서 감개 깊은 이야기네요. 다만, 「Kanon」 제작 후에 히사야 씨는 비주얼 아츠를 퇴사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히사야:

계속 무리를 한 결과, 「Kanon」을 완성했더니 팽팽해져 있던 실이 전부 단번에 끊어져 버렸습니다. 당시 Key에서는 마에다 씨가 곧바로 「AIR」 기획을 진행하기 시작해 새로운 시나리오 라이터 분도 여럿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면 제가 그만둬도 폐는 끼치지 않으리라 하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향후에 또 시나리오를 쓰게 돼도, 어쨌든 한 번은 일에서 거리를 두지 않으면 더 이상 무리라는 감각이 분명히 있었던 겁니다.

퇴사한 후에도 바바 사장님의 호의로 비주얼 아츠 산하에서 새로운 브랜드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위한 준비도 했습니다만, 하고 싶은 것을 해도 좋다고까지 말씀해 주셨음에도 「Kanon」 제작 후에 제 안에서 빠져 나간 기운은 돌아오지 않아 전혀 쓰지 못한 채로 그 이야기는 없어졌습니다.


――그건 집필을 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작품 이미지도 마음에 그릴 수 없는 상태였던 건가요.


히사야:

그렇네요. 만들고 싶은 작품 이미지도 굉장히 두리뭉실해져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Kanon」은 스스로 항상 긴장감 속에 몸을 두어 팽팽해진 상태였기에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긴장감을 없애 버린 후에, 생각하는 대로 만들 수 없게 된 시기가 오래 지속된 것 같습니다.


――빠져나간 기운이 돌아와서 다시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됐다고 히사야 씨가 인식하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히사야:

어쩌면 그건 최근 몇 년의 얘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비주얼 아츠나 Tactics에서 일을 하던 때에는 어쨌든 ‘게임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웠다는 감각조차 생각해내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sola」나 「천체의 메소드」라는 애니메이션의 일을 받거나 「사쿠라카구라」나 「그녀들이 칠하는 세계」 등의 소설을 쓰는 중에, 역시 저는 시나리오나 문장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재차 자각한 것 같습니다.

특히, 2018년 발매된 PlayStation 4 소프트 「CRYSTAR –크라이스타-」이 시나리오를 맡았던 것은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게임을 쓴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다 썼을 때 ‘이 감각을 기억하고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MOON.」을 다 썼을 때를 제외하고는 비할 수 없는 충실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Kanon」으로부터 20년이 지나, 그 중 10년 정도 제 경우에는 빠져나간 듯했던 것이었지만, 쓰는 것의 즐거움을 생각해내고 나서는 일에 대한 사고방식도 달라졌어요.


――간단하게 말로 풀어낼 수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르는데요, 옛날과 지금, 일을 마주보는 방법에서 크게 변화한 건 어떤 점인가요.


히사야:

변화라는 건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작품을 마주보는 방법도 처음 마에다 씨와 만난 순간부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다만, 제 안에서 깨닫지 못했기도 했고 잊어 버리기도 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낸다는 감각과 가깝지 않을까요. 그래서 지금은 맡는 일 모두가 즐겁네요. 앞으로도 애니메이션의 각본을 맡아가면서 소설이나 게임의 시나리오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하신 것 외에 관심이 있는 장르가 있나요. 쓰는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향유하는 입장에서의 흥미도 포함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히사야:

요즘 일과 휴식의 경계가 애매해서 일하고 있든지 멍하니 있든지 하는 상태예요. 다만 이건 새로운 정보나 컨텐츠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되기에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안정되면 새로운 것에 손을 대어 보고 싶습니다. 우선은 뭔가 소샤게를 접해 보고 싶네요. 저는 스마트폰으로 바꾼지 아직 1년 반 정도라, 일과 관련된 것 외에는 사적으로 가지고 놀은 적이 그다지 없어요. 그 외에는 중간까지 보다 만 해외 드라마나 영화를 끝까지 보고 싶어요. 지금에서야 하는 얘기지만 「24」는 시즌 5에서 멈춘 상태랍니다.


――해외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에는 뭔가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히사야:

음, 원래 시나리오 라이터를 하고 있으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순수하게 볼 수 없게 됩니다. 다른 누군가가 쓴 소설은 일의 관점에서 읽게 되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어도 ‘이 장면의 각본은 이렇게 돼 있겠지’ 하고 시나리오를 의식해 버립니다. 만화나 게임도 마찬가지로 ‘만약 내가 애니메이션 시리즈 구성을 맡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고 무의식 중에 생각해 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일과 전혀 접점이 없기 때문에 더 해외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히사야 나오키가 마에다 준에게


――오늘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으며 프로 시나리오 라이터로서의 히사야 씨의 정열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히사야 씨에게 있어 마에다 준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부분도 포함해서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히사야:

한 가지, 지금도 미련에 남은 일이 있습니다. 20년 정도 전, 「Kanon」 제작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에 마에다 씨와 전화로 장시간 이야기했던 적이 있습니다만, 그때 ‘이대로 둘이서 일을 해 나갈 거라면, 존댓말 그만 쓰고 반말로 얘기하는 게 어때’라고 제안을 받았습니다. 마에다 씨 쪽이 연상이니까 그런 걱정도 해 주셨던 것이겠지만, 결국 저는 끝까지 존댓말로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때, 마에다 씨가 말해 준 것처럼 반말로 얘기하게 됐다면, 전혀 다른 관계를 쌓아 올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일이 지금도 굉장히 마음에 걸립니다.

원래 서로, 남과 거리를 가까이하는 것에 능숙한 타입은 아니었어요. 마에다 씨는 일을 하며 금욕적으로 자신의 껍질 속에서 두문불출하는 타입. 저는 금욕적이지 않지만, 역시 남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타입. 그런 두 사람이 함께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신기한 관계였던 것이라고 느낍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마에다 씨와의 관계가 단지 과거의 좋은 추억이 아닌, 현재의 히사야 씨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으리라 하는 인상을 받네요.


히사야:

그렇네요. 마에다 씨와 만나 함께 「MOON.」을 만들었기에 그 후의 「ONE」이나 「Kanon」이 있었던 것이고, 그 덕분에 지금도 문장을 쓰는 일에 종사하고 있으니까요. 마에다 씨와 일을 한 시간은 모두 2년 정도밖에 없고,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접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2년이 그 이후의 20년을 만들어온 것입니다. 저는 원래 친구 영향으로 시나리오 라이터를 목표로 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MOON.」을 만듦으로써 처음으로 제 의지로 프로 시나리오 라이터가 되겠다는 결의를 굳힐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나리오 라이터로서의 제 원점은 「MOON.」과 마에다 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사적인 교제는 그다지 없었나요.


히사야:

마에다 씨와는 거의 없었네요. 비주얼 아츠에서 일하던 무렵에는 오리토 씨와 자주 놀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점심을 함께 먹거나 니혼바시의 악기가게에 가서 오리토 씨가 앰프나 악기를 물색하는 걸 보고 있었어요.

다만, 단둘은 아니지만 Tactics 시절에 마에다 씨도 포함한 스탭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호러영화 「링」과 「나선」을 보고 마에다 씨와 함께 Tactics 공식 게시판에 감상을 적곤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정말 행복한 거리감이었네요. 당시에는 매일이 필사적이어서 눈치챌 수 없었지만요. 그게 지금도 미련으로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마에다 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은 뭔가 있나요.


히사야:

질문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 죄송합니다만…… LINE ID를 묻고 싶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이니까 말할 수 없었던 진심을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때 다 못한 전화를 지금이라면 이어서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당시 일에 관해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그건 무조건 마에다 씨에게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히사야 씨와 마에다 씨가 함께한 짧으면서도 진했던 시간의 틈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