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그린 AIR 모티브의 배경 그림)
신카이의 원점이 세카이계와 미소녀게임에 있다는 건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이다.
2004년도 코미케에서 발간된 아즈마 히로키 편집의 미소녀게임 평론의 표지를 AIR 배경으로 직접 그려준 경험도 있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과 세카이계, 마에다준의 최근 애니메이션 동향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보고 싶지만 너무 힘들어서 간략하게만 적어보려고 한다.
직접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비슷한 종류의 분석들이 넘쳐날 만큼 일본 웹에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우선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두 번이나 연속으로 신카이와 마에다의 작품에서 생각이 겹치는 소재들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너의이름은과 샤를로트>
1. 혜성이 기반 소재이다.
2. 타인과 몸을 뒤바꿀수 있는 능력이 등장한다.
3. 작품의 중반,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4. 소중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타임리프한다
5. 세계선을 변경하고 살려내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이후의 대가로 추억이 담긴 기억을 소실한다.
6. 소실된 기억을 가지고 도착한 곳은 불완전한 세계. 하지만 그와 그녀는 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만남을 가진다.
<날씨의아이와 신이된 날>
1.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세카이계로의 회귀 기획에서 시작된 이야기 라인이다.
2. 히로인의 이름이 가장 흔하고 평범한 이름인 히나이다.
3. 평범한 소녀인 히나는, 세계 대신 자신이 희생되어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을 짊어지게 된다.
4. 그와 그녀가 함께 보낸 소중한 시간은, 어른들과 세계에 의해 가로막힌다.
5. 역경을 딛고 그녀를 구한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
세카이계라는 애매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뼈대가 되는 플롯이 정형화된 측면이 있으니,
같은 장르의 영역에서 창작 활동을 계속해오던 두 명의 작품이 비슷한 플롯을 보이는 건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확히 두 명이 같은 시기, 별개의 곳에서 각본을 작성하는 와중에 싱크로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은
이렇게 나열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이런게 시대감각이라고 부를 만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일한 사회와 문화 안에 놓여져 있는 창작자들이 같은 시대의 분위기감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이렇게 지향하고자 하는 도착점이 비슷한 곳에 위치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연속으로 2000만과 1000만의 기록적인 흥행을 보인 신카이의 두 애니메이션과
과거의 성과에 비해 실패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마에다의 두 작품은 무슨 차이를 가지고 있는 걸까?
우선 제작 환경의 차이로 시선을 향한다면 자본적인 부분과 극장영화/TVA라는 큰 차이가 있으며,
마에다는 각본 밖에 쓰지 못하는 반면 신카이는 직접 콘티와 연출을 담당하면서 모든 걸 컨트롤 할 수 있었고,
신카이 스튜디오는 지브리에서 넘어온 작화인력에 어마어마한 화력의 배경미술가들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외부적인 환경 이야기들에 주목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냥 당연히 차이나는 거니까 그렇다고 치고,
작품 내적인 요소 안에서만 무엇이 차이가 나는 것인지 찾아볼 수 있다면 정당한 비교가 될 수 있을리라 생각한다.
위에 정리한 너의이름은과 샤를로트의 각본 공통점을 유심히 살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너의이름은에서는 뼈대가 되는 이 각본의 흐름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감정을 이끌어 내는 것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반면
샤를로트는 하나로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감정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이 단절되어 있는 형국이었다.
이게 바로 너의이름은과의 대비에서 드러나는, 모두가 이야기하던 샤를로트 급전개의 실체이다.
각 단계를 밟아 나가면서 감정이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이 잘 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결부에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어설프게 마무리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던 것이다.
날씨의아이와 신이된날의 각본 구성에 대해서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고,
사실 나는 각본보다는 연출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원인을 생각해보고 있다.
어떤 20년전 세카이계에서 더 나아가는 진척점이 신카이의 작품에는 있었고, 마에다에게는 없었다.
세카이계의 부활은 이야기의 플롯이 새롭게 변모하여서 발전한게 아니다. 발전한건 연출이지 이야기 쪽이 아니었지.
플롯은 그냥 익숙하고 뻔한 그대로를 가져오되, 미소녀게임이라는 매체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감정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듯한 모양새의 강렬한 연출을 가미한 것이 신카이의 두 작품에는 포함되고 있다.
도쿄 전체를 집착이 느껴질 만큼 디테일하게 묘사하여 세계를 표현하는 것에 배경을 충분히 활용하고,
혜성이라는 풍경 이미지를 전면적으로 내세워서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것에 이어지도록 만들고,
가사가 있는 노래 자체를 아예 작품 세계 전체에 울리도록 만들어 배경음악 정도가 아닌 주역으로 격상시키는 것,
감정표현에 치중된 일련의 연출들이 가감없이 작품 전체에 담겨져 있기 때문에
비로소 기진맥진해진 오래된 이야기의 정형에서 인물들의 감정이 빛을 띄고 새롭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마에다가 지금 시도하는 작품의 방향은 어딘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헤매이고 있는 미아와 같은 인상이다.
뛰어난 영상연출 없이는, 적어도 마에다가 직접 대단한 영상연출을 구상하지 않는 한,
원점회귀 같은 달콤한 생각으로 그 시절의 미소녀게임에서 하던 것을 20년이 지난 지금 재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리가 있다.
순수하게 이야기와 음악만으로 감동을 줄 생각이라면 애니는 미소녀게임에 비해 너무 불리하다.
마에다가 바라는 체험감 같은건 TVA로는 살아날 가망조차 보이지 않아.
그럼에도 그걸 담아낼 수 있다고 안일하게 판단한 결과가 이번 신이된날이다.
미소녀게임의 원동력이었던 '긴 시간을 할애한 체험감'이 애니에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 하고 있다.
미소녀게임에서 표현하였던 일상감이 TVA에서 어떻게 이식되어야 할지 그 뚜렷한 방법은 결여된 상태이다.
하루의 일과를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텍스트로 길게.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등굣길에 이어지는 정경과,
교실에 도착하고 나서 보내는 학교에서의 생활과,
다시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해가 저물면서 집으로 향하는 귀갓길의 마을 풍경을 전부 담아낼 수 없다면
애니메이션에서의 미소녀게임 재현은 그것과는 다른 형태를 택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큰 오판을 내린 것이 이번 신이된날의 앞쪽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또한 영상은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지만, 어떤 종류의 감정들은 불러오는 일이 텍스트에 비해서도 불리한 측면이 있다.
이걸 신카이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과도한 나레이션의 도입으로 극복하고자 했고,
너의이름은에서는 그런 시도들의 연속으로 훨씬 세련된 방식에 이르러 핵심이 되는 연출로 성립될 수 있었다.
만약 신이된날이 마작이나 라멘 같은거 집어치우고 좀더 평범하게 일상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보다는 사정이 낫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동적인 작품이 완성될거라는 기대는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으로 감동을 주고 싶으면 원점회귀가 아니라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더 복잡하고 짜임새있게, 시계열트릭이든 공간트릭이든 인물트릭이든
겹겹히 쌓아가는 은유적인 장치든, 노래와 영상에 모든 것을 할애하는 연출이든
새로운 형식의 구성이 불가결 하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나는 옛날로 돌아간 마에다가 보고 싶은게 아니라, 새로운 길로 도약하는 마에다가 보고 싶다.
<요약>
동일한 원점을 가지고 있는 신카이와 마에다는 2010년대 후반 두 작품을 연이어 완성시키는데, 별개의 장소에서 서로에게 간섭받지 않으며 만들어낸 그 두 작품이 우연하게도 특정한 시대의 감각을 반영한 동형적인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 원형은 제로년대의 미소녀게임, 세카이계라고 일컫는 플롯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신카이는 원점회귀에 성공하였으나 마에다는 실패하였다. 서로의 두 작품을 비교해본다면 어떤 부분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해 질 것이고 그것이 마에다가 부진한 작품을 만들게 된 핵심적인 요소일 것이다. 세부적으로 분석한다면 마에다의 각본이 더 느슨한 측면이 있다거나 여러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겠지만, 너무 길어지기에 이 부분은 생략하였다. 그러나 결국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두 사람의 최근 작품들은 각본에서 동형적인 구조를 띄고 있다. 따라서 신카이의 작품에는 있고, 마에다의 작품에 없는 것은 뛰어난 영상연출이다. 결론, 마에다가 원점회귀를 꿈꾸면서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신카이의 작품처럼 차별화된 영상연출을 구현해내든가, 그게 아니라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소재와 플롯을 고안해내어 오래된 형식으로부터 탈출해야만 한다.
두 사람의 작품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선호도를 마지막으로 밝히자면,
클라나드(게임) = 너의이름은 > AIR(게임) > 카논(게임) > 엔젤비트 > 샤를로트 > 날씨의아이 > 초속5cm = 언어의정원 > 신이된날 > 별을 쫓는 아이 = 구름의 저편
마지막 요약에 리토바스는 없어서 아쉽다
어디에 위치하면 좋을지 판단이 잘 안서서 포기해버렸다..
ㅗㅜㅑ 잘 읽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생각보다 공통점이 있네 신카이 마코토나 마에다 준 둘 다 기존 세카이계를 이끈 거장이지만, 신카이 마코토가 화려한 연출로 젊은 세대까지 사로잡은 반면 현재의 마에다 준은 여러모로 처참하지...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에다준의 작품, 특히 클라나드에 깊게 감화되면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거의 십몇년이 지났는데, 그 당시에 클라나드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과 바꿀 수 있는 감정 같은 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 같다. 너의이름은의 경우에는 사실 클라나드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감동을 느꼈지만, 클라나드가 내 기억 속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라면 너의이름은은 앞으로 도약해나가는 도중의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했지. 애니메이션을 이 정도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앞으로는 또 얼마나 대단한게 가능한걸까 하는. 나는 엔젤비트와 샤를로트도 정말 좋아하고, 마에다준이 비록 지금 저평가 받고는 있지만 이런 형태로 끝나리라고는 생각 안한다. 아직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쌉공감한다
내 선호도는 에어, 클라나드 > 초속 5cm > 리토바스, 플라네타리안 > 너의 이름은, 썸포 > 날씨의 아이 정도?
내 최애 게임을 만든 마에다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신카이는 요즘 들어 예전과는 다른 작품을 내고 있지만 신카이 작품 중 내 최애는 여전히 초속 5cm임
초속5cm는 그 첫번째 이야기에서 두 명 어린시절에 함께 교실에서 뛰쳐나가면서 그려지는 빛의 묘사가 정말 인상깊었어. 신카이의 작품들 중에서 특히 초속5cm는 그런 어린 시절에 보고 있던 과장된 빛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세계의 찬란함에 대한 묘사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지. 다시 소년으로 돌아와서, 멀리 있는 그녀에게 눈 내리는 날 밤 향하고 있는 쓸쓸한 모습들도, 어른이 되고 도시와 정경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질수록 더욱 심화되는 온세계에 자신 혼자만이 남겨진 듯한 감각들도 전부 작품속에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지. 특정한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달릴 필요도 없고, 도시의 거리를 비추는 것만으로도 살아오면서 그 풍경 안에 새겨둔 감정들이 껍질이 벗겨지듯 서서히 회고되는거야. 정말 좋은 작품이야
마지막 선호는 라나부님 의견인가요? 평론가님 의견인가요?
안녕하세요. 전부 저의 의견입니다! 사실 선호라고 이름을 붙이긴 하였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비교를 하고 있는 이상 일종의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렇다면 그 평가 기준에 대해서도 부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평가 기준을 명확히 보이려는 시도는 언제나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영역을 벗어나는 것에서 실패하는 법이고, 공적인 언어로의 기술은 성립될 수 없는 일에 가까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언어로, 어째서 제가 그것을 선호하는지를 말하려고 한다는 게 올바를 것 같습니다.
저는 작품이란걸 체험하고 감상하면서,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그 작품이 얼마나 (음악, 배경, 이야기)로 구성되어지는 작중 세계의 '분위기 내지 느낌'을 잘 형성하여서, 특히 나 자신이 오로지 그러한 현실에만 위치해 있고 싶다는 기분을 가지도록 만드는 구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실현이 우선이 된 다음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밖의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일련의 고통과 슬픔을 재현할 때에 바로 그 겉면을 감싸고 있는 임의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작중 세계에 남게 되는 건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불러오는 결정과 같은 것들이고, 픽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의 본질은 그 이야기가 가진 형식이나 내용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방식과 내용에 의해 모의적으로 실현되는 감정의 파편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이야기에 의해서 파편화/결정화된 감정은 그 자체로 음악이나 배경과 동등하게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이루면서, 그 요소들의 모임은 어떤 특정한 감정상태로 환원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잠재적인 상황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그 요소들의 모임에 기대하고 있는 것은, 실제 현실에서는 일어날리가 없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현실이 성립되기를 바라게 만들고, 실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는 최대한의 희망과 환희에 해당하는 기분을, 실제로는 아무런 도리가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역경을 뚫고 지나가, 적어도 감정의 상태만큼은 그곳에 도달하고야 마는 결론에 이르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의 성취는 이야기의 내용이나, 각본의 완성도나, 결말에 의해서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건 감정으로의 환원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개별적인 요소들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심지어 어떤 도착점이 반드시 저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의 물음이었던 평가 기준으로 돌아가보면, 제가 가진 선호는 나 자신이 어떤 세계를 더 좋아하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어떤 세계를 더 좋아하고, 어떤 감정상태를 더욱 바라고 있는지가 거의 유일한 의미있는 작품의 평가 방식이라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쉬운 세세한 각본의 구성이나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 자체에서도 어떠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건 어쩌면 조금 부연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떤 감정이 생겨나거나 생겨나지 않거나 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건 드러내기 쉬운 종류의 표류하고 있는 '감정상태로의 잠재적인 환원 요인'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과 작품 경험을 반영한 결과가 위의 선호도 입니다.
한때 시카이 마코토가 미노리의 에로게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담당하기도 했었죠,.,,,
후렴구 들어올 때 노래와 맞아 떨어지는 장면 연출이 그 당시의 작업인데도 정말 좋았어요. 원경으로 풍경과 하늘 전체를 다 비추면서 인물을 중심으로 영상이 돌아가는 것도 이미 그 무렵에 어느 정도 신카이만의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걸 알 수 있어서 지금봐도 느낌이 좋네요. 그 때가 거의 2004년 클라나드 나오고 나서 몇 년 지나지 않은 무렵이었던거 같은데, 역시 그 무렵 미소녀게임들이 그립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유튜브는 혹시 계속 하시나요? 옛날 게임들 이제 찾는 것도 어렵고 직접 실행하는건 더 스트레스인데, 프로그램으로 직접 하는 것 대신 영상으로 다 캡쳐해서 유튜브나 다른 아카이브에 모아둘 수 있다면 정말 좋을거 같네요
앞으로도 이런 글 많이 써 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신이된날 다 완결나면 전체 구성에 관해서도 한 번 더 이야기를 정리해보고 싶은데 과연 남은 한 시간동안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걱정이 큽니다.. 마에다 준의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될까요? 신카이 마코토의 차기작도 이제 곧인데 앞선 두 번의 일처럼 두 명의 작품이 다시 한 번 겹치게 되는 일이 일어날지가 흥미롭습니다. 그렇게 비교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슬픈 일이겠지만요... 사실 너의이름은 볼 때만 해도 어렴풋이 샤를로트가 떠올랐는데 자세히 정리해보니 전체 뼈대가 이렇게나 비슷하다는걸 확인하고 꽤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히나와 히나가 겹치는걸 보고,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두 작가의 생각이 교차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신기한 감각을 받았습니다.
이제서야 봤는데 이런글 많이 써줘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