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된날을 완전하게 비판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물이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어째서 그러한 시도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창작의 외부적인 관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 작품의 테마는 바로 '세카이계 죽이기'이다.

작품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모든 이야기의 뼈대가 오로지 세카이계라는 장르의 뒤집기에 맞추어져 있다.

이 글에서는 어째서 그러한 시도가 실패하였고 그 결과로

마지막 엔딩부에서 작가가 원래 하고자 했던,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고난과 역경을 헤쳐가는 현실의 이야기'

라는 가장 핵심적인 감정요소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신죽이기는 세카이계 플롯의 죽이기이다.

홍보 캐치프레이즈부터 시작해서 오프닝과 엔딩 영상의 의도적인 이미지에

무언가 의미를 품은 듯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신이 되는 요타나 게임이나 금붕어나 의미심장하게 배치된 장치들에,

무언가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 세계 멸망 카운트다운에 거짓말 달력과

차근차근 히나를 되찾아 내기 위해 동료를 쌓아나가는 플롯까지

이 모든 건 의도적으로 '사실은 세카이계가 아니라는 반전'을 노리기 위한 장치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까지 힘을 쓰면서 이런 장치들을 만들었단 말인가?

작가와 제작진은 놀라운 반전으로 관객에게 다가갈 서스펜스를 꿈꾸고 있던 것인가?

일부 그러한 소망이 담겨져 있는 욕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만,

아마도 분명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작품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감추어진 진의는,

세카이계를 부정함으로써 강조되는 비극적인 현실과 희망일 것이다.

요타는 그 해 여름 함께 보낸 진정한 히나를 되찾지 못하였다.

히나를 빼앗아가는 세계로부터, 요타는 완전히 무력하다.

요타는 세계도 그녀도, 어떤 기적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요타가 할 수 있는 건 그 불완전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타에게는 특별한 힘도 재능도 없었지만 오로지 그녀와 함께 보낸 추억만은 있었기에

절대로 회복 불가능한 그녀의 마음 속에서 그 해 여름의 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윽고 히나는 그의 절실함에 응답하게 되고, 두 명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떤 것이 되돌려 졌고, 무엇이 요타와 히나에게 주어졌는가?

작가는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플롯에 의해 기적이 선택되고 주어지고 빼앗아지는 것은 그만하자.

내가 이번에 하려고 했던 건, 그 플롯을 벗어나 새로운 현실을 스스로 붙잡아 내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관객을 전부 기만하는 듯한 장치들이 무엇을 위함이었는지가 조금이나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잠깐이라도 이것이 성공했다고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이는 철저히 실패하였다.


1. 플롯을 벗어나 쟁취하는 작중 인물의 진정한 이야기 같은 건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래서 세카이계를 포기하면서 얻어낸 것은 무엇인가?

세카이계의 수동적인 기적 선택 도식을 벗어나 주인공이 얻게된 신이된날에서의 다른 형태의 기적은,

정말로 원래 의도하였던 대로 틀을 벗어나 어떤 새로운 이야기와 감정을 관객들에게 남길 수 있었나?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모든 장치를 무의미한 것으로 바꾸고 세카이계를 탈출하면서 손에 얻은 건,

식상한 기적을 벗어난 무언가가 아니라 아무런 설명이 되지 않는 또다른 수동적인 기적이었다.

하나의 문제점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하고자 했지만, 그랬더니 또다른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이것이 정확히 신이된날의 이야기 구조가 껴안고 있는 모순이다.


절대 나을 수 없는 병을 가진 히나를 '여름히나'로 있게 한 것은 할아버지가 남은 일생을 노력하여 바쳐낸 사랑의 산물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만들어 냈다는 양자컴퓨터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원래 의도하였던 대로라면, 히나를 살려낸 것이 할아버지의 사랑에 다름 아니라는 감각을 관객이 가져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재 물리학자이자 정보공학자이자 생명공학자이자 모든 기술에 정통한 희대의 만능 과학자가

세계의 상식을 벗어나고 시대를 초월한 특별한 기계 장치를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냈다는 무리 있는 설정이,

히나를 움직이게 하는 게 할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다 지워버리면서

히나를 있게 하는 사랑을 수동적인 기적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는 정확히 작가가 탈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9화에서 스즈키에 대한 느슨한 드라마와 함께 양자컴퓨터는 마침내 제거되었고, 

히나는 원래 운명대로 절대 나을 수 없는 병을 가진 지능이 소실된 히나로 변모하였다.

요타는 무능한 주인공인 그대로 스즈키의 인도에 의해 히나가 있는 곳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요타는 히나를 반드시 되돌려 내고자 하는 일념에 휩싸인다.

그런데 절대 나을 수 없는 병이라 공언되고 완전히 소실된 것처럼 보이는 인격의 히나를

요타는 어떻게 불완전하게나마 여름히나인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었는가?


그 과정은 바로 히나와 보냈던 그 해 여름의 추억을 요타가 포기하지 않고 히나에게 전해지도록 노력하면서,

그 마음이 그림카드나 게임기와 같은 형태로 드러나 히나에게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그 해 여름의 기억을 포착하여

여름 히나의 인격이 끄집어내게 되는 것이었다.


가장 감동적이었어야 할 이 연속되는 장면이 감동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경우와 비슷한 구조로 이 감동적이었어야 하는 개념을,

무리하게 구축해둔 불치병의 설정이나 양자컴퓨터의 설정 같은 것들이 모조리 지워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나와 요타의 관계와 추억에 의해 기억과 인격이 감동적으로 되살아 나는게 아니라,

억지스럽게 기적과 다름 없는 형태로 주인공에게 저절로 주어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이는 기존 세카이계의 수동적이고 내향적인 기적을 벗어나기는 커녕

그것보더 더 심화된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적을 만들어내고 마는 것이다.

구체적인 과정에서 요타의 언행이나 게임 소재 자체에 대한 것, 시바와의 갈등 구조의 빈약함 또한 물론 문제이나 설명은 생략한다.


2. '작중작 세카이계 KARMA'와 '신이된날의 요타와 히나'가 제대로 대비되지 않았다.


작중에서 제작되는 영화 KARMA는 세카이계 비틀기 플롯을 감동적으로 성립시키기 위해

마련해둔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장치이다. 

세카이계인 KARMA와 세카이계가 아닌 신이된날을 대비시키면서

영화 안에서의 두 명과 실제 두 명이 상반되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 그러하다.


KARMA의 요타는 세계 대신 히나를 고를 선택권이 주어지고,

결국 희생되는 히나를 구한다는 기적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카이계가 아닌 현실에서의 요타는,

부조리하게 희생되는 히나를 구하는 선택 같은 건 애초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요타는 완전히 무능한 소년이며 히나를 구해낼 기적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히나를 무사히 구해내거나 돌려내거나 하는 일은 영화 안에서만 가능하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인 대비가 제대로 드러났는가?

이곳에서도 문제는 결국 기적이 아닌 척 하는 기적이 숨어있다는 점이다.

히나에게 되돌려줄 양자컴퓨터는 완전히 이야기의 권외이고,

히나의 병은 쉽게 치유되지 않을 불치병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여름날의 추억이라는 명목 아래에 성립되고 있는 어떤 기적적인 힘, 

유대감만으로 히나의 상태는 그럭저럭 호전되고 요타의 가족으로 모두와 함께 지내는게 허락되며

요타와 히나는 이치를 초월한 추억이나 사랑과 같은 힘에 의해 미래를 걸어간다.

히나를 완전히 살려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히나를 지능을 소실한 가련한 처지로 바꾸어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만은 수수께끼의 힘에 의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KARMA와의 대비는 무엇을 위한 것이 되어버리는가?

이러한 대체된 기적에 감동을 느낄 수 있는가?

결국 영화 내부와 밖의 관계성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세카이계의 기적적인 희망을 포기했으면서, 결국에는 그것보다 소극적인 다른 기적에 의존한다.

결국 주인공이 선택하는 기적을 그려낼거라면, 세카이계를 포기한 의미는 어디에 있는 걸까?


3. 그 해의 여름히나와 요타가 마지막으로 작별하는 장면이 급작스럽고 짧았다. 


두 명은 한 번만이라도 다시 재회했어야 한다.

충격적인 해킹배틀과 급작스러운 세계관 부수기 설명에 요타의 사랑고백까지, 

모든 게 불충분했던 9화의 그 마지막이 사실상 요타와 여름히나가 만난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이후 60분 동안 이루어진 이야기에서 관객에게 인식된 히나는 사실상 완전히 소멸하였고 다시 나오지 않는다.

히나가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은 제일 마지막 비디오메시지였는데, 

그 비디오메시지는 히나에게서 요타로 전해지는 일방적인 메시지에 불과하였다.

이로 인해 관객은 열린결말 떄문이 아니라 히나와 요타가 올바르게 헤어지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이야기가 아무것도 끝맺음 지어지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떠다니는 감각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단발히나가 그 해 여름히나와 동일하다는 인식이 관객에게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작중 인물들 사이에서만 히나에 대한 감정이 급속도로 마무리 된다.



결론


신 = 사랑의 산물 = 히나가 받은 것 = 수동적인 기적 = 세카이계의 플롯이다.

신을 죽인다는 건, 세카이계의 플롯을 제거한다는 뜻이다.

히나에게서 양자컴퓨터가 제거된 순간 부터, 신은 부정된다.

다른 사람에게서 부여받은 기적, 플롯에 의해 수동적으로 부여되는 기적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필요한건 그 해 여름의 추억과 요타와 히나의 유대뿐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아. 그런 건 비겁해.

햇살이 눈이 부셔서, 한 순간 눈을 감았지

네가 있었던 것만 같았어


신님, 기적은 우리들이 일으킬 거야.

햇살이 눈이 부셔서, 한 순간 눈을 감았지

곁에 네가 있었어.

(위는 9화의 나츠나기 가사이고, 아래는 12화의 나츠나기 가사이다.)


작가에 의해서 주장되는 히나와 요타가 얻은 기적은 

신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기적이 아니라 

요타와 히나가 직접 쟁취한 새로운 기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타가 히나를 집으로 데려오기 까지 했던 노력,

여름의 추억과 영화와 비디오메시지,

기약되지 않는 주인공의 연구,

앞선 모든 이야기들이 과연 그러한 요타와 히나의 기적을 감동적인 것이라 긍정하도록 만드는 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


분명 본작에서도 절실하고 아름다운 감정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너무 많은 노력을 세카이계로 부터 빠져나오는 장치에 할애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최소한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봄이 찾아오는 마을의 풍경에 요타와 히나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노래에서, 너무나 멀었던 꿈이었지만 결국 도달하였다는 소절만큼은 확실하게 마음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