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
"...응?"
"여자야구 볼래?"
스노하라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
토요일 아침, 예정했던 대로 나기사와 우시오를 아저씨에게 보낸 다음 혼자서 마을 한 바퀴를 돌고 올까 생각해서 집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 녀석이 전화를 해서 지금 집 앞이니 나오라고 한 것이다.
스노하라가 이렇게 멀리서 이른 시각에 찾아온 것은 의외였다. 아마 새벽부터 열차를 타고 와서 나를 놀래켜 주려고 했던 것이겠지.
"나기사는?"
"나기사? 아, 우시오 데리고 빵집에 갔어."
"우시오만 데리고?"
"가끔씩은 남편 없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그런가, 조금 아쉽네."
"미리 예고를 하고 찾아왔어야지."
그렇게 해서 나와 스노하라 둘이서 마을 산책을 하다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여자야구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여자야구 그랜드 토너먼트 결승전. 미즈하라 위치스와 후타바 마이스의 대결이 펼쳐지겠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자야구 결승전 중계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여자야구가 왜 이렇게 갑자기 인기를 얻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야구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는데,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더니, 이렇게 텔레비전 중계까지 하게 된 것이다. 남자들만 나오는 경기를 보던 야구팬들이 뭔가 다른 재미를 찾고 싶었던 것일까? 사실 나는 여자야구를 특별히 좋아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학창시절 학생회장이었던 사카가미 토모요가 여자야구 팀 미즈하라 위치스에서 선수로 뛰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나도 자연스럽게 여자야구 중계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스노하라가 관심을 보이는 선수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오, 나오에다, 나오에."
요즘 미즈하라 위치스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는 선수는 카와스미와 나오에다.
카와스미야 우주의 기운을 받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꾸준히 제 몫을 해주는 선수이지만, 나오에의 등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스무 살 나이로 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위치스의 에이스 투수로 자리잡았고, 타석에서도 기존 강타자인 카와스미와 함께 많은 점수를 올렸다. 올해 16강 정도의 성적이 예상된다는 평가를 받던 위치스가 이렇게 결승전까지 치르게 된 것도 나오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오에 선수가 4번 지명타자로 출장했는데요. 투수로서는 쓰지 않겠다는 의미일까요?'
'그렇겠죠. 준준결승과 준결승을 거치면서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을 테니까요. 오늘은 타격에 집중하라는 뜻이겠죠.'
1회초.
'제6구! ...볼. 사카가미가 볼넷으로 출루합니다. 삼진 이후에 볼넷 허용. 어떻게 봐야 할까요?'
'조금 안타깝네요. 다음 타자가 그리 강하지 않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문제는 이 다음 타순이 3번 카와스미, 그 다음이 4번 나오에란 말이죠.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을 상대한다는 것은...'
중계 카메라는 타석으로 걸어오는 카와스미와 배트를 휘두르며 몸을 풀고 있는 나오에를 차례로 비추었다.
"나오에 말야, 귀엽지 않아?"
"...어? 어, 나오에가, 좀 귀엽긴 하지."
"투수로서도 최고, 타자로서도 최고, 거기에 귀엽고 예쁘기까지. 아, 이런 야구선수는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아마 없을 거야!"
스노하라는 아무래도 나오에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
"...스노하라."
"응?"
"나오에는 말야, 사실 남자라는 소문이 있어."
"뭐?"
"원래는 남자인데 여자로 꾸미고 여자야구 대회에 나오고 있다는 거지. 생각해 봐. 여자야구에서 저렇게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잖아?"
"으음......"
물론 나는 나오에가 남자라는 소문을 믿지 않는다. 너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이다 보니 그런 말도 안되는 가설이 생겨난 것이겠지. 나는 순전히 스노하라를 골려주기 위해, 나 자신도 안 믿는 소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사카가미에 이어 카와스미까지 볼넷으로 내보내는...'
스노하라는 말이 없었다. 문제의 나오에 선수는 자기 타순이 되어 타석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스노하라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스노하라?"
'초구 스트라이크.'
'제구가 조금씩 안정되고 있는 것 같네요.'
"나오에가 남자라도 괜찮아?"
스노하라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2구... 조금 낮았습니다.'
나와 스노하라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을 알 리 없는 나오에는 투수가 던지는 공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3구, 파울.'
"...에이, 상관없어!"
"에? 진짜로?!"
"그래! 나오에는, 여자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설령 나오에가 진짜로 남자라고 해도, 내가 나오에를 여자라고 믿으면 여자가 되는 거야!"
"......"
'멀리 뻗어가는 타구! 담장! 담장! 담장... 때리는 안타!'
"우와아아아!"
'2루 주자 3루 돌아서 홈인! 1루 주자도... 홈인! 타자 주자 2루 돌아서 3루, 3루, 3루에서 세이프! 2타점 3루타! 2대 0으로 앞서가는 미즈하라 위치스!'
"나 오 에! 나 오 에! 나 오 에! 나 오 에!"
스노하라는 신이 났다.
2회초.
"동료들은 나오에의 비밀을 알고 있지 않을까?"
"에?"
"위치스 선수들 말야. 사실 나오에의 성별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 건 아닐까."
'헛스윙 삼진! 투 아웃.'
"아니면 정말로 나오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걸까?"
"그럴 리가."
스노하라는 내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다시 중계 화면에 집중했다.
4회초.
나오에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나와 있었다.
"스노하라, 나오에가 진짜로 남자면 어떡할래?"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힘없이 뜨는 타구. 2루수와 유격수... 2루수가 잡았습니다. 원 아웃.'
"아, 공을 잘 보고 치지..."
나오에의 뜬공 아웃에 스노하라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6회초.
'후타바 마이스의 역전 기회가 아쉽게 무산되었습니다. 미즈하라 위치스의 공격으로 넘어갑니다. 타석에는 2번 타자 사카가미.'
"오카자키."
'초구 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는데."
"뭔데?"
"2번, 3번, 4번 타순이니까, 이번 회에 나오에가 반드시 나올 거란 말야."
"그래서?"
'2구 헛스윙.'
"첫 타자가 토모요니까, 토모요가 안타를 쳐서 나가고, 바로 다음 타자인 카와스미가 또 안타를 치고, 그 다음 타자인 나오에가 스리런 홈런! 어때? 좋은 생각이지?"
"뭐,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과연 생각대로 될까?"
세 타자 연속 안타라. 지금 마운드 위에 있는 상대 투수가 던지는 공을 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좌측으로 멀리 날아갑니다! 담장... 그대로 넘어갑니다! 사카가미의 달아나는 솔로 홈런!'
"토묘요가 홈런을 치면 안 되지!!"
8회초.
'오늘 2타수 1안타 볼넷 하나가 있는...'
'아, 1루를 채우네요.'
'네, 주자 2루 상황에서 나오에를 고의사구로 내보냅니다.'
"공 좀 치게 해라!!"
스노하라가 화를 냈다.
9회말.
'...주자 모두 들어오며 점수는 5대 4! 후타바 마이스가 한 점 차로 추격합니다!'
"......"
'결국 투수를 또 바꾸네요.'
'네, 그런데 지금 위치스에 투수가 있나요?'
'아, 지명타자 나오에가 투수로 마운드에 오릅니다!'
오늘 투수로는 나오지 않는다던 나오에가 결국 9회말 위기 상황에서 투수 글러브를 끼고 나타났다.
"나오에~~~~~~!!!"
스노하라는 예상치 못한 투수 나오에의 등장에 열광했다. 나오에에게 진심으로 푹 빠진 것이겠지.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나오에 응원도 겸하면서 스노하라를 조금 더 놀려주기로 했다.
"그렇지! 나오에, 가라! 남자의 투구를 보여주는 거다!"
"나오에는 여자라고~~~!!!"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나오에는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고, 다음 타자는 10구까지 이어지는 승부 끝에 내야 뜬공으로 겨우 잡아냈다. 세 번째 타자는 3루수 카와스미의 기가 막힌 수비로 아웃되었고 네 번째 타자가 타석에 나와 있었다.
'볼. 풀카운트가 됩니다.'
스노하라도 조금 전부터 잔뜩 긴장해 있었다.
"나기사도 우리가 보는 이 경기를 보고 있을까?"
"아마, 아저씨랑 우시오랑 같이 보고 있겠지? 아저씨는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니까."
'...볼넷이네요.'
'네, 나오에 선수가 많이 지쳤어요.'
'주자 만루가 됩니다.'
"큰일났다......"
"......"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3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면 동점이 되어 연장전을 치러야 하고, 위치스에는 교체할 투수가 더 이상 없다. 2루 주자까지 홈에 들어오면 그대로 역전패가 되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9회말에 지느냐 연장전에서 지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으, 나오에...... 여기서 지면 안 돼... 타자 한 명만 더 잡자..."
스노하라는 긴장을 넘어 초조해하고 있었다.
'초구 파울.'
"오늘 지면 아쉽긴 하겠지만......"
"?"
"결승전까지 온 것도 굉장히 잘한 거잖아? 토모요도 활약해 줬고, 나오에도 남자로서 최선을 다했고."
"그러니까, 왜 자꾸 나오에를 남자라고 하는 건데~~~."
그때.
'외야 멀리 뻗어가는 타구!'
안타인가? 끝내기 안타?
아니다! 외야 한가운데 있던 토모요가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파악하고 잽싸게 달려가고 있었다!
'...중견수가... 잡았습니다! 경기 종료! 5대 4로 미즈하라 위치스가 후타바 마이스를 물리치고 여자야구 그랜드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합니다!'
대회 최고선수상은 나오에 몫이었다. 16강부터 결승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보여준 나오에의 활약상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은 나오에 선수의 인터뷰 장면을 생중계로 보여주고 있었고, 그 모습을 스노하라는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오에...... 정말 좋아......"
나는 다시 한 번 나오에가 남자라는 소문을 스노하라에게 상기시켜 줄까 하다가, 우승의 기쁨을 누리는 지금 그러는 것은 너무 심술궂은 일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수상 소감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오늘 우승의 순간이 있기까지 함께 땀을 흘렸던 미즈하라 위치스의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 승리를 지켜준 카와스미와 사카가미에게는 꼭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동료들 외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소중한 친구인 코마리, 하루카, 쿠루가야, 미오, 쿠드,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는 켄고와 마사토, 하나뿐인 오빠 쿄스케, 그리고 나와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였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동반자인 리키, 나오에 리키와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
"유부녀였냐아아아아아!!!!!!"
스노하라, 대 쇼크.
"유부녀...... 유부녀...... 유부녀어......"
스노하라는 방 한구석에서 옆으로 누운 채 꼼짝하지 않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나오에 선수에게 남편이 있다는 사실이 스노하라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저녁에 나기사와 우시오가 돌아올 때가 되어서야 스노하라는 정신을 차렸다.
"아, 스노하라 씨."
"아아, 나기사."
나는 스노하라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왔다는 사실과, 오후에 여자야구 중계를 같이 본 일에 대해 나기사에게 이야기했다.
"아, 그랬었군요."
"스노하라도 참 불쌍하게 됐어.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건 받아들일 수 있어도 유부녀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아."
"남자요?"
"왜, 나오에 선수가 남자라는 헛소문이 있었잖아."
"아, 네."
"나기사도 야구 중계 봤어?"
"네. 마지막에 아버지가 큰 목소리로 응원을 해서 조금 시끄러웠어요."
"많이 시끄러웠어."
우시오가 '조금'을 '많이'로 정정해 주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이긴 했어. 나오에 선수가 결혼을 했다고는 나도 생각을 못 했었는데."
"저도요."
"우리도 나오에와 비슷한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닌가."
"우리만 이상한 사람인 건 아닌 거네요. 왠지 나오에 선수를 응원하고 싶어졌어요."
스노하라는 저녁 식사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스노하라를 역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생각했다.
스노하라도 언젠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사귈 수 있게 될까? 결혼을 하게 될까?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는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스노하라 곁에 녀석의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원해 본다. 물론, 남편 없는 여자로. (끝)
이런게 서술트릭인가 ㅋㅋㅋㅋ
아 투수에서 린인거 알았어야하는데 ㅋㅋㅋ
ㅋㅋㅋㅋㅋ
어째 투수까지 한다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