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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AIR 끝냈는데 이번에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한번 해보면서 2회차 감상을 남겨봄..

개인적으로 처음 할 때 AIR 루트에서 감정선의 흐름을 놓쳤음..

다시 플레이 해보면서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니 이야기를 따라가는 와중에

나의 편견이 강하게 작용해서 감상을 완전 어긋난 방향으로 했었다는걸 깨달았다.


AIR루트에서 유키토가 미스즈와의 시간을 다시 시작하는 동안 난 계속해서

이 까마귀가 이야기의 처음 시점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서술트릭 같은 걸로 받아들여서 아니 이게 성립되는건가?...

하고 의구심만을 계속 품고 있었다... 정말로 멍청한 일이었다.


그저 곁에 있는 것 이외에는 허락되지 않는 유키토와 미스즈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안타까움을 느껴야할 중요한 장면들인데

그런 추측때문에 집중이 너무 흐트러졌다.

류야가 까마귀로 환생해서 유키토와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던 건가 하는 잡다한 생각들도 몰입을 방해했다.


거기에 가장 치명적이었던 건 AIR루트를 감상하는 내내 과연 주인공이 어떻게 시련을 극복하고

비극적인 숙명으로부터 미스즈를 구해낼 수 있는지에 의식이 향해있었다는 점이다.

실은 이 작품은 그 전제를 단칼에 잘라내고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반복해 사람이 느끼는 괴로움을 깊이 있게 새기는 구조였는데 말야...


인형으로 상징되고 있는, 소녀를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겠다는 단 하나의 오랜 소원은

실은 DREAM루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키토의 희생과 함께 일부 달성되었다.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지면 둘 모두를 죽이게 된다는 가혹한 저주를 마침내 풀어낸 유키토이지만,

그 시점을 마지막으로 우라하와 류야로부터 계승되어온 오래된 하나의 꿈은 달성되고,

인형을 통해서 전달되어온 의지는 소명을 다하면서

어머니와 인형을 매개로 살아왔던 유키토는 그 순간 소녀와 다음 시간을 보낼 자격을 박탈당한다.


인형으로 그녀를 웃게 하겠다는 생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내지 못한 채로 유키토가 가지게 된 새로운 꿈은,

그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여름이 머무르는 마을에서 다시 한 번 그녀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소녀의 저주를 풀고자 하는 것은 10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형의 꿈.

그리고 류야가 임종의 순간에 칸나가 기다리고 있는 저 하늘 너머로 가겠다는 건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또 다른 하나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까마귀는 유키토가 선조들의 소원을 따라간 결과 실현된 하나의 꿈을 넘은

미스즈와 함께 있고 싶다는 유키토의 마지막 소망과

날개를 가지고 칸나가 있는 장소로 가고 싶다는 류야의 소망이 형태를 갖춘 것이다.


세계가 소원을 들어준 결과로 태어나게된 까마귀에게 허락된 건 오로지 그 두가지 뿐이었겠지만

유키토의 미스즈를 생각하는 강한 마음이 생전 자신의 기억을 불러와 인형으로 그녀를 웃게 만든다는 꿈이 실현될 수 있었다.


유키토나 까마귀가 인형을 움직이는 행위는 세계의 가혹한 운명으로부터 발버둥 치는 사람의 의지를 느끼게 한다.

과거 1000년 동안 인형을 움직여 온건 우라하와 류야의 소원을 잇는 사람들의 의지이고,

한 번 저주가 풀린 다음 다시 인형을 움직이는건 까마귀가된 유키토의 몫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주인공은 까마귀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아무리 강하게 의지를 품고 바라더라도 찾아오는 이별을 회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작품에서 철저히 부정당한다.


나키게라고 분류되는 작품들 중에서 특히나 마에다의 AIR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건,

작품들의 본질적인 부분이 단순히 감동적이거나 슬픈 방향을 향하고 있는게 아니라

보이밋츠걸을 토대로 하는 만남 뒤에 찾아오는 피할 수 없는 이별(죽음)의 괴로움에 가장 큰 초점이 맞추어 져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AIR에서 느껴지는 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생기는 슬픔이라든가 비극으로부터 해방되는 희열감 같은 계열의 감동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는 괴로움을 끝없이 반복되도록 하는 것에 작품의 본질이 있다.

그건 결국 무슨 수를 써도 죽음이나 이별을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의 가장 큰 슬픔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일어나는

소녀와의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 닫혀진 마을, 하나의 계절

그 모든 걸 더할 나위 없이 각별하게 만드는 장치는 끝과 이별이다.

아무리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도 끝이 있고 소년과 소녀의 가혹한 숙명은 점차 강하게 옥죄어와 작별로 향한다.


AIR루트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유키토의 마지막 꿈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서는 실현되는 새로운 시간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있다.

만남을 다시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작별을 피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이다.


이후 AIR루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건 그녀를 인형으로 웃게 하겠다는 유키토의 미충족된 바람,

어머니와 가족의 시간을 보내겠다는 오래된 칸나의 꿈,

즐거운 여름방학을 위해 마지막으로 힘내보겠다는 미스즈의 꿈들이

차례대로 실현되었다가 달성을 이루면 다시 끝을 맞이하고 이별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의 반복이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소녀의 끝없는 윤회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식에게 그 자식에게로 이어져온 바톤은

마침내 여름방학의 끝, 어머니가 머무르는 골까지 도달하게 되지만

길었던 이야기의 결실이 이루어진 그 순간 곧바로 다시 찾아오는 건 미스즈의 죽음이라는 작별의 시간이다.


만남과 이별의 순환, 하나의 꿈이 충족되면 그것을 다시 박탈당하고 행복과 슬픔이 차례대로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이걸 경험하는 사람은 해소되지 않는 괴로움이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계속해서 쌓여간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이 이야기에서 확실히 끊어내는 것처럼 보여지는건

오로지 슬픔만이 순환되고 있던 칸나의 비극이 미스즈가 골에 도달함으로서 모두 해소되었다는 안도감일 것이다.

비극의 순환이 끝났음에도 아직 슬픔에 갇혀있던 까마귀가 어머니의 말과 함께 날아올라 하늘 너머로 그녀를 마중나가는 장면은,

슬픔만이 순환하던 상태에서 벗어난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직후, 해변가의 소년소녀에 의해 시간은 되돌려지고

시선은 하늘이 아니라 이야기가 아직 시작되기도 전의 제방으로 되돌아간다.

미스즈는 유키토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만남과, 찾아올 이별과 함께.

하늘을 날아오르고 해변가의 저 너머를 함께 걸어가는게 허락되는 건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내는 소년과 소녀뿐이다.


미스즈와 유키토의 이야기는 해변이 아닌 제방과 그 너머에서 이루어진다.

AIR라는 작품 전체를 통해서 피로되는 하나의 이야기는 마지막 순간 해변가에서 제방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응축되어진 괴로움을 이야기의 다음으로 보내지 못한 채

영원히 출발선으로 되돌아가 갇혀버린 듯한 감각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AIR라는 작품은 그렇기에 사람이 이별과 죽음에 직면하면서 느끼게 되는 정서적인 괴로움을 조명하면서도

결코 간단히 그 괴로움을 작품으로 해소시켜주지는 않고 있다.

이 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마에다준 나키게의 핵심이고 AIR라는 작품을 봤을 때 느껴지는 깊이감의 근원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작품 두 번째로 다 하고나서 가장 좋았던 장면들은

DREMA루트에서 유키토가 만남의 첫날 그녀와 해변가에 가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집으로 되돌아가 인형에 담겨져온 오랜 소원을 자신의 희생과 함께 이루어내는 장면이랑,

류야가 마지막 순간에 칸나가 기다리고 있는 하늘의 저편으로 가고자 하는 장면에 이어서

직후 AIR 루트가 시작되고 까마귀가 소녀의 어깨 위에 앉아 나츠카게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진짜 최고였다...

많은게 함축된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네.


인형으로 미스즈를 웃게하지 못했던 유키토가 필사적으로 그녀를 웃게 만들기 위해

까마귀의 모습으로 차례차례 그녀와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고 잊어가는걸 반복하는 장면도 좋았고 오열했다...

다시 여름이 찾아와. 은색으로 빛나는 수면에 비친 두 명분의 그림자 이 파트도 장난아니었고...

마지막 해변가에서 제방 바라보는 장면도 역시 좋았고...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어쨌든 이야기의 끝에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고,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이야기가 영원히 반복되는 듯한 감각을 주는 것도 사실이고

그 중간 상태에 갇혀 있는 듯한 희열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무언가가 AIR의 깊이감 아닐까 싶다...

여전히 이야기를 생각하면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기분이 드는 이야기이다.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고 비극과 죽음을 다루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반복되어져 왔을 거고 어디에도 넘쳐나겠지만

마에다준과 AIR라는 작품이 어떤 점에서 특별하냐고 묻는다면

만남이 이루어지는 계절의 찰나와 그것이 끝날 때 생겨나는 괴로움을

해소시키지 않은 채로 받아들여지게될 쓰라림에 매진한 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