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리틀 버스터즈 플레이를 다 마치고 나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리틀 버스터즈를 해본 다른 사람들은 개별 루트들을 대부분 안 좋게 평가한다는 점이었음.
나는 리틀 버스터즈의 개별 루트들을 꽤 마음에 들어했고 등장 인물들에 대한 애정도 개별 루트를 통해 생겼는데.
(물론 리틀 버스터즈는 Refrain이 최고라는 점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취향이 내 취향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면 그 이유는 뭘까?
늘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는데,
최근에 열쇠와는 전혀 관련 없는 엉뚱한 게임 하나를 플레이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OMORI(오모리)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RPG.
그냥 이 화면만 보면 주인공 소년이 친한 친구들과 함께 몽환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내용이 전부인 것 같지만......
OMORI라는 게임 제목은 HIKIKOMORI에서 유래했다고 함.
이 게임의 주인공은 어린 시절 행복하게 살았지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뒤로 자신의 내면 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채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소년인데,
이 소년한테 굉장히 세게,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는 거 있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주인공이 굉장히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졌고,
게임을 하면 할수록 주인공이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불행을 털어내고, 다시금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더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게임을 하는 내 마음이 절로 그런 쪽으로 옮겨 갔음.
이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거지.
'아, 나는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끌리는 사람이구나.'
내가 왜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끌리는지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 아닌가 싶음.
어린 시절 사이좋게 지냈던 누나와는 성인이 된 뒤로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 버렸고,
10대 시절 친구들은 다들 결혼을 일찍 했고 친구보다 자기 가정이 우선이 되면서 나와는 멀어졌지.
그 과정에서 나는 '인간은 어린 시절이 가장 행복하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점점 불행해진다.'는 명제를 만들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는 이제 남은 인생에서 결코 과거처럼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다.
그러니까 '행복한 사람', '밝은 사람'은 보기에는 좋지만 내 관심을 끌지는 못하는 거야. 나 없이도 행복하니까.
내 마음은 내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 그러니까 나처럼 마음에 상처가 있어서 그 상처를 보듬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에게 이끌리는 거지.
다시 리틀 버스터즈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 보면,
리틀 버스터즈의 개별 루트에는 문제점이 하나 있음.
보통 이런 장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기대하는 건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의 알콩달콩, 꽁냥꽁냥 같은 연애(+성애) 요소들이지만,
리틀 버스터즈의 개별 루트에는 그런 게 많이 부족하니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하지만 반대로 나한테는 이게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음.
왜냐하면 리틀 버스터즈의 여자 멤버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다들 마음의 병을 하나씩 앓고 있는 친구들이고,
그 병을 치유하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이니까.
게다가 그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남자 주인공도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아픔을 겪은 주인공이고.
(부모님 없이 자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음씨가 고와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음)
글이 길어졌는데, 결론을 얘기하자면,
'주위에 리틀 버스터즈 개별 루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마음에 낫지 않은 병이나 상처가 있는 사람일 것이니 잘 대해 주라'는 말.
난 개별루트도 좋아해서 애니 1기도 꽤 흥미롭게 봤음.. 근데 refrain이 너무 잘만들긴 한듯 ㄹㅇ 엑스터시 사야루트도 그렇고
리토바스의 개별 히로인들이 각자 아픔을 안고 있어서 refrain에서의 역할이 부족해도 상대적으로 덜 그렇게 느낄 수 있는듯
와... 잘 들었습니다... 다 듣고나니 왠지모르게 제가 몇달전 플래이했던 120엔의 계절이란 키네틱 노벨 올클후 이건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한 겜이라고 생각했던때가 문득 생각나네요,.. 그때도 리토바스 생각은 도저히 안 났는데 리토바스에서 그런 점을 찾았다는게 정말 놀랍습니다....ㄷㄷㄷ 덕분에 개별루트 내용 다시한번 곱씹어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멘헤라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