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버스터즈! Refrain을 작년 봄에 클리어하고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남은 이야기들을 묵혀 두고 있다가 연말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을 했네요.
오늘은 사야 루트를 클리어했습니다. 간단한 감상을 적어 보기로 할까요.
1.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버렸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스파이의 세계에 말려 들어가버린 리키.
분명히 배경도 똑같고 등장인물도 한 명 추가된 걸 빼면 다 똑같은데, 플레이할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대개 〈작안의 샤나〉처럼 평범한 주인공이 비일상의 세계에 빠져버리는 이야기는
'만약 주인공이 자기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과 조우하지 않고,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지만,
리틀 버스터즈의 사야 루트는 보통 루트에서 리키가 어떤 생활을 했고 어떻게 친구들과 놀았는지를 아는 상태에서 플레이하니까, 기분이 묘하더군요.
2. 토키도 사야는...... 사야가 처음 등장했던 2000년대 후반은 '닥치고 츤데레가 대세'인 시기였기 때문에 인기가 굉장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저는 츤데레 캐릭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사야가 린이나 다른 친구들에 비해 특별히 더 매력 있는 인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사야에게서 느낀 감정은 '불쌍하다'였습니다.
지하미궁에서 '죽을 뻔했어'라는 리키의 말에 '안 죽었잖아'라고 하는 사야의 대답에서는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고,
'자신만을 믿을 것'을 비롯해 스파이의 여러 가지 수칙을 리키에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사야가 속한 세상이 얼마나 차가운가를 생각했습니다.
적의 습격에 대비한다며 나뭇가지들을 주변에 뿌리는 모습을 보며 사야는 무슨 분쟁지역에서 살다 온 건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용병이나 첩보원의 삶만을 살았을 사야에게, 평범한 소녀의 삶을 조금이나마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리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겠지요.
3. 좀 엉뚱한 발상이긴 하지만, 영화 〈레옹〉에서 레옹을 미소녀로 치환하고 마틸다의 성별을 남자로 바꾸면
사야 루트와 비슷한 느낌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냉혹한 세계를 살아가는 외로운 소녀가 마음씨 착한 소년을 만나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 왠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지 않나요?
4. 그러다 사야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뒤이어 나온 사야의 과거.
사야가 무슨 분쟁지역에서 살다 온 건가 하는 생각은 진짜였습니다.
남들과 다른 어린 시절을 보내며 보통의 아이들의 일상을 동경했던 소녀.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을 사귀는 평범한 삶을 진심으로 꿈꿨던 소녀.
드디어 그 꿈을 이루나 싶었는데...... 그 꿈이 이렇게 끝나면 너무 불쌍하잖아......
5. 지하미궁 리플레이는 여러 번 죽어 나가는 반복 플레이라서 그다지 재미있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토키카제 슌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지더군요. "샌즈세요?"
토키카제로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야를 내쫓아야만 했을 테니 사야의 적이 되었던 것이겠지요.
만약 사야와 토키카제가 다른 세계에서,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같은 만화를 좋아하고 재미있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세계에서 추구하는 바가 서로 달랐고 그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결국 적대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죠. 안타까워라......
사야 루트는 결국 사야가 체포되는 것으로 끝이 나네요.
엔딩곡이 안 나오는 걸 보면 이게 진짜 엔딩은 아닌 것 같고, 린처럼 사야 루트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진짜 엔딩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진짜 엔딩 보고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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