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격이 좀 독특하다....

이 성격 때문에 요새 수의사 하기가 너무 힘들다.



딱 디시에서 봐도 다 알 수 있듯이 내가 보통 사람 기준으로 생각이 너무 많다.


수의사 하면서 많이 힘들다.





오늘 그런 일이 있었어.....


누군가가 약용샴푸를 사러 왔어.

강아지는 없었고...

작은 동물병원에서 흔히 있는 일이지.

당연히 쉬운 일이야.


그런데,

나는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한 거야.


"각질이 많이 생겨서 불편하신가요?"

"그럼 다른 피부병이 병발합니까?"

"우리 병원이나 다른 병원에서 진단 받은 적이 있습니까?"

"보호자가 보시기에 각질 외에 어떤 문제점이 있나요?"

"과거에 곰팡이 병을 진단받은 적이 있었다고요?"


여기서 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럼 저건 Dermatophyte 인 것인가 말라세지아인 것인가 무얼 곰팡이라 표현한 것인가? Dermatophyte는 그 특유의 병변이 있지."


"혹시 노란 딱지 같은 것이....."

겁나 물어보고 생각하면서 또 머리를 굴렸다.


"혹시 세균성 피부염....??"


말라세덤을 팔까 벤조일을 팔까 보습 기능 있는 샴푸를 팔까


생각에 생각에 생각.

고민에 고민에 고민을 반복하다

어렵게 어렵게 약용 샴푸 하나 팔았다.


기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잠시 동안 손님들이 안 온다.


그 기회에 며칠 전 내가 대증치료 해서 보낸 강아지에 대해 챠트를 뒤져보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녀석 전신질병이 사소한 구토 증세로 나타난 것인데 미처 못 발견하고 놓친 거면? ㅋ"

"저 보호자는 그냥 약만 지어갔지. 혹시 MVI 가 더 진행되었으면? 그래서 내가 아무리 편의 상 약 만 지어가더라도 가끔 병원에 방문해 주셔서 평가를 해야 한다고 겁나 연설했는데 표정이 그다지 데려오고 싶어하는 표정이 아니였어. 사실 이런 보호자니까 원장님 없이 내가 나서서 그냥 약만 들려 보냈지만... 그래도.... 내 생각엔 이건 좀 너무해. 그래도 가끔 와야지!"

" 그 녀석 patellar 에는 수술적 옵션도 있지만 아직 진통제로 관리할 수 있다고 해서 보냈는데... 혹시 이렇다면?"

"걔는 추가적인 검사 뭐가 있었으면 망설임 없이 좀 더 정확하게 했었어!"


헐....... 또 기력이 떨어진다.




이쯤해서 나는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겁나 신중하게 생각만 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이런 애매한 몰골로 끝없이 생각과 질문을 던져대서 보호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보호자들을 바라보면 또 다시 생각을 한다.


"저 보호자들은 심각한 질병을 심각하게 처리하려면 큰 병원에 갔고 가볍게 질병을 처리하고 싶어 이곳에 왔는데 내가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을 보여서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 지금 저 보호자의 needs는 대증치료다. 지금 피부 소양감을 잠시 가라앉히는 약이 필요한 것이지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싶어하는 욕구는 단념한 상태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신중신중, 겉으로 보기에는 겁나 자신 없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가 겉으로 보기에 우유부단해보이고 지나치게 신중해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이럴 때는 상대방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야 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고 그 상태로 저 보호자의 needs를 해결해 줘야 한다. "


그런데....

머릿 속으로만 돌고 말이 더듬거리고 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계산을 짧은 순간에 처리하는 건 좋은데 머리가 과열되고 거기에만 신경이 집중해서 말이 어눌하게 나가고 혀가 꼬인다.


보호자의 신뢰성이 더 떨어짐이 느껴진다.

헤메이고 있다....


내가 헤메고 있음을,

그리고 보호자의 신뢰성이 저하됨을,

그의 needs를.

모든 것이 마치 드라마처럼 선명하게 보이는데

정신이 이탈해서 모든 걸 관조하고 있는 동안 몸은 배배배배 혀는 어버버버 거리고 있다.



이쯤해서 또 용품 사러 온 사람이 있다.....


개 옷을 사고 싶어 한다는데,

나는 일일히 포장을 조심스럽게 뜯어서 직접 옷을 하나 하나 입혀 주어서 사이즈에 딱 맞는 옷을 찾아 주었다.

눈 대중으로 팔다가는 좀 큰 것이나 너무 작은 것을 팔 위험이 있기 때문에....

너무 큰 옷을 팔았을 때 보호자가 앞으로 느낄 감정, 너무 작은 옷을 팔았을 때 보호자가 느낄 감정을 상상하고

그런 위험 없이 정확한 물걸을 팔았다.

그렇게 20000원 매출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뜯은 포장을 다시 조심스럽게 접어서 새것처럼 만들어서 다시 깨끗하게 진열했다.


완벽하긴 한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매출 20000 과 함께 기력도 -20000 되었다.....



주접도인은 궁예다.....

나는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꿰 뚫지는 않아도 조금 훔쳐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의 마음을 볼 수 만 있지 그들의 마음을 채워 줄 수가 없다. ㅠㅠㅠㅠㅠㅠㅠ 이런 젠장......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다음 퇴근하면서 머리 과열 burn out 사태에 직면..................심각하다.....

나는 머리를 안 쓰려고 노력했는데 머리가 혼자 지나치게 굴러가면서 저절로 자가발화 되고 말았다......



이렇게 불타버린 내가 내 모습을 3인칭으로 내려다 보면서

뭔가 웃긴데 진지하게 슬프고 적응이 안 된다.


나를 잘 아는 동기들에게 연락해서 너무 힘들어서 임상이 내 길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니


동기들의 반응.

"어. 우리 생각에도 널 보면 그런 부분이 있어. 연구직 같은거 찾아보는게 어떠니?"

............으으으으....... 솔직히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내 생각에도 내가 좀 임상하기에 뭔가 아스트랄하고 4차원적인 성격인 것 같다........



내가 그래도 없는 조건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수의사는 되었고

형편에 밥은 벌어먹어야 하니 이걸 하고는 있는데

그러면서도 슬럼프다.


좀 고생해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필사적으로 머리를 다 써버리는 성격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하는가....




사실...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는 철학 하고 싶다....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만 같은데....인생이 행복할 것 만 같은데....

그런데 그러다간 정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철학과 나와도 자기 전공 못 살리고 엉뚱한 곳에 취업해야 할 지도 모르는데...

그러느니 수의사 면허라도 쥐고 있는게 나을 것임을 알고는 있다...


근데 성격이... 가끔 오늘같이 지쳐 쓰러지는 날이면 눈물이 날 만큼 간절히 수의사 말고 다른 것이 하고 싶은데....

그러다간 굶어 죽는다고 스스로에게 외치며 나 자신을 설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