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쌀밥은 못먹을지언정 구황작물이든 뭐든 먹어서 끼니 때울 수준은 되지 않았나
풍족하게 먹는다는게 아니라 입에 풀칠한 수준은 됐다고
며칠 굶는건 아니고 뭐 하루 두끼만 먹는다던가 이런건 좀 흔했던듯
미국에서 엄청 비원해주지 않았나 - Grande Guerre
하루 두끼란다. 하루 한끼
실지 그당시 굶어죽는 사람들 많았음. 괜히 진흙 파먹고 막 나무껍질 벗겨먹고 그런게 아님둥 ㅠㅠ
60년대 이전에는 아예 절미운동이였고, 60년대부터 혼분식 장려운동. 밀가루하고 보리등을 합하면 2끼 먹을수 있는 정도였다.
1969년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오전 11시~오후 5시)에는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할 수 없었다. 대신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수제비 등의 음식을 판매해야 했다. 또한 설렁탕 등의 음식에는 일정 비율의 밀가루 국수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간게 저것 때문이얌..ㅋㅋㅋ
60년대도 스펙트럼이 넓어서 할부지 말로는 60년대 초반에는 하루 한끼 챙겨먹기 힘든때도 종종 있었는데 후반기 가면 그래도 좀 나아져서 아얘 굶고다니는 건 거의 없어졌었다고 함.
- 50년대는 미국 원조 물자 덕분에 90년대 북한 꼴 나지 않았다가 정확한 소리라고 봄.
- 나이드신 친척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음. 50~60년대 꽁보리밥이던 구황작물이던 자식들에게 하루 3끼 식사를 하게 해주는 집 가장은 자식을 어떻게 취급하던 찮은 가장 소리 들었다고 우픈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시더군만.
며칠 굶는건 아니고 뭐 하루 두끼만 먹는다던가 이런건 좀 흔했던듯
미국에서 엄청 비원해주지 않았나 - Grande Guerre
하루 두끼란다. 하루 한끼
실지 그당시 굶어죽는 사람들 많았음. 괜히 진흙 파먹고 막 나무껍질 벗겨먹고 그런게 아님둥 ㅠㅠ
60년대 이전에는 아예 절미운동이였고, 60년대부터 혼분식 장려운동. 밀가루하고 보리등을 합하면 2끼 먹을수 있는 정도였다.
1969년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오전 11시~오후 5시)에는 쌀로 만든 음식을 판매할 수 없었다. 대신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수제비 등의 음식을 판매해야 했다. 또한 설렁탕 등의 음식에는 일정 비율의 밀가루 국수를 사용하도록 강제했다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간게 저것 때문이얌..ㅋㅋㅋ
60년대도 스펙트럼이 넓어서 할부지 말로는 60년대 초반에는 하루 한끼 챙겨먹기 힘든때도 종종 있었는데 후반기 가면 그래도 좀 나아져서 아얘 굶고다니는 건 거의 없어졌었다고 함.
- 50년대는 미국 원조 물자 덕분에 90년대 북한 꼴 나지 않았다가 정확한 소리라고 봄.
- 나이드신 친척분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음. 50~60년대 꽁보리밥이던 구황작물이던 자식들에게 하루 3끼 식사를 하게 해주는 집 가장은 자식을 어떻게 취급하던 찮은 가장 소리 들었다고 우픈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시더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