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전투에서 기병운용이 승패에 미친 영향

1. 아일라우 전투

-전투상황속 기병 운용

아우스터리츠전투(Battle of Austerlitz, 1805)와 예나전투에서 패배한 프로이센을 구원하기 위해 러시아가 폴란드지역까지 진출하자 나폴레옹은 1807년 2월 8일 아일라우 근처에서 전투를 준비하였다.


-26원수중의 한명인 루이 니콜라 다부

(자라나라 머리머ㄹ..)

나폴레옹은 전투 초기 다부(Louis-Nicolas Davout, 1770~1823)의 제3군을 러시아군의 좌익으로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다부의 제3군이 효과적인 공격을 하여 러시아군 좌익일부에 균열이 생기자 나폴레옹은 러시아 군 좌익 중앙에 오주로(Pierre Augereau, 1757~1816)의 제7군을 투입하였다.

하지만 이때 갑자기 거대한 눈보라가 전장을 뒤덮자 오주로의 제7군은 방향을 잃고 길을 헤매고 있었다. 눈보라가 잠잠해지자 오주로 의 제7군은 러시아군 포병대에 자신의 우측면을 노출시켰고 기회를 포착 한 러시아군이 공격을 하였다. 그 결과 1시간 만에 오주로를 포함한 약 5,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프랑스군 중앙에 거대한 간격이 발생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러시아군 지휘관 베니헤젠(Levin Bennigsen, 1735~1826)은 보병과 기병 예비대를 프랑스군 간격에 투입시켰고 나폴레옹은 위기에 처하였다.




나폴레옹은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기병 예비대 지휘관인 뮈라(Joachim Murat, 1767~1815)에게 프랑스군의 중앙을 공격하는 러시아군을 공격 목표로 부여하였다.

뮈라 는 제2흉갑기병사단, 제1, 제2, 제3용기병사단, 근위기병사단을 소집하여 돌격을 개시하였다.



-깔쌈하게 슛~!! (모랄빵)

돌격 명령이 하달되자 프랑스 기병 예비대는 신속하게 돌격을 감행하여 접근해 오는 러시아군 보병대대와 용기병연대를 전멸시켰다.

그리고 본진에서 방어 중인 러시아군 보병대대를 향해 공격하여 방어진형을 와해시켰다.



그러나 후방에서 대기중인 러시아군 보병대대와 기병대가 프랑스 기병 예비대를 측면에서 포위하였으나 프랑스 기병 예비대의 충격력은 러시아의 방어력보다 강했고 뮈라는 기병부대 대형을 변화시키면서 포위망을 뚫고 적 후방으로 계속 진출하였다.

그리고 러시아군의 맨 후방에 위치한 포병대를 격파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나폴레옹은 전 전선에 걸쳐 러시아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물자 전투는 소강상태가 되었고 네의 제6군이 프랑스군 쪽으로 근접해 오면서 러시아군이 철수하여 아일라우전투는 종료되었다.


'러시아군도 좆밥이네 ㅎ'

이 전투는 나폴레옹 기병운용의 모범적인 예시었다.


-승패를 결정한 요인

첫째, 뮈라가 지휘 하는 기병 예비대의 돌격은 시기상 전투 중에 이루어졌으며 대상도 적 기병부대로 매우 적절하였다.

그리고 돌격 이후 적 보병부대에 의해 일부 포위가 되었으나 러시아군 보병이 완벽한 방진을 형성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군 기병은 돌격을 중지하지 않고 계속 진출하여 적 후방 포병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둘째, 부대 편성에 있어 기동력을 강 화하기 위해 보병부대와 혼합된 편성을 하지 않고 기병단독으로 편성하였다.

당시 상황은 프랑스군 중앙에 간격이 발생하였으며 러시아군이 기회를 포착하여 예비대가 돌격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반응시간이 느린 보병보다는 기병을 통해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물론 기마포병 을 대동하지 않았던 점이 교리상 과오로 볼수 있으나 당시 상황상 기마 포병의 사전지원 후 돌격하는 것은 반격의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전술적 융통성으로 평가될 수 있다.


(우덜도 나폴레옹한테 한수 배웠지라)

셋째, 나폴레옹은 반격을 위해 군단급 수준의 대규모 기병부대를 조직하였고 독립작전이 가능하도록 단일 지휘관의 지휘하에 운용되도록 하였다.

즉, 규모적,지휘 통제적 측면에서 기병운용을 전술적 수준에서 작전적, 전략적 수준으로 향상시켰는데 이것은 나폴레옹전쟁 이전 전쟁사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 내 적국인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에서도 기병은 연대규모로 보병 군(사)단의 예비로서만 임무 수행하는 등 전술적 수준에만 머물렀다.

프랑스군 기병 중 약 1,500명 이상이 죽거나 다 친 아일라우전투에서 프랑스군 기병 돌격이 의미없는 자원낭비이며 기병을 오용하였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전투 상황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나폴레옹의 전술적 판단과 군단급 수준의 역습을 기병 예비대를 통해 성공시켰다는 사실이다.



다음 장에선 기병돌격이 보병부대간 난전으로 혼란한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적 측방, 후방에 대한 공격도 아니었고 적 기병 및 포병부대에 대한 공격이 아니었던

적 보병부대에 대한 과감한 정면 공격으로 승리한 소모시에라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Polska stronk!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