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모시에라 전투

-전투상황속 기병운용

밀라노 칙령을 통해 영국을 고립시키기로 한 나폴레옹의 의도가 에스파냐에서의 내부분란으로 어렵게 되자 나폴레옹은 에스파냐를 직접 공략하였다.

1808년 나폴레옹은 네, 술트(Nicolas-Jean de Dieu Soult, 1769~1851), 마세나(Andre Massena, 1758~1817) 등과 같은 지휘관과 함께 마드리드로 향하기 위해 피레네산맥 정상의 소모시에라 마을로 진출하였다.

11월 29일 나폴레옹은 산맥의 중턱부터 정상까지 도로를 따라 종심으로 배치된 포병과 보병을 발견하게 되고 러핀 (Francois Ruffin, 1771~1811)의 보병사단으로 공격하였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와 폭이 좁은 도로, 종심 깊게 배치된 에스파냐군 때문에 쉽게 전진 할 수 없었고 나폴레옹은 피레(Hippolyte Pire, 1778~1850)에게 中기병을 활용한 공격을 시켰으나 좌절되었다.


이에 그는 코이제툴스크(폴란드 창기병대대의 지휘관)에게 공격을 명령하였다.

프랑스 기병부대가 코이제툴스크를 지원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으나 그는 기다리지 않고 폴란드 창기병 1개대대를 4열종대로 배치하여 폭이 좁은 도로를 따라 신속하게 공격하였다.


에스파냐군의 포병과 머스켓이 지속적으로 발사되자 폴란드 창기병의 선두가 저지 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폴 란드 창기병들은 멈추 지 않고 신속히 공격을 하였으며 에스파냐군 포병 및 보병부대를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었다.


(끼요오ㅇ오옹오옷)

폴란드 창기병은 에스파냐군 방어전방의 보병부대 일부를 돌파하였고 이후 계속 돌파를 시도 하여 결국에는 정상까지 올라 에스파냐군 방어의 균형을 흔들었다.

그리고 러핀의 보병사단과 프랑스군 기병대가 폴란드 창기병대를 후속하여 에스파냐군의 종심 깊은 방어를 붕괴시켰다.


(우주가는거 빼고 다잘하는 폴스카ㅠ)

-승패를 가른 요소들.

이 전투는 그 동안 나폴레옹이 보여준 기병운용과는 다소 상이한 부분이 많이 존재하였다.

기병돌격이 보병부대간 전투로 혼란한 시점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적 측방, 후방에 대한 공격도 아니었고, 적 기병 및 포병부대에 대한 공격이 아닌 보병부대에 대한 정면 공격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기병운용의 위대성은 이 전투를 통해 극대화되었다고 볼수있다.



(언덕리버 좆사기 -_-; )

첫째, 이 작전지역은 폭이 좁은 도로를 중심으로 저지에서 고지로 공격자에게 불리한 지형이었다. 그리고 적은 지연전을 위해 도로 중심으로 종심 깊게 방어부대를 배치하였다.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기존 重기병은 기동속도가 느려 적에게 근접하기 전에 적 보병과 포병공격에 많은 피해를 입기 때문에 효과적인 공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랜스로 무장해 보병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하며 장갑 을 두르고 있지 않아 기동속도가 뛰어난 폴란드 창기병에게 임무를 부여하였다.

즉, 나폴레옹은 동일한 임무라 할지라도 지형과 기상 등 주변 요소를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가장 적합한 부대를 선정해 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이를 사전에 준비해 전투에 참가시켰다.


'아..안돼..' '돼!'

둘째, 공격부대를 편성 하면서 폴란드 창기병 단독으로 편성해 전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프랑스 기병과의 조합은 폴란드 창기병이 갖고 있는 특성을 무디게 하여 극대화된 전투력를 제한할 수 있었다.

즉 같은 병종이라도 각 기병만의 특별한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혼합 편성할 경우 효율성이 반감될 수 있었다.


'왼발.. 왼발.. 왼발..'

셋째, 돌격하는 기병을 보호하며 확보된 지형을 확보 및 붕괴된 적을 소탕하기 위해 보병부대를 후속공격시켰다.

만약 후속부대의 적절한 공격이 없었다면 폴란드 창기병이 어렵게 확보한 기동로가 폐쇄되고 폴란드 창기병이 고립될 위기에 놓여있었다.

이처럼 상황에 부합된 기병운용을 통해 나폴레옹은 소모시에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마드리드로 진격할수 있었다.

다음장에선 비록 전투에선 이겼지만, 기병운용에서 실수가 있었던 보로디노 전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1줄 요약: Polska Stro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