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상황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시 러시아군 주력을 조기에 섬멸하려 했지만 러시아군이 지연전을 펼쳐 좌절되었다.

그러나 국내여론 악화로 조기결전을 결심한 러시아군은 모스크바 서쪽 30km 지점인 보로디노 근처에서 방어를 준비하였다.


작은 언덕과 하천, 나무로 우거진 지역인 보로디노는 상대적으로 경무장한 러시아군에게는 유리하고 중무장한 프랑스군에게는 불리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러시아군은 전선 중앙에 3개의 보루를 만들어 프랑스군 공격에 대비하였다.


9월 7일 새벽 프랑스군 13만 명, 러시아군 12만 명이 약 5마일에 걸쳐 전선을 형성하였으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네의 제3군과 다부의 제1군에게 러시아군 중앙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다부의 제1군은 특히 3개의 보루에 병력을 집중 하여 공격을 하였다.


그 중 가장 남쪽에 있던 보루를 점령하지만 러시아군 中기병이 반격하여 다부의 제1군 보병대대를
파괴하였다.

이후 다부의 제1군은 지속적인 공격을 통해 전투시작 1시간여만에 보루 3개를 모두 점령하였으나 러시아군의 반격에 의해 모두 다시 빼앗겼다.


이때 외젠(Eugene de Beauharnais, 1781~1824)의 제4군(프랑스군 좌익)이 보로디노를 점령하여 가장 북쪽에 위치한 소위 대보루(Great Redoubt)를 측방에서 공격할 수 있게 되자,

네와 뮈라는 러시아군을 와해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나폴레옹에게 전갈을 보내 황제 근위대(예비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전선 상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없었고, 이때 프랑스군 좌측에서 러시아군 기병의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는 정찰대의 보고를 받자, 나폴레옹은 네와 뮈라의 전갈에게 황제 근위대를 줄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그리고 기병예비대를 러시아군 기병의 공격방향으로 보내 측방보호에 주력하였다.


(러시아 기병 살살 녹는다~ (당시 전투를 묘사한 그림))

러시아군 기병 공격이 과장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나폴레옹은 대보루를 점령하기 위한 공격을 계획한다.



이에 외젠의 제4군이 측방에서 공격하고 중앙에서는 기병사단, 2개의 흉갑기병 연대가 선두에서 요새를 향해 돌격을 감행하고 다부 제1군의 제1, 제3보병 사단이 후속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군도 요새 안에서 방진을 형성하고 끈 질기게 저항하였다.



프랑스군은 3개 흉갑기병연대와 3개 보병사단을 추 가로 투입하여 요새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때 러시아는 2개 기병군단을 투입하여 러시아군 본진 전방이 붕괴되는 것을 저지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프랑스군 전방 지휘관들은 나폴레옹에게 러시아군을 완전히 괴멸 시키기 위해 근위대를 추가로 요구하였으나 나폴레옹은 이 요구를 묵살하였다.



'모스크바.. 버리자.'

결국 해가 지고 러시아군이 모스크바 방향으로 후퇴하면서 보로디노 전투는 종료되었다.





-전투의 승패를 가른 요소들.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기병운용은 전술적 수준에서는 성공적이었지 만 작전적, 전략적 수준에서는 실패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보루(Great Redoubt))

첫째, 나폴레옹은 적 방어진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병돌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전장에 있는 3개의 보루는 러시아군 방어진형의 중심(Center of Gravity)라 볼 수 있는데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보병부대의 지원과 기마포병의 적절한 지원으로 보루를 공격하였다.

후속하는 보병 부대 지원이 없어 확보한 지역을 내주었지만 연이은 공격으로 보루를 확보할 수 있었고 러시아군 진형을 와해시킬수있었다.

특히 대보루 지역은 가장 치열한 난타전(dog-fight)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기병의 대규모 돌격으로 인한 심리적 공포감, 압박감을 받은 러시아군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러시아군 기병이 측방 우회공격 시에 나폴레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동력이 있는 기병을 투입하여 측방을 보호하고 러시아군 기병을 격퇴시켰다.

만약 기병이 아닌 보병을 투입했다면 반응시간이 늦
었고 적절하지 못한 전술적 판단이었을 것이다.

러시아군 기병의 접근이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은 피해없이 자신의 병참선과 우측을 보호할 수 있었다.



셋째, 이러한 전술적 수준의 기병운 용은 성공적이었으나 이것을 작전적, 전략적 수준으로 이용하기 위한 기병운용이 미흡했다고 평가된다.

나폴레옹은 대보루가 무너지고 있을때 끝까지 자신의 근위대(기병예비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만해도 머육군의 리즈시절..)

만약 기병예비대 에게 전과확대 임무를 부여하였다면 전과확대뿐 아니라 아우스터리츠, 예나전투에서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대규모 섬멸전도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그렇게 되었다면 러시아군 주력은 보로디노에서 섬멸되었고 모스크바 점령 이후 나폴레옹이 후퇴를 할 때 러시아군이 빠르게 프랑스군을 추격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다음 장에선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 20년 대전쟁의 막을 내린 워털루전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1줄 요약: 이기긴 이겼는데, 실수도 있고, 아쉬운점도 많았던 전투였음.

여담:다음장은 드디어 대망의 워털루전투다. 프뽕 광광 우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