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에 이달 21일자 관인이 찍힌 경상 방어사 김응서(金應瑞)가 보내온 보고서가 당도하였는데, 그 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 니다. 이 달 19일 진시(辰時: 아침 7시에서 9시) 무렵에 경주부(慶州 府) 경내 10리 밖에서 왜적 1천여 명이 갑자기 쳐들어와 분탕질을 하거늘, 방어사 역시 조역(朝驛)에서 출발해 천룡산을 넘어 후첩(後 岾)으로 달려가서 전투를 치렀습니다. 좌병사(左兵使) 고언백(高彦 伯), 충청 방어사(忠淸防禦使) 이사명(李思命), 조방장(助防將) 홍계 남(洪季男), 경주부윤(慶州府尹) 박의장(朴毅長) 등이 나란히 도착해 사력을 다해 싸울 것을 약속하였는데, 방어사 이사명은 오른팔에 탄환을 맞았고, 판관(判官) 박응기(朴應箕)는 검에 맞아 목숨을 잃었 습니다. 조방장 권응수(權應銖)가 타던 말이 탄환에 맞아 고꾸라졌 고, 방어사는 탄환에 맞아 옷에 구멍이 났으나 살갗에 닿지는 않았습 니다. 군졸 다수가 다치면서 종일토록 혈전을 치렀습니다.
전날 투항한 왜인 요질기(要叱其) 등 4명은 조총을 쏘면서 마음을 다해 전투에 임했는데, 왜적은 부상당한 자가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패퇴하였습니다. 밤새도록 진영을 짜던 차에, 요질기로 하여금 몰래 밤을 틈 타 적을 놀라게 하는 계책을 세우게 하였으나, 왜적이 불을 밝혀 놓은 채 잠들지 않고 있어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요질기 와 다시금 모의하여 적진에 잠입한 다음 적들을 유인해 내자고 하였 습니다. 같은 날 밤 삼경에 조총 잘 쏘는 자 5백 명을 적진으로 보내 유인해냈거늘, 만분의 일의 요행이라도 시험해 보고자 요질기 및 앞 서 온 왜인 세 명, 도합 아홉 명이 선봉대가 되어 새벽녘에 적진 옆 까지 접근했습니다. 이에 적의 무리가 행군하자, 방어사 및 권응수· 권황(權滉) 등이 합세하여 군대를 인솔하여 돌격하고, 요질기 등이 조총을 일시에 발사하자, 적의 무리가 놀라 당황하여 허겁지겁 도망 하던 차에, 고언백·홍수남·박의장·김태허(金太虛)·정대임(鄭大任) 등까지 싸우러 와서 담티재까지 추격하였습니다. 이에 적의 기세가 궁지에 몰리자, 붙잡혀 있던 포로 330여 명과 소와 말 20여 마리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져 다 체포하지는 못했습니다. 투항한 왜인 요질기 등이 힘을 다해 싸운 공로는 지극히 가상합니다. 접전하던 경과의 대략을 달려가 보고했으며, [그때 보낸] 첩정 또한 있습니다. 일전에 김응서 등이 왜적과 맞붙었을 적에 기회를 틈타 적을 섬멸하였으니, 지극한 기쁨이요 행운입니다. 수급을 베고 포로를 사로잡은 많고 적 은 군공을 뒤에 기려주시고, 대조(大朝)에 장계로써 아뢰어 주십사 하기에, 이러한 내용을 적어 전달합니다.
만력 22년 3월 24일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도원수 신 권
2019/12/30.군사편찬연구소.정탁.임진기록
전날 투항한 왜인 요질기(要叱其) 등 4명은 조총을 쏘면서 마음을 다해 전투에 임했는데, 왜적은 부상당한 자가 많아지자 어쩔 수 없이 패퇴하였습니다. 밤새도록 진영을 짜던 차에, 요질기로 하여금 몰래 밤을 틈 타 적을 놀라게 하는 계책을 세우게 하였으나, 왜적이 불을 밝혀 놓은 채 잠들지 않고 있어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요질기 와 다시금 모의하여 적진에 잠입한 다음 적들을 유인해 내자고 하였 습니다. 같은 날 밤 삼경에 조총 잘 쏘는 자 5백 명을 적진으로 보내 유인해냈거늘, 만분의 일의 요행이라도 시험해 보고자 요질기 및 앞 서 온 왜인 세 명, 도합 아홉 명이 선봉대가 되어 새벽녘에 적진 옆 까지 접근했습니다. 이에 적의 무리가 행군하자, 방어사 및 권응수· 권황(權滉) 등이 합세하여 군대를 인솔하여 돌격하고, 요질기 등이 조총을 일시에 발사하자, 적의 무리가 놀라 당황하여 허겁지겁 도망 하던 차에, 고언백·홍수남·박의장·김태허(金太虛)·정대임(鄭大任) 등까지 싸우러 와서 담티재까지 추격하였습니다. 이에 적의 기세가 궁지에 몰리자, 붙잡혀 있던 포로 330여 명과 소와 말 20여 마리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져 다 체포하지는 못했습니다. 투항한 왜인 요질기 등이 힘을 다해 싸운 공로는 지극히 가상합니다. 접전하던 경과의 대략을 달려가 보고했으며, [그때 보낸] 첩정 또한 있습니다. 일전에 김응서 등이 왜적과 맞붙었을 적에 기회를 틈타 적을 섬멸하였으니, 지극한 기쁨이요 행운입니다. 수급을 베고 포로를 사로잡은 많고 적 은 군공을 뒤에 기려주시고, 대조(大朝)에 장계로써 아뢰어 주십사 하기에, 이러한 내용을 적어 전달합니다.
만력 22년 3월 24일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도원수 신 권
2019/12/30.군사편찬연구소.정탁.임진기록
요질기가 요시키 정도 되려나
잘모르겠음 주석에 의하면 선조가 치하했다 이런 내용만 있음
항왜가 잘 싸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