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6세기 중반에 발생한 고구려 귀족의 내분, 그리고 내분이 낳은 상당히 기형적인 귀족연립정권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고구려의 귀족연립정권은 대대로부터 조의두대형까지의, 그러니까 조야하게 비유해보자면 1등급에서 5등급을 오가는 인사들로 구성된 회의체에서 국가의 주요 정무를 결정하고, 이중에서 가장 높은대대로가 국정을 총괄하는 정치체제를 이르는 말입니다.
'엥? 삼국은 초기부터 고구려는 제가 회의, 백제는 정사암 회의, 신라는 화백 회의가 있었는데 그거랑 뭐가 다름?'하고 반문하실 분들도 있겠는데, 이런 기존의 회의체들과의 차이점은 귀족연립정권이 발생하기 직전에 나타난 고구려 귀족 내분 사료를 보시면 아실수 있을겁니다.
'대대로는 그 관 중에서 으뜸으로서 1품에 해당하며 국사를 총괄한다. 3년이 임기이며, 그 직을 잘 수행한 자는 임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대대로를) 교체하는 날에 혹 서로 승복하지 않으면, 각각 무력을 동원하여 서로 공격해 이긴 자가 대대로가 된다. (그때) 왕은 궁문을 닫아 걸고 스스로를 지킬 뿐이며, 능히 사태를 제어하지 못한다 (구당서 고려전)'
... 막장입니다. 왕은 궐문 닫고 방관이나 하고있고... 에효.
대대로를 조금 익숙한 용어로 비유해보자면, 수상 내지 재상이 되겠지요. 자아... 재상직을 놓고 귀족들끼리 지들 사병을 끌고 투닥댑니다. 이런게 그리 멀쩡한 국가가 가진 모습은 아니죠. 물론 대대로가 교체될 때 귀족들 간에 합의하지 못할 때마다 이러한 내분이 벌어진 것은 아닙니다. 상당히 특수한 상황에서 딱 한번 벌어진 일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분이 귀족연립정권 발생 직전에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544년, 왕위계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안원왕의 병세가 위중해졌습니다. 그러자 둘째 부인의 외가(추군)와 셋째 부인의 외가(세군)가 충돌했습니다. 여기까진 이해가 가능합니다. 왕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얼마 안가 즉위할 새로운 왕이 누가 될것인가를 두고 투닥대는건 왕정국가인 동시에 귀족가문이 존재하는 전근대 국가라면 으레 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게 무력 충돌로까지 이어집니다. 내전이죠. 슬슬 막장의 향이 풍기기 시작하네요. 여하간, 두 세력은 치열하게 싸웠고, 3일간의 전투 끝에 추군의 승리로 끝나고 양원왕이 즉위하였습니다.
이렇게 중앙에서는 사태가 일단락되었고, 새로운 왕이 즉위했습니다만 지방에서는 계속하여 내분이 발생하였습니다. 지방세력들은 새로운 왕의 존재에 대해서 승복하지 못한거죠. 이렇게 지방에서 계속 찌그락 째그락대는동안, 기회를 얻은 나제동맹은 고구려를 쳤습니다. 외적이 쳐들어오고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상실하게되는 시점까지도 내분은 지속되었습니다.
추군은 왕위계승분쟁에서는 승리하였지만 이러한 막장상황을 겪으며 다른 정파를 제압하고 권력을 독점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반면 반대파에 속하는 귀족들의 반발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왕권이 멀쩡할리가 없죠. 귀족들을 숙청하고 지방제도를 개편할정도로 강력했던 왕권,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다져놓고 문자명왕이 휘두르던 강대한 왕권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왕권이 개판나고 외적이 쳐들어올때도 정신 못차리고 내분이나 벌이는 이런 상황에서 국제 정세는 다급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오던 북위, 남조, 고구려, 유연의 세력 균형이 깨진거죠. 북위는 북제와 북주로 분열하며 중국의 질서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남조는 뭐 남조왕조들이 늘 그래왔듯 에헤라 부어라 마셔라! 너 숙청! 너 암살! 하며 역사에 길이 남을 추태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과 별로 다를게 없었죠.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못할지도 모르죠. 북벌이니 뭐시기 하면서 나름 북으로 나가보려던 그 정신조차 없어졌어요.
물론, 어쨌건 당대까지만 해도 중국의 중심은 화북. 화북의 질서가 뒤바뀌었으니 곧 중국의 질서가 흔들리고 뒤바뀐거죠. 거기다가 돌궐이 발흥하여 유연이 멸망했습니다. 돌궐은 유연보다도 더욱 공격적이었고, 이들은 고구려의 국경에 긴장을 유발합니다. 거기다 고구려에 복속해 있었던 속말부를 지원하여 고구려와 충돌하게 하였습니다.
덤으로 한강을 맛있게 냠남하고 한창 성장하던 신라가 고구려의 뒤를 계속 후리고 있었죠. 게다가 북제, 돌궐, 고구려의 완충지대인 요서지역에서는 거란족을 둘러싸고 그들을 복속시키기 위해 세 세력이이 서로 힘싸움을 벌였습니다.
한마디로, 고구려는 육로로 연결된 모든곳, 서쪽과 북쪽, 남쪽 국경이 장기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던겁니다. 말이 서북남이지 동쪽은 바다라는걸 고려하면 그냥 모든 국경지대가 위협을 받고 있었단거죠. 나라가 이러다가 망할거 같았습니다. 고국원왕대의 위기시대의 재현이랄까요.
그래서 나제 동맹이 한강 털어먹을때도 정신 못차리고 서로 싸우고 있던 잘나신 귀족나리들은 드디어 내분을 중단하고 잠정적인 타협을 하였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귀족연립정권이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멸망까지 쭈우우우욱 지속됩니다. 그나마 왕권이 조금 회복된듯한 고구려 후반에도 연개소문이 영류왕 참살하고 쿠데타 벌이기 전부터 나름 강력한 권력을 휘둘러댄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죠.
3줄요약
1.고구려 왕권 시밤쾅
2.귀족들이 국정 주도 시작
3.연개소문 개새끼
출처: http://blog.naver.com/ak497924/220919406681
지들끼리 안 싸웠다면 고구려가 좀 더 오래갈 수 있었을까
연개소문은 알면 알 수록 씨발새끼인게, 왕권 박살내고 무가정권 세울 생각이었으면 후계 구도부터 제대로 세웠어야 했다는거
자기들끼리 싸우지 않아 한강 유역을 좀더 지키는것도 물론 부가 요소였겠지만, 제일 중요한건 걍 당에게 굴복하고 침공을 받지 않는거겠죠....
구당서 말고 다른 사료들에 기술된건 읎나요
ㄴ구당서를 제외하자면, 아마도 제 기억으로는 일본서기와 대일본사에 있었을겁니다.
수서/양서엔 있었나 없었나 잘 기억이 안나네요...
이게 고구려야 폴리투야 - Ap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