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에 개념글에 암리차르 학살 관련 글이 올라와 있길래 내 부족한 지식으로 조금만 휘갈겨 봄.

암리차르 학살의 정식 명칭은 잘리안왈라 바그 학살. 황금사원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정원인 잘리안왈라 바그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임.

물론 잘리안왈라 바그는 너무 길어서 편의상 지역명인 암리차르로 퉁치는 중이고 앞으로도 암리차르 학살이라고 쓰겠음.

어찌되었든 암리차르 학살을 지휘한 직접적인 지휘관은 레지날드 다이어 준장임.



무려 영국의 인도 통치를 끝장낸 인물이라 평가되는 인물. 1927년 뇌졸중과 동맥경화로 사망한 이 ㅆㅂㄴ의 유언은

"누구는 나를 옳았다고 말하고, 다른 누구는 내가 틀렸다고 말한다. 나는 그저 죽음과, 내가 옳았는가 틀렸는가를 창조주에게서 알고 싶다."


그런데 이 레지날드 다이어 준장이 강제예편 당했을 때 인도 사람들은 기뻐했냐? 전혀 기뻐하지 않았음

왜냐하면 인도인들은 암리차르 학살을 지휘한 다이어 준장은 그저 수족에 불과하고, 진정한 몸통은 따로 있다고 믿고 있었거든.

그리고 앞으로 설명할 이 인물의 행적을 보면 인도인들의 주장이 단순히 견해가 아님.


월 13일 18시 30분에 잘리안왈라 바그에서 시위를 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4월 13일 시크교 최대 축일인 바이사키 때에 사람들은 당연히 황금사원으로 모여들었고 근처에 있는 정원인 잘리안왈라 바그에도 수천명이 운집하였다.

이들은 결의한 대로 사이푸딘과 사티아팔 체포에 항의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정보는 현지 경찰들에 의해 이미 다이어에게 들어간 뒤였고,

예정대로 집회가 시작되고 나서 1시간 후인 19시 30분에 54 시크 연대, 59 신드 소총연대를 동원, 유일한 출구를 봉쇄하고는,

아무런 경고 없이 무차별 사격을 실시하였다. 애초에 다이어가 나중에 증언했지만 다이어는 애초부터 해산이 아닌 학살을 목표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이어는 다음날 3시에 펀자브 총독 대리인 오드와이어에게 전보를 쳤고, 이에 오드와이어는 답신을 보냈다.

"귀하의 행동은 정확하였으며, 총독 대리는 귀하의 행동을 승인함."

더욱 더 골 때리는 일은 오드와이어는 인도 총독 첼름스퍼드에게 암리차르를 비롯한 인도 전지역에 계엄령을 포고할 것을 건의하였고,

인도 총독은 오드와이어의 건의를 기꺼이 승인한다.

화룡점정으로 오드와이어는 다이어가 무슨 짓을 했는가가 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이어의 행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무려 암리차르의 공기를 깨끗하게 했다는 개드립까지 쳐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오드와이어를 변호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양반은 강제예편 당한 다이어와는 달리 책임추궁도 안 당했다.


그럼 이 양반은 다이어처럼 침대에서 뒈짖했느냐?


1940년 3월 13일 런던 캑스턴 홀에서 75세의 오드와이어는 동인도 협회에서 연설을 하던 도중,

1919년 암리차르 대학살 당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이자,

이웃사촌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복수를 맹세하고 무려 21년 동안이나 칼을 갈아온 인도의 안중근 우담 싱에게 참교육 당한다.

우담 싱은 두꺼운 책에 리볼버를 숨긴 다음, 오드와이어를 발견하자 2발을 발사, 전탄 명중하고 오드와이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우담 싱의 암살만을 압축한 동영상인데, 원래 영화상에서는 이런 흥겨운 BGM이 아닌 나름 비장한 음악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