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바로, 이탈리아 왕립해군(Regia Marina) 제1어뢰정전단(Iª Flottiglia Torpediniere) 제13어뢰정전대(XIII Squadriglia Torpediniere) 소속 어뢰정(torpediniera) 키르케(Circe)임. 확인 전과 3척, 추정 전과 4척.
먼저,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영어로는 Torpedo boat로 번역되는 Torpediniere는 어뢰정... 은 맞는데, 조약 상에서 취급이 '일단 구축함은 아닌 등외함' 그런 거였고, 구축함(Cacciatorpediniere)의 축소형에 가까운 함정들이었음. 이런 어뢰정들은 대잠전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기에, 어찌 보면 초계함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물건들. 그렇다고 해서 진짜 초계함(Corvette) 분류는 아니었지만, 체급이나 생김새 등등은 대충 그렇다고.
그러면 진짜 고속정에다가 어뢰 두 발 달아놓은, MTB 내지는 PT보트 같이 생긴 놈들은 뭐라고 불렀나? 하면, MAS, Motoscafo Armato Silurante라고 불렀음. Decima Flottiglia MAS가 바로 "제10고속정전단"이란 뜻.
그러면 키르케는 대관절 뭐 하는 함종이었냐 하믄, 스피카(Spica)급 어뢰정의 알치오네(Alcione)형 생산분에 속하는 함선이었음. 대강 스펙을 열거해 보면,
기준배수량 670톤, 만재배수량 1050톤.
전장 81.42m, 전폭 7.92m, 흘수 2.96m.
추진 1,9000 마력 *2.
속력 34노트.
항속거리 15노트 기준으로 1910해리.
승조원 사관 6명, 부사관 및 사병 110여명.
무장
- 100/47 OTO Mod.1937 양용포 3문.
- 13.2mm Breda Mod.31 대공기관총 8문. (2연장 포대 4문) -> 이후에 20/65 Mod.35 대공포로 교체함.
- 450mm 어뢰발사관 4문.
- 폭뢰 발사대 2대.
- 기뢰부설장비. (기뢰 20발 적재)
사이즈의 쉬운 비교를 위해선, 동시대인 대전기 영국 왕립해군의 플라워급 초계함 배수량이 925톤이었고, 국군의 포항급 초계함 배수량이 1220톤임. 대전기보다 현대에 갈수록 동급 함정의 체급이 상승한 거 고려하면, 딱 안정적으로 '초계함' 체급으로 분류될 만한 함정임. 실제로 스피카급 두 척을 구매한(아스토레->레무스, 스피카->로물루스) 스웨덴 해군의 두 척은 한동안 스웨덴 자체적으로 구축함 취급을 받다가 나중에는 초계함으로 분류되었고.
여튼, 이런 배경을 가진 스피카급 '어뢰정' 키르케는 안살도 조선소(Cantiere Ansaldo)에서 1937년 9월 29일 건함을 시작, 1938년 6월 29일에 진수됨에 이어 1938년 10월 4일 취역했음. 이탈리아가 개전할 당시엔 자매함 클리오(Clio), 칼립소(Calipso), 칼리오페(Calliope)와 같이, 메시나에 기지를 둔 제13어뢰정전대의 구성원이었고. 1940년 6월 10일 - 7월 동안 키르케의 함장을 맡은 알도 로시(Aldo Rossi) 중령(capitano di fregata)은 전대장을 겸하기도 했음.
1940년 6월 16일 1900시 경, 알도 로시 중령이 지휘하는 13전대 기함 키르케는 폴루체(Polluce), 클리오, 칼리오페와 함께 대잠초계에 나서고, 적 잠망경을 포착 후 폭뢰로 교전, 폴루체가 대량의 부유물이 수면에 떠오르는 걸 포착할 때까지 집요한 공격을 가함. (키르케 19발, 클리오 13발, 칼리오페 10발, 폴루체 19발)
이때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잠수함은 영국 해군의 HMS 그램퍼스(Grampus)로, 찰스 로우(Charles Rowe) 소령의 지휘 하에 첫 전투초계에 나선 참이었음. 시라쿠사 동쪽 105마일 해상에서 승조원 59명과 함께 전손되었는데, 여기엔 불분명한 요소가 섞여 있음. 1940년 6월 18일에 이탈리아 잠수함이 인근 해역에서 뇌격 시도를 당했다는 증언이나, 알도 로시 중령 본인이 적함의 격침을 확신하지 못했다거나...
1941년 7월 17일, 토마소 카푸티(Tommaso Caputi) 소령(capitano di corvetta)이 지휘하는 키르케는 상선 메네스(Menes)를 호위하러 트리폴리 군항을 떠났음. 7월 20일, 선단은 시칠리아 해협에서 적 잠수함의 뇌격을 받았음. 1120시에 어뢰 항적을 포착한 키르케는 어뢰를 회피한 후 7발의 폭뢰 공격을 가했고, 이탈리아 항공기가 날아와 3발의 폭뢰를 추가로 투하함. 곧 수면에 기름과 공기방울이 떠오름. 판텔레리아 남서쪽 약 25마일 지점에서 침몰한 이 잠수함은 로버트 갤로웨이(Robert Galloway) 대위가 지휘하는 HMS 유니언(Union)이었음. 이건 확실한 전과 1.
1942년 2월 12일, 스테파니노 팔마스(Stefanino Palmas) 소령이 지휘하는 키르케는 타란토 곶에서 호위임무 중, 호위대상을 크로토네로 입항시킨 후 크로토네-푼타알리체 사이 해역 대잠초계를 수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는 HMS 우나(Una)가 이탈리아 유조선 루카니아(Lucania)를 격침시켰기 때문이었음.
2월 13일 0302시, 키르케는 크로토네 동북 해상 30마일 지점에서 이오니아해를 초계 중이었던 HMS 템페스트(Tempest)와 맞닥트렸음. 윌리엄 카바예(Wiliam Kavaye) 소령이 지휘하는 템페스트는 이탈리아 전투함을 포착하고 긴급히 잠수했지만, 키르케는 0315시에 음탐장비(Ecogoniometro)로 적함을 포착, 0332시에 1차 폭뢰공격을 시도했음. 이어서 키르케는 해가 뜰 때까지 템페스트 인근에 머무르며 다시 공격하지 않았는데, 깜깜하고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한정된 폭뢰를 정확히 투발할 수 없기 때문이었음.
0716시, 키르케는 2차 폭뢰공격을 가했고, 수면에 기름이 올라왔음. 이어서 0755시, 0917시의 폭뢰공격은 템페스트를 크게 손상입혔고, 잠수함은 0945시와 0948시 사이 강제로 부상했음. 영국 잠수함 승조원 대부분은 차례로 퇴함했지만, 일부는 덱 건으로 응전을 시도했고, 이에 키르케는 기총소사를 가하는 한편으로 100mm 함포 총 9발을 사격해 적의 응전시도를 저지했음.
모든 영국 선원이 퇴함한 후, 키르케는 템페스트를 나포하려 시도했지만, 승선 시도는 거친 풍랑으로 좌절. 그래서 격침 처분시키려고 했는데, 열몇 발의 포탄을 쏴도 잠수함이 안 가라앉았음. 그래서 최후로는 예인해서 나포하는 걸 시도. 그런데 키르케의 선원 둘이 템페스트에 기어올라가서 예인 케이블을 묶던 바로 그 때, 템페스트가 기울면서 가라앉기 시작했음. 키르케의 선원들은 서둘리 헤엄쳐서 복귀했고, 템페스트는 그대로 침몰. 영국 승조원 62명 중 생존 장병 23명은 키르케가 내려 준 구명정에 탑승하여 포로가 되었음. 이것도 확실한 전과 2. 특히나 적 잠수함의 생존자가 있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확실한 전과였음.
1942년 2월 21일, 이탈리아 왕립해군의 K.7 작전 도중, 키르케는 구축함 마에스트랄레(Maestrale), 피가페타(Pigafetta), 페사뇨(Pessagno), 우소디마레(Usodimare), 시로코(Scirocco) 등과 함께, 코르푸에서 트리폴리로 항해하는 선단의 호위를 맡았음. 2월 23일 1014시, 미스라타 곶 북서쪽 해상을 14노트로 항해하던 키르케는 음탐에 46도 방향, 1800미터 거리의 접촉을 보고함. 18-20노트로 가속한 어뢰정은 100미터 거리에서 적 잠수함의 잠망경을 발견하고, 16노트로 적함을 지나치며 70미터 심도로 설정한 폭뢰 6발을 투발했음.
공격에 당한 HMS P38의 함장 롤랜드 헤밍웨이(Rowland Hemingway) 대위가 1032시에 부상 명령을 내리자, 페사뇨와 우소디마레가 전투에 끼어들며 자기네들 폭뢰를 추가로 던지고 기관총을 쏘아댔음. 그런데 애꿎은 아군오사로 이탈리아 수병 한 명이 전사했고... 그 사이에 HMS P38은 손상을 추스리고 다시 잠항해 버렸음. 혼란이 멎은 후에 다시 적함을 추적한 키르케는 이번에는 75미터 심도로 설정한 폭뢰 11발을 던졌고, 1040시에는 P38이 치명상을 입은 채, 무려 45도 기운 상태로 수면에 떠오른 후 빠르게 침몰함. 키르케는 적함의 침몰 해역에서 격침을 확정짓기 위해 1시간 30분 가량을 추가로 대기했음. 이것도 확실한 전과 3.
1942년 11월 26-27일의 밤, 키르케는 팔레르모 인근 해상에서 리비아행 선단을 호위하는 중이었고, 통상적인 수칙대로 등화관제를 실시한 채 지그재그 기동을 하고 있었음. 그런데 팔마스 소령이 자는 사이에 함교 당직사관이 항로계산을 잘못해서, 근처에서 불 끄고 항해하던 가장순양함 D2, 치타 디 투니시(Città di Tunisi)랑 추돌사고를 냄.
오천 톤 넘어가는 전직 여객선한테 들이박힌 어뢰정따리는 거의 반으로 갈라졌고, 순식간에 우현으로 급격히 기울더니 수 분 내로 굉침했음. 최종 위치는 카스텔라마레 델 골포 북동쪽 40마일 해상. 팔마스 소령을 포함한 승조원 65명이 사망했고, 남은 생존자들은 구축함 폴고레(Folgore)한테 구조됨. 끗.
개추
수훈함인데 결말이 탱이랑 비슷하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