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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미합중국의 민병대는 고향에 가까울수록 더 잘 싸웠다는 것이 종래의 상식이었다.

다른 곳이 아닌 자신의 고향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반만 맞는 말이었다.


분명 같은 동네 불알친구들로 이뤄졌던 벙커힐의 뉴잉글랜드 민병대나, 프린스턴 전투에서의 필라델피아 민병대는

영국군의 베테랑 장교들조차 "유럽에서 봤던 최강의 화력에 맞먹는 포화인데, 대체 저 오합지졸들이 어떻게 버티는거냐?!" 고 경악할 정도로 굳세게 버텼다.

같이 저녁을 먹던 이웃들을 서로 지켜주고, 서로에게 자기가 얼마나 사나이다운/지 보여주겠다는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 특히 식민지인들이 정착한 역사가 아직 오래되지 않은 남부 식민지 민병대들은

서로 본 적도 없는 어중이떠중이들로 이뤄졌기에, 알지도 못하는 잡놈들과 대열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맞대봤자 그 어떤 애착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에 가까워지면, 오히려 코앞에 그리운 집이 있는데 죽을지도 모르는 전투를 벌이기 싫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포화만 받았다 하면 애들이 바닷가에 쌓은 모래성도 이것보단 더 잘 버티겠다 싶을 만큼 와르르 무너졌다.

거의 모든 대륙군 장군들은 휘하 민병대는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미국실각데차악을 외치며 탈주할 거라는 것을 아예 전제로 작전을 짜야 했다.

그리고 그럭저럭 믿을 만한 뉴잉글랜드와 필라델피아 민병대의 용사들도

내가 탈영을 한 것도 아닌데, 허락 좀 안 받고 부대를 나와 집에서 볼일 좀 보고 온 게 대체 왜 잘못인지 이해 자체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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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독립군 민병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립선언의 이상을 자기 딴에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셈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다른 이들과 평등한 자유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지휘관인 장교들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서 자유인의 권리를 행사하기를 고집했다.

그들은 자신이 자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짧게 복무했고, 마음내킬 때 야영지를 떠났으며, 장교들의 지시를 억압으로 여겨 멸시했다.

특히 그들은 '자유롭게' 도망치려 할 때, 상관의 죽기로 싸우라는 명령을 몹시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내킬 때마다 부대를 멋대로 드나들고 심심해서 총질을 해대는 민병대를 보며, 독립군 정규부대는 꾸역꾸역 짜증을 참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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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미국 독립군의 정규군 - 대륙군은 영국군처럼 세련되고 정에한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1778년 몬머스 전투를 기점으로는 거의 영국군 못지않게 인상적으로 포화를 버텨내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두려움을 견디고 인내했으며, 패배하고 퇴각할지라도 제 발로 다시 모여 부대를 재건했다.


분명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대륙군 병사들의 절대다수는 군 복무 대신 돈을 헌납하고 면제받은 이들 대신 입대했거나,

아니면 입대 보상금과 제대 후의 토지 분배 약속을 노린 사회의 하류층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들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수가 독립의 이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프로이센 출신 교관 폰 슈토이벤 남작은 대륙군을 훈련시키면서, 그들이 유럽 군대와는 한 가지 면에서 아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명령을 받았을 때,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명령을 받으면 기계처럼 시키는 대로 하는 유럽 병사들과는 달리

대륙군은 이유를 물어보고, 타당하다고 납득한 뒤에 실천했다.


1779년 말부터 1780년 초까지의 혹독했던 겨울에, 대륙군은 전우 외에는 서로 기댈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이 당시 그들은 모리스타운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겨울 동안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불만은, 그들이 영광스러운 대의를 위해 스스로 '순교자'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변해갔다.

민병대보다 훨씬 긴 복무기간, 자신들보다 훨씬 상류층 출신인 장교들이 표하는 경의, 민병대 참피새끼들에게 느끼는 경멸과 우월감 등이

대륙군으로 하여금 천천히 그들 나름의 자긍심을 키워가게 했다.


그들의 새로운 조국이, 그들을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대륙의회가 그들이 온몸이 굳을 것 같흔 추위 속에서, 쫄쫄 굶으면서 거적데기를 덮어쓰고 떨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에서 저 거만한 레드코트 놈들의 무시만큼은 절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독립의 이상을 위하여, 승리의 그날까지 임무를 완수할 터였다.

도시와 마을에 머물러 있는 민간인들이나, 민병대 참피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오직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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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워싱턴 총사령관은 그들이 대의를 따르기에, 이 전쟁이 자유인 대 용병들의 싸움이 되었노라고 끊임없이 휘하 병력들에게 상기시켰다.

1776년에 그가 말하였듯이, 그들은 '자유의 축복'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사나이답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유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멍에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자유를 위한 용기, 명예, 용맹 등은 21세기 사람들에게는 오글거리는 단어일지 모르지만

18세기에는 남자다움의 증명으로 잘 먹혀들었다.

입대 보상금 몇 푼 때문에 군복을 입었던, 평생 가난하고 소외받아온 이들은

밀집대형 속에서 전우들과 나란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도 명예로운 사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지를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전우와 명예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 옥스퍼드 미국사 "위대한 대의 : 미국 혁명"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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