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에 있었을 당시, 임시정부 거처가 집중 폭격 구역 근처라 폭격을 두들겨 맞으며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2. 백범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몇 달 동안 배 위에서 생활했다.


3. 도산 안창호 선생의 호 도산은 하와이이다.


4. 유관순 열사가 주도자 중 하나였던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 시위는 3월 1일로부터 한 달 뒤인 4월 1일에 이뤄졌다.


5. 의열단의 지휘자였던 김원봉 선생은 제 2차 세계대전 말엽엔 한국 광복군 소속이었다.


6. 몇몇 아일랜드인들이 외국인 신분을 이용해 독립운동을 돕기도 했다.


7. 윤동주 시인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리 식염수 마루타 실험으로 숨졌다.


8. 이육사 시인은 일본 유학 당시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굳혔다.


9.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들과 함께 스딸린에 의해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다. 


10. 리틀보이 선생은 실제로는 몸무게가 4400kg에 달하는 거구였다.


11. 무다구치 렌야 장군은 적진으로 침투해 한국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보다 더 많은 수의 영연방군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