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감사 민성휘는 1월 22일 7000여명의 근왕군을 규합, 진군했으나 북병사 서우신과 함경감사 민성휘 사이에 지휘권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다.

서우신은 곧장 남한산성으로 진군할 것을 주장했지만 민성휘는 양평의 김자점과 합류한 후에 세력을 키울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민성휘의 의견을 따라 함경도 근왕군은 양평으로 향했지만, 도원수 김자점은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북변의 오랑캐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정예병이었던 함경도의 군사와 중앙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강원도 근왕군의 패잔병또한 합류한 양평의 군세는 2만 3천에 달했지만, 김자점은 결국 군사를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전쟁에서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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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 2만3천이나 되는 병력을 모아두고 아무것도 안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