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 말부터 계엄령이 선포된 5월 20일까지 천안문 광장에는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민주화와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단식투쟁에 참여하였고
이것에 자극받은 시민들이 천안문 광장으로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하이등의 지방도시등에서도 동조 시위가 일어나고 베이징으로 자유와 민주화를 원하는 인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일부 공안들도 그들의 움직임에 동참 할 정도로 이들의 요구는 중국 인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기자: 어디가세요?
중국 시민: 시위하러 천안문 갑니다.
기자: 왜요?
중국 시민: 제 의무니까요.
그들은 그 곳에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자유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인민의 열망은 뜨거웠다
하지만.....
덩샤오핑을 위시한 지도부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군을 이용하여 강경 진압을하기로 결정한다.
항쟁을 상징하던 자유의 여신상은 파괴당하였고
"목이 잘릴지언정 역사의 죄인은 될 수 없다."
진압을 맡은 38군단장 쉬친셴 장군은 이러한 부당한 명령에 항명하였고
항명죄로5년동안 수감생활을 했고, 공산당 당적도 박탈당하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천안문항쟁의 진압을 거부한 일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할 일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 후회도 없다”
"비록 역사의 공신은 못됐지만, 역사의 죄인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항쟁에 동참한 일부 인사들 중에서 변절자가 나오기도하였다.
1989년 당시 천안문 응원 콘서트를 연 성룡
영웅으로 죽든가... 악당이 될 만큼 오래 살아남던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안문항쟁은 실패한 혁명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천안문에서의 항쟁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그들의 외침이 결코 헛 된 것 만은 아니었다.
아직도 홍콩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의 뒤를 따라서 자유와 정의의 갈림길에서 역사의 현장 앞에 서있다.
나라에 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비록 클지라도 반드시 망할 것이요,
사람에게 착한 뜻이 없으면 힘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상하고 말 것이다. - 화남자
천안문을 기억하라
천안문항쟁
1989년 4월 15일 ~ 1989년 6월 4일
참조 - 나무위키 천안문항쟁 문서등
https://namu.wiki/w/%EC%B2%9C%EC%95%88%EB%AC%B8%206.4%20%ED%95%AD%EC%9F%81
시진핑핑이....
자오쯔양 저사람 일화가 인상깊더라. 강경진압에 계속 반대하다가 북한에서 출장 갔다오자마자 사태 심각한거알고 차기 권력 1순위도 포기하고 설득하려 했다더라고
그도 그럴께 출장간 동안 맡겨놓은새끼가 강경진압 당내부에 언플 다해놓고 전차 시동까지 다 걸어놓을줄은 지도 몰랐겠지 ㅋㅋ
중국이 저랬는데, 북한은 어땠을까... - dc App
역사는 반복됨 의가 없는 국가는 강성해도 쳐망한다. 꼭 지는 다를 줄 알고 깝치는 새끼들때문에 반복되는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