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 일은 볼펜의 날입니다. 볼펜의 발명가는 헝가리 기자 Laszlo Biro입니다. Biro는 노트를 쓰는 동안 만년필을 사용했고, 페이지를 넘길 때 건조되지 않은 잉크가 묻을 때마다 짜증이 났습니다.

부다페스트(Budapest)인쇄소에서 Biro는 빠르게 건조되는 인쇄용 잉크를 보고 이를 만년필에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만년필에서 해당 잉크는 흐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펜촉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에 Biro와 그의 형제는 새 펜을 디자인하여 펜촉을 볼베어링으로 교체했습니다. Biro는 1938 년 6 월 15 일에 영국 특허를 신청했습니다.

제 2 차 세계 대전 중, Biro 형제는 나치스에서 도망쳐 아르헨티나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영국 사업가 헨리 마틴 (Henry Martin)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펜이 영국 공군의 흥미를 끌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버크셔 항공 (Berkshire Aviation) 박물관에 따르면
당시 마틴은 높은 고도에서 일반적인 만년필의 경우 펜촉에서 잉크가 누출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는 비행 중 비행 기록을 작성해야 하는 RAF 파일럿들이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Martin은 영국 공군에 세 개의 Biro의 시제품을 보냈습니다. 3개월 뒤에, 마틴은 미 육군항공대 대표를 만났습니다. 미국인들은 볼펜 제조에 동의했습니다. 마틴은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고, 여전히 영국 공군에게 시제품을 보여주기를 원하여 마침내 공급 및 항공기 생산부서의 부서장을 만났습니다. 시제품은 펜 생산을 제안한 영국 항공기 디자이너 인 Miles Aircraft Ltd.의 Frederick George Miles에게 보여졌습니다. 버크셔 항공 박물관 (Berkshire Aviation museum)은 당시

"영국 정부는 항공기 제조에 필요한 자재와 인력이 더 우선이라는 이유로 볼펜의 제조를 사절했다."

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회담이 있은 후, 영국 노동부는 RAF를 위해 마일즈 항공유한회사 (Miles Aircraft Ltd.)에서 17 명의 비숙련 소녀들이 펜을 생산하도록 허용하기로 동의했다. RAF는 비행 도중 항공기 파일럿들의 비행 기록을 위해 Eterpen으로 알려진 30,000 개 이상의 Biros 볼펜을 주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게 아마 최초로 볼펜이 대량생산된 사례일거에요.
이때까지만 해도 볼펜은 엄청 신기한, 갓 발명된 필기구였고 당시만 해도 대중적이지 않았으니까요.

의외로 볼펜이 만년필보다 필요한 기술수준이 높고, 가격적으로도 당시엔 만년필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어요.

1960년대가 넘어가야 볼펜이 대중화되고 가격면에서 만년필을 완전히 압도하게 됩니다.

어쩌면 가격도 비싸고, 옛날에 쓰던 것과 판이하며, 갓 발명되어 기술적으로도 완전하지 못했던 필기구가 RAF에 의해 살아난 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