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의 해군 장교 집안에서 태어난 야르니치(Vladimir Yarynich)는 레닌그라드군사통신학교를 졸업한 후 막 독립적인 군대로 창설된 전략로켓군의 제1 대륙간탄도미사일 사단에 복무했다.


초창기 소련 핵전쟁 프로그램의 통신은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부대에 명령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렸는데 그 이유는 지휘소에서 특별 암호 봉투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특별 암호 봉투에는 핵전쟁 발발시 무선 통신에 사용할 새로운 주파수와 호출 부호가 들어가 있었다.)

소련 참모본부에서 모놀리트(Monolit)라는 시스템으로 각 미사일 사령부에 명령을 하면 지휘소에서 저 봉투를 개봉하는 순서였는데

야르니치에 따르면 운 나쁜 당직 장교가 긴장으로 손을 심하게 떨어 가위로 봉투를 신속하게 개봉을 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가위를 사용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여 곧 통신 교환사가 봉투의 끈을 당아잡겨 여는 방식으로 바꿨다.


1962년 10월 말 그는 시베리아의 니즈니타길 근처의 로켓 사단을 감독하는 임무를 받고 통신 장교로 파견되었다.


그 당시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정점에 치달았을 때인데 통신병들은 상부로부터 '브론토자브르라니'(브론토사우루스의 러시아어)라는 암호를 수신했다.


이 단어는 지휘 시스템을 평시에서 전투 경보 상태로 전환하라는 신호였다.


야르니치는 물론 그 부대의 대령도 이런 발송 받아본 적이 없었다.


야르니치는 이 메시지가 훈련이 아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지만, 그 부대의 미사일들은 연료가 채워두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곧바로 발사할 수는 없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스위치를 전투 경보로 바꾸었다.


야르니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장교, 징집병, 여자 교환사등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얼굴에 신경 불안과 경악과 고뇌로 뒤섞여 있었다"


그 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종료한 후 소련 지도자들이 신세대 미사일 구축에 자원을 쏟아부음에 따라 핵무기 지휘 통제 문제는 점점 커졌다.


출처:데드 핸드:레이건과 고르바초프, 그리고 인류 최후의 날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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