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5416&_rk=96k&exception_mode=recommend&page=1
2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5516&_rk=96k&page=1
원문:https://www.marines.mil/Portals/1/Publications/The%20Sea%20Services%20in%20the%20Korean%20War%201950-1953%20%20PCN%2019000412100_1.pdf?ver=2012-10-11-164123-027
제목: The sea service in the Korean War
챕터 12 원산 포위전
원산의 내항을 가까운 거리에서 적극적으로 포위하는 데는 위험이 따랐다. 첫번째로, 이 항구는 육지로 둘러싸여 있었고, 따라서 모든 방향에서의 적 사격이 예상됐다. 둘째로, 옛 기뢰밭이 아직도 남아있었고, 공산군이 1950년 12월 이래로 기회가 되는대로 소해가 완료된 지역들에 다시 기뢰부설을 했을 거라고 예상하는 게 타당했다. 아마도 널려있는 작은 목선으로 은밀하게 밤에 부설했을 것이다. 셋째로, 원산 포위는 제한된 항해 때문에 위험이 따랐다. 기뢰 뿐 아니라, 많은 섬들과 여울들이 항해와 포 운용을 어렵게 했다.
한편으로, 원산을 포위하고 섬들을 점거하는 데는 많은 이점이 있었다. 첫째로, 전선에 지원되거나 다른 곳에 쓰일법한 적 병력들이 제 2전선이 만들어지는 걸 막기 위해 분산될 것이었다. 둘째, 원산의 기뢰밭을 점유하고 소해함으로써 유엔군이 언제든지 침공할 수 있었다. 원산 북쪽으로의 유엔군의 어떤 작전이건 육군의 물류를 위한 (역자:남한 지역의 항구를 뺀) 다른 항구의 개척을 필요로 할 것이었다.
셋째, 이미 언급된 대로, 원산시는 한반도 동북쪽과 전선을 잇는 공산군의 철도 및 도로교통의 대동맥이었다. 북한 유일 동서철도의 종착지기도 했다. 함포 사격으로 주요 교통로를 타격할 수 있었다. 넷째, 항구를 묶어둠으로써, 북한 최고의 항구가 제대로 기능이 정지될 것이었다; 그곳의 어업도 항구 근처 섬 중 하나에 검문소를 설치하면서 제어하에 둘 수 있었다. 다섯째, 항구 자체가 적에 대한 첩보와 게릴라 작전을 수행하는 데 효과적인 기지로써 기능할 수 있었다. 여섯째(이 이유는 작전 시작 당시엔 명확하지 않았으나), 원산항은 아군 조종사들의 탐색 및 구출에 중요한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중심 항구를 포위하고, 그곳 섬들을 점거하고, 그곳의 군사 목표에 포격을 가함으로써 공산군의 전의를 떨어트릴 수 있었다. 유엔군에게 있어서 좋은 심리적인 가치였다.
이것들이 원산을 포위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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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트는 짧음. 사실 대부분 군붕이들도 짐작할 만한 원산 포위의 어려움과 이점 나열이다.
서해 5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 본토 코앞 섬이 적 땅이면, 그것도 점령 시도조차 못 할 만큼 해군력 격차가 큰 상황에서 그렇다면 엄청난 골칫거리임. 여길 제대로 점유하고 해안포 포대만 제대로 설치해도 원산은 항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될 수준이지.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