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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298226&_rk=JRL&search_head=110&page=1
원문:https://www.marines.mil/Portals/1/Publications/The%20Sea%20Services%20in%20the%20Korean%20War%201950-1953%20%20PCN%2019000412100_1.pdf?ver=2012-10-11-164123-027
원산 포위가 시작됐을때, 원산만에 적 해안포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포위가 길어지면서 포 숫자가 조금씩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적의 해안 방어체계는 처음에는 한계가 많았지만 점점 강화되기 시작했다. 유엔군 소해가 해안 더 근처에 "브로드웨이"와 "로워 브로드웨이"를 뚫어놨음에도(역주:소해 영역이 은근 넓었다는 비유인듯) 이 소해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을 포함한 점점 많은 지역들이 요새화되기 시작했다. 해안 요새화는 적들이 유엔군이 상륙할 만하다고 생각한 다른 지역들에서도 진행됐다. 원산시 인근 해변이나 만 남쪽 해안, 그리고 나중에는 만의 서쪽 부분까지도.
공산군의 해안포대는 우리 함선들의 작전지역을 사거리에 넣고 상륙 가능성이 있는 지점을 타격할 만한 위치에 들어섰다: 중기관총과 박격포들은 상륙 가능 해변들 근처에 배치됐고, 76mm포 포대들은 근처 언덕 위에 들어섰다. 항구의 중포(122mm와 155mm들)은 해안가에서 좀 더 멀지만 우리 함선들의 작전 영역을 사거리에 넣을 만한 위치에 배치됐다.(역자: 동구권은 152mm를 쓸텐데 왜 저자는 155mm라고 언급했지?)
포위전의 초기 몇달 간 적 포대들은 다음과 같이 위치했다:
모든 항구의 포들은 함포를 지상으로 옮기거나 고정해안포가 아니라 야포 형태였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이들 포들은 동굴(역자:참호?)이나 터널(역자:갱도?) 안에 숨겨져 있고 잘 위장되어 있었으며 밖으로 나와 포격하다가 다시 방호를 위해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공산군이 노출된 포들은 반드시 파괴된다는 사실을 빨리 배웠기 때문이다.
전투 초기 몇달, 확연하게 상당한 수의 포진지, 참호, 터널들이 텅텅 비어있었다. 가능성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한 지역의 전투가 너무 격렬할 때 그곳의 포들이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이다. 둘째, 아군 항공기나 함선이 빈 포진지에 화력을 낭비하는 걸 유도했다는 가능성이다. 하지만 포위전 2년차가 되자 빈 자리에도 포들이 속속 배치되면서 빈 포진지는 거의 사라졌다.
"원산 지역 바다 근처의 저지대 포대들은 입구가 하나였습니다." 여도에 배치된 정보장교 제임스 S. 램프 대위가 말했다. "입구는 포 자체의 출입구였고, 최대한 작게 만들어졌습니다. 일부 포 갱도들(대부분 대구경포들의) 만이 운용병들을 위한 출입구가 따로 있었죠. 이 출입구들은 우리의 포격에 노출되는 일 없이 운용병들이 배치되도록 언덕의 반대편에 나 있었습니다."
"중포 진지들은 탄약고와 운용병들의 공간으로 쓰이는 큰 방들이 딸려있었습니다. 공산군은 탄약과 운용병들을 같은 공간에 두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야포들과 더불어, 우리 포위 함선들을 상대로 쓰이는 다른 두 종류의 포들이 있었습니다: 전차포와 열차포였죠."
"전차들은 만의 여러 곳에 배치됐지만, 갈마각에 있는 "설탕 산"이라고 불리던 작은 언덕의 전차호들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었고, 다른 갈마각 지역에도 있었습니다. 두 전차호들은 잘 준비돼서 전차들이 언덕 하단의 '포문'을 통해 사격할 수 있었죠. 전차 자체가 노출된 적은 없었지만, 포신이 포문에서 튀어나와있는 게 보일 정도로는 앞으로 나와있더군요. 다른 전차가 가끔 사격을 위해 '설탕산' 북쪽을 돌아다녔는데, 아군의 포격을 받을 때마다 재빨리 후퇴하더군요."(역자: 설탕산은 아마 미군이 붙인 별명 같은데 왜 이런 별명이 붙었나는 모르겠음.)
" 1951년 후반기에, 열차포 4대가 원산만에 나타났습니다. 3문은 해변 근처 북쪽에 있었는데, 이놈들도 참호로 숨는 게 가능했죠."
"원산에서 우리 쪽 섬들로 도망친 피난민들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르면, 항구를 방어하는 포들은 전부가 북한군이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중공군이 포를 한문이라도 운용하는지 의문이었죠. 북한 육군 부대들이 대부분의 포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호도 반도쪽의 일부 포들만 북한 해군 부대들이 운용했습니다."
"그들의 포격 절차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들은 우리 함선들이 회피기동을 할 공간이 부족해서 그들의 포격이 명중하기 적절한 곳을 노렸습니다. 많은 놈들의 포진지에서, 공산군은 한 원을 단단한 땅에 그리고 그 안에 포바퀴가 안정적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원 근처 여러 장소를 조준점으로 재빨리 설정했습니다. 빨갱이 포병들은 협력을 배웠는데, 심지어 넓게 분산배치된 각 포대간의 협력 절차도 설정할 줄 알게 됐습니다. 놈들의 유도 초소는 좌표용 칠판이 있었고 놈들의 화력통제실에 (포탄의) 화염 정보를 보내기 위해 전화를 갖추고 있었습니다.(역자:전화를 왜 쓸까. 무전기 상황이 엄청 열악했나?) 화력통제실은 좌표수정을 위한 계산을 했고 그걸 전화로 포대들에 전달했죠. 빨갱이들한테는 자동화된 기계나 컴퓨터 같은 건 없었지만 어쨌든 점점 빠르고 정확하게 발전했습니다. 놈들은 또한 우리 배가 침몰했다고 때때로 보고했는데, 한 아군 구축함은 세번이나 침몰됐다고 놈들이 보고했는데, 그 배가 네 번째로 만에 나타났을 때 놈들은 우리가 새 배의 헐넘버를 그 배 것으로 바꿔달았다고 우겼습니다."(역주 1: 병신새끼들ㅋㅋㅋㅋㅋㅋㅋ)(역주 2: 포병절차나 용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번역에 오류 있을 수 있음)
"포위전에 참가하는 우리 함선들의 존재와 항구 안쪽의 소해함들은 공산군의 큰 골칫거리가 분명했습니다. 원산 포위전의 첫 한해 동안 우리가 곧 상륙할 거라고 놈들이 생각한 적이 네 번이었습니다. 77 임무부대의 공습이나 전함의 강력한 포격이나, 혹은 그 둘을 더한 게 있을 때 놈들이 이런 우려를 했죠. 놈들은 계속 긴장하고 항구 방어태세를 절대 늦추던 법이 없었습니다."
7월에 적의 포격이 증가하자 6척의 함선이 피격당했다: 초계호위함 에버렛함, 로켓상륙함(LSMR) 409함, 로켓상륙함 525함, 구축함 오브라이언, 로켓상륙함 42함, 그리고 순양함 헬레나였다. 8월에는 함선들은 타격을 받지 않았다. 9월에는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윌리엄 세이버링함과 소해함 헤론함 두척이 피격됐다.
"공간이 제약되어 있었던 탓에 해안포대의 포격이 있을 때 함선들이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역주:회피기동이 힘든 탓에 포격이 있으면 도망가지 않으면 피격당하기 쉬웠다는 이야기임)" 포위전 사령관 조지 D. 다이어 해군 준장이 말했다. "함선들에게 더 유리한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1951년 6월 중순에 추가적으로 섬들 사이에 소해가 진행됐고, 소위 내항에서의 탈출 루트가 확보됐죠. 이 위험한 작전이 '로워 브로드웨이'라는 지역에서 용기있게 진행됐죠. 1951년 8월 말 1차 소해가 끝나자, 2차 소해가 9월 2일부터 '머플러'라고 이름붙인 지역에서 또 소해가 진행됐습니다. 이 지역의 소해가 시가지에 좀 더 접근하는 걸 가능하게 했죠."
만약 적이 증강된 포격으로 포위를 풀고 다시 기뢰를 부설할 기회를 얻고 섬을 수복하고 싶었다면, 적들은 실패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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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포병대의 방어 태세에 대한 묘사임. 내용이 많은데다가 포병 관련은 거의 몰라서 좀 번역이 힘들었다.
구축함 하나에 세번이나 격침됐다고 잘못 보고 올렸다가 네번째 나타나자 그거 사실 새 배라고 우기는 거에서 1차로 터졌고, 전함 포격이나 공습 때마다 이놈들이 상륙 준비인 줄 알고 바싹 긴장했다는 거에 2차로 터짐ㅋㅋㅋㅋㅋ
역시 발찌모르 격침시킨놈들 답다
근데 5-7편 링크들어가니까 연결이 안되네 념글에서 찾아들어가면 멀쩡히 뜨는데 디씨문제인가
사용자가 많아서 어쩌구 하는 거 보면 디시 서버 문제같음
155mm? 중공군이 국민당군 꺼 노획한 거 받아서 쓴건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