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시오 동무들

동무들은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의 공포 대상이었던 까레아스키 군대에 대해 궁금하지 않소? 그래서 알아보려고 하오

이 까레아스키 군대는 자유시에 왔소 듣기로는 까레아스키들끼리 다툼이 일어나 피난리 였다하오

암튼 이들 인원은 처음에는 100명 남짓이었으나 점점 늘어나더니 357명까지 되었소이다.
부대는 3개 중대로 편제되었고, 사령관은 이용 동지, 1중대장 겸 참모는 임표, 2중대장은 한운용, 3중대장은 김홍일이었고
소대장은 김동명,이빈,강신우,박홍,마춘걸,마건,이성춘,오동명이었소

이들은 적군이랑 함께하였소, 이들이 치른 전투 중 영웅적인 전투 몇개 자랑 좀 하겠소이다.

처음에는 이만 전투요.
까레아스키 부대와 적군은 1921년 12월 2일 이만으로 진격하던 백군 파시스트도당을 저지하기 위해 이만으로 집결하고, 까레아스키 부대는 무기를 지급 받았소.
이들은 백군을 타격하기 위해 진격 했으나, 갑자기 상부에서 퇴각 명령이 내려졌소.
그러자 눈치챈 극악무도한 파시스트 도당인 백군이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적군과 까레아스키 부대인 대한의용군은 그라프에서 포위당할 위험에 빠져 급히 질서정연하게 퇴각했소.
근데 대한의용군 2중대 한운용 중대는 연락이 끊겨진채 포위됬소

2중대는 퇴각을 하기 위해 강행군을 했고, 건너편의 한무리의 군대를 보고 동지인지 알고 환호 하려 했으나 그들은 백군이었소.
그러나 백군은 그들이 까레아스키 부대인줄 몰랐고, 2중대는 먼저 알아차리고 선제 공격을 했소
그러자 백군은 \"으 까레아스키들 항복한다\"이러면서 백기를 들었소

하지만 이것도 잠시 1,500명의 백군 부대가 나타났소!
50명 대 1500명 30배가 넘는 부대가 공격한다면 가망이 없고 개죽음만 당할게 분명하지만 이 부대는 다르오. 천하의 까레아스키 부대 아니던가
이 완전히 불리한 전투에 백기를 들던 백군이 백기를 꺾고 1,500명의 백군과 함께 50명의 까레아스키 부대를 포위했소.
그렇지만 까레아스키는 겁내지 않았고 맹렬하게 백군의 수많은 사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분쇄시켰소 총알이 없음 개머리판으로 주먹으로 그들과 맞썼소.

하지만 수적우세는 어쩔 수 없어 소수 몇명 빼고는 전멸했소.허나 백군은 600명이 사망 200명이 부상당했소.

정말 까레아스키는 전멸당했으나, 백군의 입을 빌리면 공포 그자체 겁이 없는 부대였다 하오

이게 바로 까레아스키 부대의 전설의 시작이 되었소이다.

그 뒷이야기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흥미가 있다면 더 풀것소


사진의 한운용 장군 장례식이오.
출처는 연합뉴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