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유럽 주변에서 거래되었다가 알맞는 말임.
유럽과 주변 지역의 노예무역에 대해 설명해줄게.
유럽의 노예제는 샤를마뉴 대제의 서, 중부유럽 기독교화 이후로 줄어들다가 10세기 전에 노예제도 자체가 모두 사라졌음(대신 농노화가 이루어짐).
기독교 문화가 번성하면서 노예제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었고 농노제라는 경쟁력있는 새로운 제도가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임.
(북유럽에도 기독교가 완전히 정착되기 전까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바로 바이킹들이었음. 바이킹들 때문에 기독교 문화가 융성하던 아일랜드에서는 노예제가 일시적으로 부활하기 까지함)
예외적으로 노예 소유에 있어 오랜 전통을 갖고있는 동로마 제국의 영역에서는 12세기까지 노예가 존재하긴 했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중세시대까지의 얘기고.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찾아오면서 유럽의 노예무역은 재부활하기 시작함.
처음에는 포루투갈 상인들이 간간히 아프리카 부족들과 접촉해 교역품을 주고 노예를 사오는 식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아예 아프리카 서해안의 앙골라를 식민지화하고 그곳에서 노예를 모아 신대륙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게됨.
즉, 노예를 중계무역의 중간상품으로 취급하는 삼각무역이 활성화된 거임.
그러자 돈냄새를 맡은 네덜란드, 영국 상인들이 이 산업에 뛰어들게 되고 얼마안가 노예는 신대륙의 플렌테이션 농장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어버림.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노예무역은 주로 유럽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이루어졌다는 거임.
식민지에서야 이러한 노예거래가 성행했지 유럽 내에서는 기독교의 눈치를 봐야하고 경제구조상 노예제에 알맞지 않은데다 사회풍조 역시 거부감이 심했기 때문임.
때문에 유럽인들이 노예무역의 한 축을 담당했음에도 노예무역은 정작 유럽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이러한 유럽의 식민지 노예무역은 19세기에 가서야 정부차원에서 금지되게됨).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에, 유럽인 노예 역시 거래되고 있었음.
유럽계 노예가 거래되었다는 건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무슬림 해적(바르바리 해적)들이 해안을 습격한 다음 잡아다가 몸값을 못받으면 그대로 지네 동네에 노예로 팔았기 때문임.
얘네가 유럽에서 납치활동을 벌이고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에 그렇게 열을 올린 이유 역시 유럽인들과 비슷한 이유에서 였음.
같은 종교를 공유하는 사람을 노예로 삼을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중동,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국가들은 노예에 대한 사회문화적, 경제적 수요가 상당했고 노예제를 포기할 수 없었음.
따라서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 아라비아남부처럼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과 카프카스산맥 인접 지역 그리고 실크로드 지역 등에서는 노예산업이 발달했고 이들의 납치대상은 주로 인접한 곳에 살고 있는 타종교인들이었음.
(무슬림 노예상인들은 북아프리카, 동아프리카에서 엄청난 수의 노예들을 잡았들였고 지중해 연안, 흑해 연안, 발칸 반도 그리고 카프카스 산맥 지역의 사람들 역시 많이 잡혀갔음. 북아프리카에 거점을 둔 바르바리 해적들은 심지어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해안지방에도 출몰하고는 했음)
이들의 인신매매질은 무려 19세기까지 이어지는데 아라비아 남부의 오만 술탄국은 아예 동아프리카 해안지방을 정복하고 19세기까지 지배했으며 바르바리 해적들은 유럽의 선박건조 기술을 받아들여 활동무대를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확대했음.
그리고 실크로드의 유목민 왕조들이 지배하는 오아시스 도시들은 티무르 제국 이후로 노예산업이 번성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히바 칸국이 러시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아시아에서 유입되는 노예들을 거래하면서 큰 부를 축적했음.
노예들은 무자비한 노동에 동원되었고 나이가 들면 죽이는 경우가 허다했음.
남성노예들은 주로 건설, 채굴 등의 막노동에 이용되거나 병사로 활용되었고 여성노예 역시 노동에 이용되었지만 하녀로 팔리거나 권력자의 첩이 되는 경우도 많았음.
하지만 알다시피 이들의 노예무역은 유럽국가들이 식민지를 넓히고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서아시아에 영향력을 투사하면서 서서히 약화되다가 프랑스와 러시아의 정복활동에 의해 종언을 고하게되지.
(바르바리 해적들의 서구인 납치 활동은 열받은 미해군의 반격으로 인해 주춤했다가 프랑스가 알제리를 시작으로 북아프리카를 하나하나 정복해나가기 시작하면서 끝장나게됨. 참고로 오만이 동아프리카에 세운 식민제국 역시 영국의 아프리카 진출로 인해 해체되게 됨)
(실크로드 일대의 노예 무역 집적지 역할을 하던 히바 칸국은 러시아 개척민들을 잡아다 팔면서 러시아의 어그로를 단단히 끌어버렸고 결국 러시아의 파상공세에 의해 정복당함. 뒤이어 실크로드 일대가 전부 러시아의 뒷마당이 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
윗글보다가 1800년도까지 유럽에서 노예가 거래됐다는 덧글 보고 끄적거려 봤다.
그럼 농노하쉴..?
하지만 미-국에선 노예가 있었습니다 - dc App
ㅇㅎ
그럼 중세유럽에 노예대신 농노가 있었던거임?
ㄴ ㅇㅇ 농노제는 노예제와 비교해서 의외로 경제적이었음. 물론 지배층에게
근데 난 농노하고 노예차이를 잘모르겠던데 로마시대 노예가 더 좋은조건아님?
ㄴ 알다시피 농도는 주거이전이 제한되는 대신 마음대로 결혼하고 재산을 소유할 수 있음. 대신 영주에게 종속되고 각종 세금과 부역에 시달려야 했지. 로마시대 노예는 뭘 하냐에 따라서 대우가 천차만별이었음. 막노동 노예면 소모품 취급을 받았고 가정교사 노예면 주인의 진지한 존중을 받았음. 단, 로마시대에는 노예에게 잘해주면서 내가 그만큼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걸 뽐내는 게 사회적 유행이었다고 함
정보추
예전에 이영훈 팔레 논쟁 생각나네 팔레 어휴 - dc App
중동부유럽 재판농노제 너무 심한것인데수웅...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