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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방데 반혁명 봉기를 진압해야 하는 서부군 포병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파리로 떠나야 했다.

부관 쥐노 대위, 툴롱에서 만났던 사관학교 친구 마르몽 대위, 그리고 동생 루이가 그와 함께할 것이었다.

프랑스인들에게 포를 쏘아대야 하는 일이었기에, 나폴레옹은 별로 서두르진 않았다.

나폴레옹 일행이 프레리알 달 9일에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는 1일에 일어난 폭동이 숨죽이고 있던 마지막 자코뱅파들

- 다르게 말하면 그의 후원자들을 쫓아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나폴레옹의 포병사령관 지휘권은 박탈되고, 보병 여단장으로서의 지휘권이 대신 주어졌다.


포병들의 다른 병과에 대한 우월감은 나폴레옹에게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런 처사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욕이었다. 

나폴레옹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파리에 머물면서 결정이 철회되기를 기다렸다.

급료가 반으로 줄어든 상태였으므로, 그는 어머니에게 계속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버텼다.



(중략) 포병 사령관으로서 방데미에르 반란을 일으킨 왕당파를 진압한 나폴레옹은

국민공회에 의해 만장일치로 국내 치안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나폴레옹은 반란을 진압한 10월 13일 저녁에 조제프 형이 곧바로 어머니께 소식을 전해줄 것이라 믿고

그날 있었던 일을 편지에 자세히 쓰면서, 일이 잘 풀리면 바로 어머니께 돈을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었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쓸 수 있게 되었다.


"5만 프랑의 돈과 새 옷가지들을 집으로 보냈어, 형.

이만하면 모자라지 않을 테니,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야."




- 알랭 드코 저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치아" 에서





나폴레옹도 확실히 자기 엄마를 많이 사랑하긴 했었음

엄마 말은 지지리도 안 들어서 그렇지

하긴 다른 형제들도 레티치아가 "우리 집안 아들들은 결혼부터 하고 엄마한테 통보하는 게 내력인 모양이야" 라고 푸념할 정도였다만